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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들소리문학〉 창간호를 위한 3人 좌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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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호] 승인 2009.05.06  17:4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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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braism과 기독교 관계를 말한다


“들소리 문학, 헤브라이즘을 통해

 
  기독교의 순수 원형을 찾는다”

 

                ■들소리문학 창간 좌담회

       ■ 일 시:2009년 3월 27일(금) 12시 30분 
      ■ 장 소:들소리신문사 기획실
      ■ 참석자:
                     김성영 박사(성결대학교 전 총장)
                     민영진 박사(대한성서공회 전 총무)
                     조효근 목사(본지 발행인)
      ■ 진행자:김성영 박사


 김성영 박사 사회(사진):민영진 박사님처럼 목회와 신학에 깊은 세계를 지니고 계신 분을 들소리 문학 창간호에 모셔 좌담을 나누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민영진 박사:과찬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히브리 문학에 대해 논하기로 모였는데 히브리 문학이 무엇인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또한 히브리 문학의 틀이 되는 헤브라이즘(Hebraism)은 무엇인지 참 난해합니다.

사회:그 말씀에 동의합니다. 기독교백과사전을 비롯해 대부분의 논문들에서도 헬레니즘은 많이 다루고 있지만 헤브라이즘에 대해서는 잘 언급하지 않습니다.

민:제가 생각할 때 헤브라이즘이 없는 이유는 주다이즘으로 다 몰리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헤브라이즘은 헬레니즘처럼 사상적 큰 줄기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헤브라이즘이 곧바로 주다이즘(Judaism)으로 넘어간 것도 한 원인일 것입니다.

사회:그런데 헤브라이즘과 주다이즘은 다르지 않나요? 종족 면에서는 히브리인이나 유대인이나 이스라엘인이 같은 의미를 갖더라도 주다이즘은 어디까지나 구약의 종교적인 의미에서 주다이즘이고 헤브라이즘은 유대인의 모든 사상을 통칭할 때 헤브라이즘이라고 하지 않나요?

 민영진 박사(사진):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헤브라이즘과 주다이즘을 구별하신 것은 좋은 관점이라 생각합니다. 헤브라이즘은 언어적 개념이 강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인 하면 구약학에서는 민족적 개념 보다는 사회학적 개념입니다.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며 일부는 가나안에도 머물고 일부는 이집트까지 갔던 주로 기원전 16∼17세기에 고대 근동에 살던 떠돌이들을 히브리인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인은 민족적 개념이 아닌 사회학적 개념이며 여러 민족들을 포함합니다.

김:그러나 그 뿌리와 출발은 셈족으로부터 출발하는데 전혀 민족적 개념이 없다고 할 수 있나요?

민:그런 견해는 성경의 이름과 관련시키기 때문이며 일반적으로 구약학이나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사회학적 개념으로 굳어진 개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 민족적 통합을 이루기보다는 지파동맹을 구성하게 되는 만큼 히브리인들의 개념은 민족적 개념보다는 사회학적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인이 아닌 헤브라이즘이라고 하면 그것은 철저히 언어적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 사람들이 `할렐루야'가 문자적 의미와 기원이 무엇인지 몰라도 부흥사가 외치면 자연스런 응답으로 외치는 것처럼 우리 안에 문화화 되어버린 것들이 일종의 우리 문화 안에 있는 헤브라이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학으로 가지고 들어와 바라보면 현재 히브리인들 사이에서 히브리 문학이라는 말은 좀처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 대해서는 반드시 영어로 `히브리 바이블(Hebrew bible)'이라고 합니다. 신약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약에 관련된 개론서들을 영어로 표기할 때, 히브리인들이라면 아마도 `히브리 성경개론(introduction of Hebrew bible)'이라 표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가 신학교에 입학해 구약, 신약개론을 배울 때는 `구약개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영미 계통 신학자들이 `구약문학개론'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 당시 학생인 저는 “구약은 문학이구나” 하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사회:히브리인의 개념을 민족적 개념이 아닌 사회학적 개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내용은 새로운 관점으로 다가왔습니다. 또한 히브리의 어원이 `에벨(건넌 자)'-유랑 자, 떠돌이-이라고 볼 때, 종족개념보다는 사회학적 개념이 더 설득력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헤브라이즘을 문학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그들이 사용한 언어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내용에도 공감하며 질문을 드립니다.

