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우리사회에 존엄사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란을 일게 했던 김 할머니가 사망하였다.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한 후에도, 일반적인 예상을 깨고 202일 동안 생존했다. 이를 통하여 사람들은 새삼 생명의 강인함과 존엄성에 대하여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생명을 다루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동안 김 할머니의 치료를 위하여 수고를 다한 의료진과 간호를 위하여 애쓴 가족들, 그리고 생명의 문제를 가지고 고민해 온 관련자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의 문제에 대하여 처음으로 공적인 입장을 밝힌 곳은 대법원이다. 대법원은 문제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이례적으로 공개변론을 개최하기까지 하면서 최선의 결론을 도출하고자 하였다. 대법원은 가족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연명치료를 중단하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그 요건과 절차를 제시하였다. 즉 ①의식의 회복 가능성이 없고 ②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생체기능의 상실을 회복할 수 없으며 ③환자의 신체 상태에 비추어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한 경우라고 하였다. 그런 경우에 환자가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대법원은 사전의료지시서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소송이 제기된 경우가 아니라면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 여부는 병원윤리위원회의 판단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 문제를 가지고 많은 고민을 해 오던 세브란스 병원은 대법원의 견해를 받아들여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게 되었다. 물론 세브란스병원으로서는 병원 나름의 생명에 대한 견해에 따라 인공호흡기 제거의 요건과 절차를 만들어 공표하였다. 그런데, 김 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면 곧 사망하리라고 판단한 대법원의 예상과는 달리, 자율호흡이 회복되어 일반 환자의 수준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김 할머니는 의학상식과 일반의 예상을 넘어, 생명의 강인함을 보여 주었고, 우리사회에 생명에 대한 신중한 취급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였다.

세브란스병원은 환자의 생존기간이 상당히 남아 있다는 점을 주장하였고, 따라서 연명치료가 무의미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하였지만, 대법원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연명치료가 무의미한가 유의미한가에 대하여는 환자와 가족의 사정, 심지어 병원의 상태에 따라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라 존엄사라는 미명아래 단 한 생명이라도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생명의 문제는 매우 신중하고 엄격하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세브란스병원의 고뇌는 생명의 문제가 하나님에게 속하는 것이라는 기독교적 이해에서 그 존엄성을 지키면서도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고뇌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김 할머니 사건을 보면서 생명을 지키려는 의료진의 피나는 노력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고, 생명의 문제를 가지고 깊이 고민하는 가족들과 병원의 모습을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원래 생명의 근원과 의미 등 생명의 문제에 대한 전문가임을 자처해온 종교계, 특히 기독교계의 방향제시가 보이지 않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생명의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의료진, 가족, 병원에 대하여 기독교가 어떻게 동참했는가를 돌이켜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물론 우리사회가 인간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케어 할 수 있을 만큼 성숙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생명에 대한 이해마저도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기독교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기독교는 현실의 문제와 관련하여 생명과 죽음의 의미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오늘날의 생명경시 풍조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하나님에게 속한 생명을 인간의 손으로 다루어 보겠다는 것은 교만의 극치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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