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사는 사람은 자기의 생명 뿌리와 이 땅에 사는 사람이 살며 만들어진 사건과 삶의 자취를 알아야 한다. 그것이 한 사람의 과거이며 민족의 역사이다. 과거라는 시간 속에 살아온 선배들의 생활은 그 때 그들만의 삶만은 아니다. 역사에는 사건이 있고 그 사건의 필연성과 인위성이 있어 후대에게 주는 교훈과 지혜의 가르침이 있다. 이것을 후대가 듣고 배울 수 있다면 과거라는 역사는 조상이 주는 삶의 가르침으로, 그들의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는 바로 역사의 산 교과서다. 그래서 지나온 선배들의 삶을 대하는 사람은 그 때 그 사건을 `지금'이라는 시각에서 해석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한국 사람은 대한민국이라고 불리어지는 이 나라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먼저 살아온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살아온 삶을 전하려 하지 않는다. 아예 의지가 없는 것인가? 어떻게 국사를 선택과목으로 할 수 있는가. 이건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가 없다.


세계 속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세계 공용어인 영어와 이 땅의 말인 국어, 그리고 거래에서 중요한 계산법이 되는 수학은 필수과목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인정한다. 동시에 `나'라는 한 존재가 있기까지의 그 시간 속 사건인 역사도 인정받아야 한다.


교육은 지식만을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기에 역사는 그 중요성을 가진다. 역사라는 시간 속에서 과거가 하드웨어라면 지금을 사는 현재는 소프트웨어일 것이다. 근본이 되는 과거라는 뿌리가 없이 현재를 사는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어떻게 알고 응용 할 수 있을까?


역사 교육에 소홀히 하거나 가볍게 여긴다는 것은 선배들이 역사 후배들에게 저지르는 직무유기의 과오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성서 안에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돼 있다. 성서의 역사가 진실이냐 아니냐 하는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이 된다. 성서 속에 기록된 역사는 구약 안에 많이 기록돼 있는데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열두 부족 중에서 유다부족을 중심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이 구약학의 정설로 인정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 역사 기록은 실제의 역사에 대하여 신앙으로 해석한 신앙역사로 인정되고 있다.


당시 유대인들은 우리들의 조상은 누구인가? 우리가 어떻게 가나안에 살게 된 것일까? 하고 질문한다. 이에 모세와 선지자는 그 땅의 사람들에게 외친다. “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가 거기에서 소수로 거류하였다.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만족이 되었는데”(신명기 26:5) 라고 전해주고 있다. 한마디로 별 볼일 없는 떠돌이 족속이요 약자로 종살이하던 자들이 나의 조상이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에스겔 16장 3절에서는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머니는 헤엣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아래 구절엔 너는 길가에 피를 씻김을 받지 못한 채 버려진 신생아 같았다고까지 표현했다. 지금 너는 남의 땅에 살고 있지만 네가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너의 조상임을 전해주고 있다. 그 땅이 어떻게 우리의 땅이 되었으며 증오의 대상이며 대적자인 그들이 어떻게 우리의 조상이 되었는지를 알려면 성경 통해야 핵심을 알게 된다. 그 중심은 하나님의 선택과 하나님과 약속했다는 계약 백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 안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너의 조상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그들의 신앙고백으로 사용하고 있다. 나 하나가 아무리 먼 곳, 낯 선 곳에 혼자 있어도 조상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받아들이며 신앙의 이스라엘로 살고 있음을 알게 한다.

역사는 이렇게 중요하다. 과거 삶의 자욱은 그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디엔가 오늘 현재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이다. 우리 신앙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그 신앙 속에 중심을 놓치지 말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교회라고, 복음이 없거나 다른 것으로 대치시킨 설교, 주님을 밀어내 예수님의 사랑이 없는 신앙 모임이 오늘 우리 `현재'의 모습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날마다 뼈를 깎듯 성찰해야 한다. 역사의 사건·인물들은 바로 오늘 우리를 비추며 뭔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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