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광섭 목사(창현교회 담임)

휴가 중에 후배목사의 내방을 받고 점심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 대학로에 있는 솟대라는 국수집으로 향했다. 국수는 주머니가 가벼울 때라도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이기도 하지만 피곤하고 입맛이 없을 때면 찾아 먹을 수 있어 좋다. 특히 이 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 입에 맞게 직접 요리해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 살 박이와 젖먹이까지 안고 나를 방문한 후배 목사 내외에게 내가 직접 요리해 대접 할 수 있어서 음식도 음식이지만 가슴에 품은 정을 전하고 받을 수 있어서 이 집을 택한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대학로 거리를 잠시 걷는 중에 후배 목사 부인이 “서울 종로를 걸으니 참으로 내가 도시에 있다는 기분이 드네요!” 한다. 그 말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사모님! 어느 한 곳이라도 사모님을 영접하기 위해 기다리는 곳이 있는지 다시한번 둘러보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어머! 그러네요. 물질적인 요구를 위한 것일 뿐 나를 위한 곳들이 아니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저들의 눈과 우리의 눈이 다른 것이 있다면 물질로 사람을 보느냐 사람으로 물질을 보느냐는 차이일 것이다. 그러기에 `이를 혼돈할 만큼 흔들리거나 탁해져서는 안됩니다'라며 모처럼 선배다운 소리를 했지만 그것은 실은 나에게 향한 꾸짖음이기도 하다.

한 십뿐 쯤 걸어 내 서제에 와서 손수 차를 끓여 나누며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이야기 중에 요즘 목사를 향한 세상의 자세에 대한 한 사례를 듣고 놀라움과 허전함을 느꼈다. 길거리에 자리잡고 신용카드를 만들라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권하는 것이 은행의 전략이라는데 직업란에 목사라고 기재하면 “목사님, 죄송합니다. 저희 은행 방침 때문에 목사님에게 신용카드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했건 은행에서 성직을 수행하는 사람인 목사라는 직함을 신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까이 하면 물질적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고 경계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리라.

아니, 성직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을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구분하고 있다는 것이다. 목회자를 향한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어떠한가를 확인한 순간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가? 어떻게 살았기에, 그때그때의 현실 관계에서 어떻게 처신했기에 거리에서마저도 거절당하는 것일까? 그들은 신앙이라는 형식과 종교라는 틀 안에 있지 않아도 종교와 신앙 안에 있는 사람들과 그 종교를 담당하고 가르치는 역할을 하며 종교 안의 가르침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대와 함께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을 살자. 이때까지의 행적을 볼 때 남이 부러워할 정도로 잘했다면, 아니 때로 스스로가 보아도 안쓰러운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과시하거나 책망하지 말고 지금을 살자. 현실을 바로 보자. 어디에서 벗어났는지, 어떻게 지나쳐 버렸는지 나의 자리와 역할을 다시 한번 돌아보자. 교회로 하여금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되게 하자. 설교를 잘하는 만큼 바르게 사는 자가 되자.

복음은 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요 우리를 위한 약속이거늘 내 소리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만을 전하자. 하나님의 역사와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삶을 내 출세와 나를 앞세우기 위한 도구로 삼지 말자. 나의 수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세상 앞에 바르게 소개하며 함께 살아가자. 이것이 성직일 것이다. 신앙인은 신앙인답게 살자. 신앙인인 체 하지 않았으면 한다. `∼체' 하는 것은 타인과 자신을 속이는 것이 되고 신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기에 신앙의 왜곡이며 변질이며, 결국에는 버림을 당할 것이다.

성서를 통하여 수없이 강조된 것은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이다. 주님의 재림의 날이 있다는 것이다. 그날이 너의 심판의 날임을 알라. 지금, 바로 지금을 바르게 살라고 요구하고 있다. 거룩한 말이 필요하지 않다. 좋은 표현의 글들이 필요하지 않다. 지금까지 쏟아져 나온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이제 그 말과 글처럼 사는 사람을 세상은 그리워하고 있다. 어디서 왔으며 어디를 가자는 것이며 지금 네가 있는 그 자리가 길 안에, 길 위에 있는가? 그 끝이 말씀인가?

인간이 만든 종교와 교단과 교회의 담을 헐고 하나가 되어 세상을 향해 함께 걷자. 인간이 모두 헐어버리고 싶어도 남기고 싶은 것이 있음이 신의 뜻이리라. 세상을 향한 신의 길을 곧게 하는 일꾼으로 자기 삶을 이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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