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은 일제가 우리를 강제로 병합한 100년이 되는 해요, 6·25 남북전쟁이 일어난 지 60년이 되며, 4·19혁명을 맞은 지 꼭 50년이 되는 해다. 이러한 것들을 되살려 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자꾸 내 머리 속에는 이 세 사건을 연결하는 무엇이 우리에게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특히 그것들과 기독교의 움직임을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앞의 둘은 매우 분하고 부끄러워 잊고 싶은 일이요, 뒤의 하나는 자랑스럽고 대견하여 그것을 길이 기리고 부추기고 발전시키고 싶은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 사건들이 있은 뒤 기독교가 움직인 것이 재미있다. 국권을 잃을 당시 기독교는 그 세력이 매우 미미하였다. 그러나 뜻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종교의 힘과 품 속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919년에 있었던 3·1운동의 위대한 불꽃과 물결이 일었다. 누가 무엇이라 하여도 그것을 기독교가 민족의 양심과 손을 잡고 일어섰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 힘으로 기독교는 상당한 부분 일제통치 기간에 민족의 양심과 신앙인의 자세를 가지고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해방된 공간에서 기독교는 지리멸렬하였다. 그냥 세력다툼에 이리저리 편승하여 바람부는대로 따라갔을 뿐이다. 일제 말기에 잘못한 것에 대한 회개도 없었고, 해방공간의 창조활동에 긍정대응을 하지 못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그 대가가 6·25전쟁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커다랗게 철퇴를 맞은 것이다. 그 전쟁무렵에 기독교는 예수의 사랑이나 복음대로 살지를 못하였다. 민중이 기대를 거는 새로운 종교가 할 일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였다. 민족과 민중이 갈 길을, 이데올로기와 권력을 넘는 새로운 길로 제시하여 주지 못하였다. 그렇게 하는 대신 그 뒤에도 서로 권력싸움으로 갈가리 찢어지고 갈라졌다. 동시에 깨끗하지 못한 정권에 붙어서 함께 악행했다. 그 때에 터진 것이 세속운동의 4·19혁명이다.

이것은 아직 사회의 때가 묻지 않은 젊은 학생들의 의분의 효과다. 민주를 모르는 구태의연한 부패정권이나 낡은 기성세대에 대한 심판이었으며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모든 낡은 정신에 대한 판결이었다. 자주와 독립과 민주의 정신으로 일어난 사건이었다. 비로소 사람이 사람임을 주장한 공식 선언이었으며, 그것에 반하는 모든 세력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 판결대상에는 물론 독재정권과 함께 지나친 외세중심의 성장만을 꾀하는 기독교도 들어간다. 그런데 미처 무엇인가를 차리기도 전에 또 다른 낡은 세력이 들고 일어나서 새로운 힘을 눌러 버렸다. 그것이 이른바 5·16군사쿠데타다.

그 뒤 일부 기독교는 젊은 정신과 함께 민족과 민주와 사람 사는 세상이 어떠하여야 한다는 관점을 널리 펼치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5·16세력에 대한 저항이요, 한·일회담에 대한 비판이요, 인권신장과 민주실현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억울하고 소외받는 자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착실히 성장했다. 그러나 물론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불안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안심입명하려는 무속신앙식의 기독교팽창운동 역시 활개를 폈다. 그 결과 이제는 기독교세력을 업지 않고는 어떤 선거에서도 이길 수 없게 됐다. 이 때 나온 것이 ‘장로대통령’이요, ‘고소영’권력이다. 이것을 이룰 때 세속정권들이 세우려던 이성과 합리성 사회에 대한 일방통행식의 거부현상이 일어났다. 그 반동으로 나온 것이 오늘의 정권이다. 내가 보기에 그와 같은 현실을 만드는데 기독교는 굉장히 큰 공헌을 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현정권이 비판을 받을 때 기독교 역시 함께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2010년의 정신은 무엇이어야 할까? 강제병합 뒤에 일어난 3·1정신과 4·19정신을 이어받아 군사독재에 항거하던 그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일이다. 그 두 정신은 민족과 민주, 비폭력과 공명정대함이 바닥을 이루었다. 지금은 도덕불감증, 민족정서와 문화의 파괴현상, 자연파괴를 핵심으로 하는 생명파괴의 심각한 도전 앞에 우리가 서 있다. 분단으로 아픔을 겪은 지 60년이 되는 때 분단극복의 활보를 힘차게 내디딜 일이요, 민권과 민주와 통일의 기운을 겪은 지 50년이 되는 때 그 기운이 온 누리에 쫙 퍼지게 해야 할 것이다.

바로 거기에 기독교가 정성을 바쳐야 할 자리가 있다고 본다. 권력자나 부자의 편이 아니라, 낮은 자와 없는 자의 편에 서는 기독교라야 살 가치가 있고, 살려둘 가치가 있을 것이다. 4대강사업과 용산참사와 세종시수정 논란과 허황된 물질풍요의 약속 따위와 같은 맘몬의 신에 저항하는 사람과 생명과 평화와 통일을 심는 일에 함께 하는 기독교가 될 때 우리 사회는 그를 용납할 것이다. 예수의 혁명을 기독교인 개개인이, 교회들 개개가, 그 힘으로 우리 사회에 두루 퍼지게 하는 그것이 2010년의 뜻이라고 우리가 해석한다면 무리일까?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