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교계 D 신문의 부설 D 출판사에서 출판한 한 재미교포 목회자가 쓴 책 이름이 그랬다.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정말인가?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사는가? 대형교회와 한국교회(소형교회)가 함께 살수는 없는 것인가?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는 것은 예외가 없는 필연적인 것인가? 저자의 주장 그대로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살 수 있는 것이라면 한국교회의 역사는 어떻게 기록되어야 하는 것일까? 저자의 주장이 성서적임에 틀림 없다면 이제 한국교회는 대형, 중소형을 가릴 것 없이 그 존(存) 실(失)을 결정해야 하는 역사의 현장에 서야 할 것이다.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의 저자와 필자의 입장이 너무 같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한국교회의 모든 불행, 모든 거짓, 자(資) 본(本)의 신격화, 수량의 신앙(?) 어느 하나도 대형교회로 말미암지 않은 것이 없다. 한국 기독교계는  물론이고, 교회 밖의 상당한 영역까지 대교회로 인해 반도덕적, 반역사적, 반성서적 사고는 물론 행태까지 만연되어 버렸음을 겸손히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숫자를 신성시한다면 그것은 바알리즘과 다른 것이 아니다.


첫째, 반도덕적(反道德的)이라는 데서 그렇다. 반도덕적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대교회와 같은 `괴물'은 없다. 하늘 아래 어떤 경제조직 속에도 한국교회와 같은 불균형은 없다. 성서의 주장대로라면 그것은 곧 지옥이다. 한국교회를 양극화의 표본으로 만든 것이 대형교회라는 것이다.


지금 시중엔 최저 2000억 원, 최대 3000억 원짜리 교회당을 짓는다는 소리에 그 초대형교회가 들어앉게 될 지역의 중소교회들이 야단났단다. 한국기독교, 대형교회들이 미쳐버린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참 모습은 `함께'하는데 있다. 함께 먹으며 함께 엎드리며 함께 노는 무리들 말이다. “함께 살기”를 잃어버린 대형교회들이야 말로 반도덕의 표본 아닌가?


둘째, 반역사적(反歷史的)이라는 데서 그렇다. 누가 뭐라고 해도 누가 아무리 아니라 해도 한국의 대형교회는 `반역사적 원죄'를 지니고 있다.


1960년 박정희 군사 쿠데타는 동서고금의 고전(古典)들, 경전들의 교훈의 핵이 되어온 자유·평화·진리·정의를 대적한 역사적 반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대교회는 5·16이후 이제까지 철저하게 이 5·16 군부세력을 비롯한 권력의 시녀 노릇을 자임해 왔다. 불같은 회개가 있어야 한다.


셋째, 반성서적(反聖書的)이라는 데서 그렇다. 요한복음 10장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목자상'이다. 세계교회 목회자들은 예수께서 제시하신 이 목회자상을 주목 또 주목해야 한다. 목자는 제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낸다는 것이 그 하나고, 다른 하나는 제 양을 사나운 맹수들로부터 지켜낸다는 것이다.


`제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낸다'는 것은 1:1의 인격적 교제를 뜻한다. 1,000명, 10,000명 100,000명하면 그것은 `몰이'이지 인격적인 교제가 아니다. 목회가 아니란 말이다. 더구나 맹수로부터 보호란 정말 헛소리이다. 한국의 대형교회! `사나운 들짐승의 우릿간' 아닌가?

 수(數)라, 양(量)이라는, 힘(物理力)이라는 것들의 전시장 아닌가?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는 오늘을 사는 예언자의 소리 아닌가? 한국의 대형(形)교회여! 너 죽어 한국의 교회를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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