“엄니! 그 말 누가 그래?” “아까 낮에 이장 최센이 와서 그러더라!” “그 놈들은 모다 한 통속이랑께!” 영례는 희락이가 걱정되었다. 커오면서 희락이는 온순했고, 공부밖에 몰랐다. 그런데 대학생이 되더니 이렇게 금새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희락이는 대통령직에 대한 국민투표는 국민의 행복추구권과 재산권, 선거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 공권력 남용으로 위헌이라고 핏대를 올렸다. 그리고 나라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희락이가 사법시험을 보 기위하여 법률서적을 탐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렇게 법률적으로 자기주장을 내세울 줄 아는 것을 보고는 저게 잘못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섬뜩한 무섬증이 들기까지 했다. 진월리 분위기는 거의 박대통령의 유신헌법과 함께 국민투표를 지지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박대통령을 무조건 밀어줘야 나라가 튼튼하게 된다는 것이다. 동네 이장 최 씨는 하루를 멀다하고 광주시내에서 유신헌법과 함께 국민투표를 쉽게 설명해 주는 관리들을 모셔왔다. 면장은 여러번 왔고, 무슨 교육감인가도 왔다. 또 공화당 간부도 와서 동네 당산에서 마을사람들을 모아 놓고 유신헌법의 필요성과 국민투표에 대하여 열심히 선전했다. 그들은 와서 민주주의가 발달하는 나라일수록 국민투표를 직접민주주의 요소로 도입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이 이 제도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면서 국민투표는 유신헌법을 통하여 통치권에 대한 지지를 확인하기 위한 정당한 절차라고 역설하곤 했다. 어느 날이던가. 도청 간부가 동네에 와서 연설하기로 예정된 날이었을 것이다. 영례는 그동안 먹고살기 바쁘다고 그런 연설회 같은 곳에는 안 나갔지만, 최센이 국민투표에 대한 연설을 들으라고 두 세 번이나 통지를 해왔다. 그래서 희락이가 오면 밥 차려준 다음 오늘은 이웃집 영춘이 엄니와 함께 나가볼까 하는데 희락이가 들어왔다. “왔냐? 배고프지! 얼른 밥 차려 주께! 밥 차려 주고 난 당산에 나가봐야겠다!” 라고 하면서 영례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밥상을 차려서 들고 들어갔더니 희락이가 피곤한 표정으로 안방으로 들어오면서 “엄니! 어디 가려고?” 라고 물어왔다. “응! 시방 당산에 나가볼란다! 누가와서 연설 한다더라!” “가봤자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되라우! 투표 전에는 저렇게 간이라도 빼줄 듯 친절을 베풀지만… 투표만 끝나면 국민은 다 노예로 전락하고 만단 말이요!” “너, 앞으로 그런 이야기 그만 해라! 남들이 들으면 니 신상에 좋지 않당께!” 영례는 이렇게 말하고는 급하지도 않은데 고무신을 끌면서 당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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