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제자도 실현과 평화공동체 회복이 개혁의 정도(正道)

루터, 칼빈과 함께 개혁의 선상에 있었던 츠빙글리의 제자들이 주창했던 아나뱁티스트(재세례운동)

유아세례로 자동적 신자가 된 국가 `신자는 많지만 제자 없음' 반성-제자도 강조
가톨릭·개혁교회들로부터 박해와 핍박으로 4천명 이상 순교자들이 나오는 역사
신앙에 거룩한 삶 더하는 회복 중요…신앙 증표 만족 아닌 철저한 제자삶 있어야


 


1517년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492년이 지난 2009년 한국 기독교는 루터와 칼빈을 떠올리며 그 날을 기리는 예배와 행사를 한다. 그러나 교회의 모습 속에 종교개혁 사건은 남았지만 정신과 실천이 지금까지 유효한지 반문이 생긴다.


 

자신을 붙잡으려는 추격자가 강물에 빠지자 즉시 달려가 살려준 아나뱁티스트 더크 웰렘스.

그러나 그는 추격자에게 붙잡혀 끝내 처형당했다.  ⓒ들소리신문


 

종교개혁주일을 기다리며 종교개혁의 새로운 정신을 회복하기 위해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등장했던 아나뱁티스트(재세례신앙)운동. 한국기독교인들에게는 조금 생소할 수도 있는 이 운동이지만 루터 당시대부터 오늘까지 `개혁'의 기치를 부여잡고 사는 삶을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KAC) 김경중 총무를 통해 들어보았다.

 


# 세례는 제자됨의 고백


재세례신앙운동은 1525년 스위스의 개혁자 츠빙글리의 제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은 대중을 위한 국가교회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던 츠빙글리의 개혁 방법과는 달리 교회 개혁을 완전히 새롭게 시도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국가의 강요나 법에 지배받지 않는 신자들로 구성된 교회를 원했다.

이것이 바로 16세기 아나뱁티스트-재세례신앙운동이 처음 추구했던 목표였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가 유아세례를 통해 자동으로 교회 멤버십을 갖고 살아갔던 국가교회의 요구와는 달리 믿음과 행함이 일치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거하며 참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교제를 추구하였다.

세례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주님과의 새로운 언약을 수락한 신자들의 내적인 믿음과 헌신에 대한 외적인 표시로서 보았다. 그러므로 이들은 국가교회에 `신자는 많지만 제자가 없음'을 반성하고 자발적 신앙고백을 통한 좁은 길을 따르는 제자도의 삶을 살기로 선택한다.

이들에게 세례는 신자의 증표이기 보다는 제자됨의 고백이었다. 그래서 자발적 결단이 따르는 세례를 중시 여기고 유아세례를 받거나 혹은 받지 않고 성인이 된 후 자발적 결단에 의해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세례는 시민권과 결부된 중요한 항목이었다. 세례를 받지 않은 유아는 국가교회 체제하에서 주민 등록을 할 수가 없었고, 따라서 세금을 징수 할 수 있는 명목을 마련해주지 않는 행위였기 때문에 국가의 입장에서 재세례신자들의 행위는 국가의 법을 어기는 일에 해당됐다.


# 전세계적으로 160만 명 신자


결국 츠빙글리의 제자들은 교회개혁의 방향과 속도가 국가의 견해와는 관계없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중심으로 주도적으로 이루어져야 된다고 주장했고 마침내 1525년 1월 21일 스위스 형제단은 츠빙글리를 중심으로 한 국가교회와의 완전한 결별을 선언하게 된다. 이렇게 신약교회를 회복하기 위해 시작된 재세례신앙운동은 당시의 가톨릭과 개혁교회들로부터 모진 박해와 핍박을 받기 시작했으며 16세기 이후 특정한 기독교 그룹에서 4천명 이상의 순교자들이 배출된 인류 역사의 믿음의 선한 싸움 중에서 가장 의미심장했던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16세기 재세례신앙운동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이들을 토마스 뮌처를 중심으로 폭력적이고 광적인 신자들의 행위와 동일시하는 견해다. 헤럴드 벤더를 중심으로 한 학자들은 뮌처와 같이 무력사용을 정당화한 행위는 그리스도의 비폭력과 사랑의 윤리를 추구했던 당시의 평화로운 재세례신자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아나뱁티스트-재세례신앙운동의 정통성에 전혀 못 미치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간주하였다.

오직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공동체를 통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생활 속에서 철저히 실천하고자 시작된 아나뱁티스트 신자들은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160만 명 정도가 있으며 한국 교회에는 메노나이트, 후터라이트, 아미쉬, 브래드런교회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 내적 변화 강조


그렇다면 아나뱁티스트신앙이 강조하는 것은 무엇일까? 한국 아나뱁티스트 센터 김경중 총무는 헤럴드 벤더의 재세례신앙의 비전(Anabaptist Vision)이란 책에 잘 나타나 있는데 그것은 제자도, 공동체, 평화로 요약할 수 있다고 했다.