저도 민족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어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며 드는 생각이 히브리 문학과 사상이 꼭 언어뿐이겠는가 하는 물음이 생깁니다. 헤브라이즘은 언어를 중심으로 한 그들의 역사 속에 흐르는 지리, 환경 등의 종합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요?

민: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헤브라이즘'은 먼저 언어로 국한됩니다. 유대인들의 사상이 아닙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사상으로 가면 주다이즘이 되어 버립니다. 제가 이스라엘에서 5년 정도 공부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다이즘'이라는 말은 수없이 들었지만 `헤브라이즘'이라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만약 헤브라이즘이 사회학적 개념이라면 블레셋 사람, 아람 사람, 에돔 사람들도 히브리적 요소들을 지녀야하는데 제가 조사해보지 않았지만 제가 만난 아랍 친구들은 헤브라이즘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사회학적 개념이라는 의미는 출애굽을 전후 한 고대 이스라엘에서만 사용되던 개념이지 지금까지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조효근 목사(사진):저도 헤브라이즘을 이야기 할 때 민 박사님께서 말씀하신 떠돌이라는 사회학적 의미에서 출발합니다. 그 떠돌이의 시초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는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초월 신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당시 달과 별, 태양신 이야기가 문명의 중심 가치였는데, 아브라함은 달과 별 너머의 세계에서 부르신 이의 음성을 따라 갔습니다. 초월 신에 대한 인격적 만남에서 떠돌이의 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기에 헤브라이즘의 출발점을 아브라함과 문명의 창조주와의 만남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문명사적인 측면에서는 이스라엘 족장들이 정착하며 본격적인 왕조를 형성하게 되는 이전까지를 본격적인 자기 발전 과정으로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왕조가 출발하는 시절에 헤브라이즘은 주춤하며 잠복하지만 다윗에서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다윗이 이때 형성한 신앙이 대속사 신앙이고 이 신앙을 그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친 모리아산 신앙과 연결시키며 헤브라이즘을 이면에 드러냈다고 봅니다.

그리고 헤브라이즘 원류의 원형을 대속사라는 사상적 측면에서 보고 싶습니다. 민족사 측면에서는 다윗에서 구체화되고 바벨론 포로기 이전에 이사야의 7장 14절로 헤브라이즘이 사상성의 첫 열매를 맺었습니다. 대속신앙의 흐름은 바벨론 포로기 시절, 바벨론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그 당시에 출발한 유대교도 이를 제어할 만한 힘을 갖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53장의 고난 받는 종의 구체적인 모습이 헤브라이즘의 더 큰 열매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로 헤브라이즘이 완성된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저는 〈들소리 문학〉의 사상적 근저를 헤브라이즘에 기초해 출발하려 합니다.

사회:인류사의 거대한 두 축이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라 할 때, 두 축이 오늘까지 종교사와 인류의 정신사에 맥이 이어져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사전적 의미로만 강하게 남아 있음이 아쉽습니다.

“초월 신에 대한 인격적 만남에서 떠돌이의 출발이 시작, 그러므로 헤브라이즘의 출발점을 아브라함과  문명의 창조주와의 만남에서 봐야”

