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우니 게을러진다. 방학이라 집에만 콕 처박혀(방콕대학) 있다가 고교동창회 모임이 있어 다녀왔다. 오랫동안 각자 삶의 현장에서 찌푸리며 살다가 동문수학하던 옛 친구들을 만나니 모두 어린애들과 같이 순수해졌다. 육십 대 중반을 살아가는 남녀 친구들이 격의 없이 이름을 부르고, 농담을 하고, 떠들고, 웃으며 저녁을 먹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뱃가죽이 아프도록 웃었고 덕분에 스트레스를 날려 보낼 수 있었다.

우리가 날마다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세상에서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웃을 수없는 코미디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평화롭게 살고 있는 마을에 정치꾼들이 난데없이 행정부처를 옮겨 도시를 만들겠다고 하여 국론이 분열되고 여야는 머리 터지게 싸움질이다. 충청도 민심을 얻어 선거에서 이겨보자는 속셈이 아니었던가? 왜 거기에 꼭 행정부처를 옮겨 놔야만 수도권 과밀이 해소되고 국토의 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인가? 원안을 수정하면, 경제적 자족도시를 만들면 천재지변이라도 난다는 말인가?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웃을 수 없는 코미디다. 너무 자주 목소리 큰 소수가 여론을 호도하여 진실을 거짓으로, 거짓을 진실로 만들어 가고 있는 코미디 세상에서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것이다.

안병욱 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논어〉에 낙(樂)자가 42회 나온다고 한다. 그만큼 공자는 낙을 강조한 것이다.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에 보면 子曰,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고 했다. “공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즐거움을 차단하는 사람들과 사건과 일들로 가득하다. 벗이 있어 스스로 먼 곳에서 찾아오는 기쁨(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도 없고, 맹자의 말씀과 같이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즐거움(得天下英才而 敎育之 三樂也)도 없다. 득세한 자들의 세도만 있다. 국민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지도자라도 목소리 큰 소수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처음부터 헐뜯는다. 정치(政治)는 정치(正治)이어야 하는데 정치가 수치(羞恥)가 되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가장 그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는 집단이 정치권이다. 여기는 예의도 염치도 부끄러움도 없다.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쓰고서도 여전히 뻔뻔하다. 이 더러운 물결은 이제 종교의 뜰까지 밀려와 질서를 짓밟고 진리를 유린한다. 터무니도 없는 위인이 꼼수와 술수를 발휘하여 단체의 장이 되고 마침내는 그 연속선에서 한 단체를 몰락의 위험으로 몰아가고 있다. 기도도 안하고, 공부도 안하여 실력도 영력도 없는 인간들이 속이고, 거짓말 하고, 거드럭거리고, 부정하고, 도둑질하는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나는 어느 때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웃음을 상실해가고 있다. 예사로운 코미디로는 웃을 수가 없다. 웃음을 잃으면 건강이 나빠지고 행복지수가 낮아진다. 요사이 “웃음치료”가 대 유행이다. 웃으면 뇌에서 좋은 호르몬이 분비 되어 사람을 건강하게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웃을 수 없게 한다. 진실한 사람, 착한 사람이 밟히고 천하에 몹쓸 인간, 명예욕, 탐욕, 술수, 교만과 독선으로 가득한 인격 장애인이 지도자라고 판을 치는 코미디의 구조 속에서 어떻게 웃을 수 있다는 말인가?

예수께서 감란산 위에 앉으셔서 종말에 대한 예언을 하셨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라”(마 24:7∼8). 이것은 앞에서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24:5)는 말씀의 결과이다. 가짜가 진짜로, 적그리스도가 그리스도로, 비진라가 진리로 뒤바뀐 결과가 오늘의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인간탐욕의 극대화, 오만의 극치, 강자독식의 정글법칙이 인류의 종말을 앞당기고 있다.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참 목자라고, 그리스도(로고스)의 제자라고 속이는 저 파렴치한의 코미디를 보고 어떻게 웃을 수 있겠는가? 가진 자, 권력 있는 자, 악한 자들은 처처의 기근과 지진과 재앙 피하고 힘 없고 선량한 민중들은 굶주리고, 죽어가는 아이러니를 보고 어떻게 웃을 수 있는가? 먹을 것이 없어 흙과자를 먹으면서도 하나님을 찾는 착한 민중은 왜 비극의 주인공이어야 하는가? 알카이다의 자살폭탄테러에 무고하게 죽어가는 저 수많은 사람들의 어처구니없는 지구촌의 비극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진실이 왜곡되고 악인이 득세하는 코미디 세상에서 점점 웃음을 잃어가고 있다. 하나님! 저 천국 웃음과 평화의 나라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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