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절이라서 그런지 TV화면에 옛살이 모습들이 자주 등장한다. 탈광대놀이도 그 하나다. 말뚝이, 홍동지, 샌님, 중노미 등 이름도 생소한 놀이꾼들이 각각의 우스꽝스러운 탈바가지들을 뒤집어쓰고 낯 뜨거운 몸동작과 함께 질펀한 음담패설을 서슴치 않는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원래 탈놀이는 밟히고 빼앗기며 살던 천한 상것들의 전유물이었다.

물론 욕설을 내뱉고 삿대질을 해도 한계는 있다. 그래서 일단은 탈을 쓰므로 익명성을 확보하고 양반을 향해 욕을 해도 현역 양반이 아닌 양반찌꺼기 샌님이고 스님에 대한 불경한 소리를 해도 제대로 된 수행승이 아닌 파계승, 그러니까 수행은 일찌감치 집어치운 채 술과 고기와 엽색을 탐하는 파계승을 설정한다. 즉 놀이를 가탁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홀딱 벗기는 망신주기도 주저하지 않지만 칼들고 하는 싸움까지는 가지 말고 이쯤해서 서로가 참고 어루만지자는 상생의 울림까지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춤·탈놀이는 놀라우리만큼 정확한 인간 삶의 의 축도이고 그 생생한 숨소리까지 들려준다는 점에서 즉시즉물성의 고발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탈놀이는 샌님과 돌중을 등장시켜 어느 때고 권력은 부패하고 종교는 타락한다는 뼈아픈 이야기를 빼놓치 않는다. 우리 역사의 근간을 이루어 왔던 불교와 유교도 이래서 빠질 수 없다. 이차돈의 순교, 원효의 대승기승론 등 찬란한 여명과 함께 등장하며 민족의 천년등불이 되어왔던 불교도 고려말기에 이르면 군대 나가지 않으려고 중이 되고 돈벌이하려고 법당을 여는 식의 망조(亡兆)에만 목을 매다가 마침내 유학을 숭상하던 혁명세력에게 철저하게 도륙을 당한 끝에 절집은 산속으로 추방되어 산중불교가 되고 스님은 도성출입을 금지한 채 죽임을 당해도 호소할 곳이 없는 존재로 떨어지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렇게 불교를 응징했던 유교 역시 권력 층과 한몸이 되면서부터 백성을 자식으로 보라던 그 본연의 민본(民本)사상과는 거리가 멀어진 채 왕권과 지배계층을 위한 내용없는 명분론에만 열중하다가 그 양반소굴이던 조선제국이 쓰러지는 비분의 계절에 이르러서는 수백년 씹고 씹던 우국충정이 없지 않았음에도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쓰러지고 그 다음의 막중한 책임을 기독교며 천도교, 즉 새로운 눈으로 새로운 하늘을 찾자던 새로운 무리에게 떠넘기는 꼴이 되고 만다.

물론 이것이 역사라면 역사라고 필연이면 필연일 것이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탈놀이를 보면 자꾸 머릿속에 오버랩 되는 것이 있었다. 한국인 직업군에 대한 의식조사. 목사의 신뢰도는 23번째. 목사 바로 앞에 미용원 원장과 환경미화원이 있고 그 앞에 앞에 스님이 있고, 또 한참 앞에 신부가 있고…. 목사가 신뢰도 23위이니 그 아비에 그 자식. 그 나물에 그 밥식으로 전체 기독교인 신뢰 역시 23위. 이 추락 어디까지 계속 둘 것인가. 이 조사 정말 믿을만한 것인가. 이 근래 십여 년 두고 치열해진 반 기독교 무드와 맞물려 공평치 못한 감정이 작용한 것 아닐까.

변명은 있을 수 없다. 민심이 천심이라고 사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을 것이다. 잘못을 했으니 손가락질 당하고 미운짓 했으니 미움을 받는 것일 것이다. 탐욕, 거짓, 위선, 무지, 거드름, 배타성….

문득 웃음이 나왔다.

십년 후, 오십년 후에도 할 말이 있는 한 탈춤은 계속되리라. 그리고 그때의 탈춤은 여지없이 진화되어서 파계승 같은 잡스러운 무리와 더불어 장로 놈, 집사 놈 이라는 말과 함께 온갖 욕 다 쏟아내고…. 그리고 아, 그 쳐죽일 인간 돈 욕심이 얼마나 많은지 돈 소리만 나면 천리 밖에서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왈그락 달그락 눈깔 굴리고 온갖 좋은 것 다 챙겨먹어 피둥피둥 살이 쪄 가지고 계집 소리만 나와도 주둥이가 귀밑까지 찢어지면서 백금이빨 사이로 침을 닷 말이나 흘림서….

일부러 주어는 생략했지만 분명히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히 할 말은 여기에 있다. 거친 욕을 하고 욕을 먹는다는 것이야말로 삶의 현장을 공유하는 진정한 살붙이요 이웃붙이란 뜻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렇게 하면서 아브라함의 핏줄이 이 땅에서 미운 정 고운 정으로 육화
incarnation)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멸과 수치가 극심함에도 불구하고 그 놀라운 은총으로 인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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