민 박사님의 이야기에 비추어보면 헤브라이즘에 문학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데, 저는 히브리 문학을 성경문학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물론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속을 위해 주신 선물이지만 구약성경은 히브리인들의 종교적 유일신 신앙 고백을 히브리어로 기록해 놓은 것이 성경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민:저도 김 박사님과 같은 견해이지만 헬레니즘과 함께 나오는 헤브라이즘을 말할 때 헤브라이즘은 종교고 헬레니즘은 철학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다음으로 히브리라는 말이 현재도 자신들의 언어와 이름에 살아있고 히브리어로 쓴 문학작품을 히브리 문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버나드 녹스는 〈세계문예사조사〉에서 다른 민족과 종족들은 조각이나 음악, 회화 등으로 세계문화사에 다양한 공헌을 했는데 유독 히브리인들은 그런 공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제 견해로는 그들이 성경을 인류 앞에 내어놓은 것만으로도 인류사에 큰 공헌을 한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기독교문학의 뿌리를 히브리문학인 구약성경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보고 들소리 문학도 그 위에서 나아갈 방향을 이야기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민:헤브라이즘이라는 정체불명의 말을 유보해두고, 히브리문학이라 하면 히브리어로 쓰인 작품들이 될 것입니다. 구약성경, 탈무드나 탈무드의 주석인 미슈나 미드라쉬처럼 히브리어나 아람어로 쓰인 작품들을 히브리 문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문학을 이야기 할 때, 현대를 제외한다면 구약성경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당위적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조:좀 전에 민 박사님께서 헤브라이즘을 유보하자고 하셨는데 유보할 수 없는 이유가 헤브라이즘은 명확히 정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단정적인 용어를 사용해 죄송하지만, 헤브라이즘은 대속사 신학으로 완결이 됩니다. 대속사 신학의 출발을 보수 신학에서는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떠날 때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입혀주었다는 부분으로 잡고 있습니다. 그것의 구체적인 모습이 창세기 12장 아브라함의 등장에서 나오고, 창세기 22장 모리아에서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완전한 신뢰를 얻게 됩니다. 저는 이 시점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국 기독교 문학의 새로운 갱신을 위해 히브리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구체적인 〈들소리 문학〉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구약의 흐름은 인류사적 측면에서 대속사와 민족사가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구약의 흐름 속에서 아들, 또는 제물이라고 하는 것은 죄의 근원적 악행과 결부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 유대인들이 죄의 근원에 대한 정직한 접근이 부족하고 무슬림 또한 그 부분이 취약했기 때문에 놓쳐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죄의 근원에 대한 불가항력적인 부분을 추적해 보면 대속이라는 벽에 부딪혀 이를 수용할 수 있게 되는데 현재 기독교는 이것들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헤브라이즘이라는 것은 대속사 신학으로 행복한 열매를 맺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열매는 절대다수의 기독교인들과 신학에서 학대를 받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한국 기독교는 90%정도가 대속사 신학이 아닌 율법주의 신학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왜 대속의 메시아를 원치 않을까요. 그것은 유대인들은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면서 대속이 성취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민족 그 자체가 대속의 아들이자 새로운 성취라고 보기에 또 다른 메시아를 원치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신학 원류는 헤브라이즘의 사상과 신학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들소리 문학이 문학적 측면에서 헤브라이즘에 원류를 두고 헤브라이즘의 구체적 성취를 히브리 언어로 보면서 언어 속에서 하나님의 성격과 헤브라이즘의 성격을 담아내길 기대합니다.

“헤브라이즘이라는 것은 대속사 신학으로 행복한 열매를 맺는데…한국 기독교는 90%정도가 대속사 신학이 아닌 율법주의 신학에 근거하고 있어”

사회:방금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 가지 확인 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첫째는 제 스스로 동의하지 못하는 견해인데 물론 한국 신학이 정신 차려야 한다는 측면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신 것이라 생각하지만 한국의 신학이 구속사를 잃어버리고 율법주의에 치우쳤다는 견해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물론 배운대로 실천하며 살지 못하는 면은 반성해야 하지만, 오늘날 개신교의 신학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대속사적 신학을 고백하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그 의견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조 목사님께서 히브리문학의 사상과 토양위에서 들소리 문학 작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헤브라이즘이 무엇인가라고 하는 질문에 한마디로 명쾌한 답이 도출되지 않고 있습니다. 히브리문학을 이야기 할 때 히브리어를 중심으로 학자들이 모여 심도 있게 논의를 하고 논문을 쓰는 측면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거시적 방향을 제시하고 이 주제를 가지고 독자들이 글을 쓰게 할 것인지 하는 방향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헤브라이즘이 신약과 연결되는 면에 대해서도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조:두 번째 질문부터 답변하면 헤브라이즘은 어디에 한정된 것이 아니고 그 마지막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많은 신앙인들 중 문학을 공부하고 표현하며 알아가길 원하는 이들의 삶을 공유하는 일에 지면을 할애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부분에서 하신 말씀에서 바로 그 논리가 헬레니즘의 함정 속에 있다고 봅니다. 헬레니즘은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자신의 동작을 위해 사용합니다. 그러나 헤브라이즘은 가슴입니다. 직접적이죠. 모든 사건을 현재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모세의 제자들이며 예수의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대부분의 신앙은 머리속에 기억과 사상으로만 머물러 있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국기독교 신앙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 가슴과 행동으로 살며 위선적 신학을 극복하기 위함이 들소리 문학의 시작이자 목적인 것입니다.