첫째로 제자도는 교회와 분리될 수 없는 사안으로 이들에게 교회는 지역교회가 아닌 신자의 교회(Beliver's church)개념이다. 신자의 교회는 제자들의 공동체를 말한다. 이들의 일반적인 선교전략은 마가복음 12장 29∼30절의 말씀을 근거로 한다. 세상에 나가 만물에게 복음을 전하고, 듣는 이가 복음을 신뢰하며, 구원의 확신을 가진 이에게 세례를 준다. 그리고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에 들어오게 하는 함을 선교전략으로 한다. 그렇기에 이들에겐 외적인 전도를 통한 수의 증가보단 내적인 변화에 더 큰 강조점이 있다.

둘째로 내적인 변화의 지속과 수련을 위해 공동체를 강조한다. 공동체는 물질과 시간의 나눔을 통해 다른 형제의 궁핍함을 돕고, 소유의 욕심을 버리도록 강조한다. 이 중 캐나다에 위치한 후터라이트 공동체는 사도행전 2장의 초대교회의 공동체의 모습을 지금도 실현하고 있다. 이 공동체에 있어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세례를 통해 제자로 살기로 결단했다면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의 몸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경제적인 삶도 나누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김 총무는 말해줬다.

셋째로 평화와 화해를 강조한다. 김 총무는 “모든 인간에게 원죄가 있기에 죄성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죄를 극복하고 짓지 않으며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제자의 도리이게 이를 위해서는 온전한 평화인 샬롬을 실현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렇기에 이들은 인류의 평화로운 공존을 막고 인간을 상해하는 모든 형태의 의도적인 폭력을 반대하며,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말과 글에 의한 정신적 폭력의 사용도 반대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매일의 삶 속에서 비폭력의 실천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보다 건강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 용서·평화의 삶으로 살기


한국 아나뱁티스트센터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제자도를 기초로 한 평화교육, 갈등해결, 평화를 만드는 조정자 워크샵 등을 진행하며 평화건설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고 초대교회와 같은 맥락에서의 철저한 제자도와 형제사랑의 공동체, 평화교회로의 여정에 함께 하는 한국 교회의 갱신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 총무는 원수를 사랑한 대가로 죽음의 형벌을 받아야 했던 16세기 네덜란드의 아나뱁티스트 순교자, 더크 윌렘스(Dirk Willems) 이야기를 들려줬다. 1569년 네덜란드 정부 당국은 재세례신자들을 붙잡으라는 칙령을 발표했다. 더크는 그를 붙잡으러오는 사람으로부터 얼어붙은 강을 건너 도망쳤다. 그러나 그를 따라오던 추격자가 얼음이 깨지는 바람에 차가운 물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더크는 추격자가 물에 빠지는 것을 보자 곧장 돌아가서 그를 구해 주었다. 그는 자기를 구해준 더크의 행동에 깊이 감명 받아 그를 놓아주려 하였다.

그러나 강둑에서 지켜보던 그의 상관은 더크를 다시 붙잡을 것을 명령했다. 몇 주후 더크는 재세례파라는 이유로 처형장으로 끌려갔다. 사람들은 더크를 산채로 불태워 죽이기 위해 말뚝에 묶고 불을 붙였다. 그는 고통 중에도 “오 주님, 오 하나님”이라고만 소리쳤다.

재세례신앙 운동이 오늘 한국교회에 던져주는 메시지에 대해 호남신대 홍지훈 박사는 `재세례파와 선교'라는 논문에서 후터 마이어의 “세례는 먼저 내적세례, 외적인 물세례, 그리고 그를 따르는 고난”을 인용하며 신앙에 거룩한 삶을 더하는 회복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신앙인으로서 증표에 만족하지 말고 얼마나 철저하게 제자의 삶에 참예하며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교회와 신자가 먼저 용서와 평화의 핵으로 살아감이 필요하다. 현재 메노나이트를 중심으로 전 세계적 비폭력 운동을 일으키는 이유도 이들에게 평화와 용서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나눔과 양보, 화해와 용서가 일으키는 평화의 행진이 넘쳐난다면 실추된 한국교회의 위상은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공동체의 회복이다. 이는 욕심의 비움을 의미한다. 미국 세이비어 교회의 `서번트 리더쉽'도 교회 공동체가 지역과 마을을 섬기기 위해 성장보다는 나눔에 중심을 두며 제자도를 실현하기에 관심을 받고 있다. 결국 교회공동체에 필요한 것은 공동체가 지닌 나눔과 사랑의 회복인 것이다.

재세례신앙운동이 실천하고 지향했던 신앙의 정수들은 한국교회가 지금 무엇을 놓고 무엇을 잡아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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