민:조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은 제 느낌은 헤브라이즘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고, 그렇다고 헤브라이즘이라는 것이 명확하게 정리된 것도 아닌데 그것만을 해결책으로 보려고 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 목사님 안에서는 헤브라이즘이 정리되어 있고 이를 들소리 문학 정신으로 삼고 싶어 하시는 마음이 명쾌한 결론과 실천적 대안까지 도달해 있지만 이를 글로 표현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리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헤브라이즘이 무엇이며 어떤 창조적 기능을 지니고 있으며 들소리 문학을 토대로 헤브라이즘의 위치를 정리하는 입장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했으면 합니다.

사회:단순하게 표현하자면 히브리 문학 의식으로 문학을 하기 위해서는 히브리어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룻기를 두고 괴테는 성경 속의 가장 아름다운 문학이라 평했고, 욥기에서 파우스트 작품 활동의 동기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저는 성경이 한 작가를 고무시키고 대작을 완성하게 했다는 면에서도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한국 기독교문학의 새로운 갱신을 위해 히브리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구체적인 들소리 문학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조:민 박사님께서 헤브라이즘에 대한 정의가 내려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하셨는데 정의보다는 포괄적인 견해를 밝힌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문학의 사상적 토대가 헤브라이즘이고 헤브라이즘 그 자체가 에덴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성경의 구원사가 출발했기 때문에 헤브라이즘을 대속사로 보았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순수한 모형을 제시하기 위해서 다각적인 시도를 해야 할 것이며 이런 마음으로 들소리 문학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봅니다. 그리고 인류 모두가 알고 있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나타나기 이전의 순수원형을 찾고자 들소리 문학의 출발에 헤브라이즘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헤브라이즘의 영향을 받은 신약의 문학적 특징 연구도 필요로 합니다.

민:조 목사님께서 마지막에 구약과 신약의 문학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것이 좋겠다는 것에 착안하고 싶습니다. 1950년대까지 구약에 있어서는 문학적인 접근이 활발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해석하는 눈이 대단히 기술적으로 발전되면서 성경을 분석하는 기술은 발전했지만, 성경에 나오는 문학적 작품의 연구는 중단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들소리 문학이 공헌할 수 있는 것은 다소 복고적일지 모르지만 성경의 문학적인 측면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경전에 대해서 신학적, 대속사적 접근보다 첫 시도는 성경의 문학적 특성을 보면서 인류 역사 속에서 흐르는 하나의 문학으로 탐구해 기독교의 본래적 원형을 발견하고 기독교 창작의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었으면 합니다.

사회:오늘 자연스럽게 시작된 히브리 문학에 대한 좌담을 마무리 하면서 세 가지를 제안하며 이야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첫째로 히브리 문학이 어떤 것인가 하는 다양한 신학자들의 깊은 이해와 심도 있는 글을 실어 이론적인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둘째로 다양한 장을 독자들에게 열어주어 히브리 문학의 깊이와 넓이가 커지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소수정예, 혹은 평신도들까지라도 히브리 문학의 중심에 있는 히브리 언어의 문학적 수사에 대한 강의를 개설해 배움의 길을 열어주었으면 합니다.

장시간 좌담에 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정찬양 차장 / 정리=황승재 인턴기자

*본 좌담회는 〈계간 들소리 문학〉 창간을 앞두고 들소리문학이 지향할 방향을 논의한 것으로, 5월 15일 발행할 〈들소리 문학〉 창간호에 게재될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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