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할 마음이 있다. 회개하고 싶다. 회개하겠다. 먼저는 사순절 기간이면서도 기독교 신자들 모두에게도 설득력 있는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니 죄가 큼을 마음 깊이 통감한다. 이사야서를 읽으면 7장 14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하였고, 9장 6절에는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왔고 한 아들은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 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니라' 하였다.

이를 정리하면 7장의 말씀은 임마누엘의 이름으로 하나님이 오신다.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또는 사람처럼 살기 위하여 오신다 하였고 9장에는 그분의 성격을 말씀해 주고 있다.

이어서 11장 1절 이하에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라 하였다. 어느 누구의 문중(門中)에서 메시아 또는 임마누엘 하나님이 태어나실 것까지 계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11장 6절에서 8절까지는 `그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다' 하였다.

이 말씀의 뜻을 조금더 깊이 살펴야 한다. `들소리'라는 제호를 주 하나님께 선물받을 때 필자는 이 말씀(사 11:6∼8)을 읽어가던 순간, 바로 이거다. 이 말씀이다. 이는 `모든 생명가진 것들이 자기 생명의 날까지 복되게 살게 하려는 의지다. 그렇다면 이 말씀으로 장차 이사야 선지자 만큼의 사역을 해낼 우리가 여기 이 말씀에서 운동의 방향을 찾음이 옳다'라고 하여 `들소리'라 이름 지었다.

이 말씀은 메시아의 날, 메시아 이상이 성취되는 그날까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좌우명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보다는 더 우리들의 귀에 익숙한 말씀을 이사야는 그의 책 53장에서 말해주고 있다. 그 가운데 5절을 보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하는 말씀으로 우리를 크게 감동시켜 주었다.

이사야 만큼 투철한 계시력, 하나님의 심중을 깊이 헤아릴 수 있는 그의 통찰력이 참으로 부럽다. 필자는 구약에서 이사야, 신약에서 요한복음 저자를 대할 때마다 아직도 열등감을 느낀다. 저들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가슴속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은 언제쯤 허락받을 수 있을까? 여기 이 대목에서 필자는 필자 자신의 한계로 말미암은 무력감 때문에 고통하는 시간이 많다. 내가 무엇, 또는 어떤 인물이 되고자 해서가 아니라 시대의 절박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서이다.

앞서 필자는 이사야 선지자의 글 중에서 몇군데 주요 부분을 인용 해석해 보았다. 그는 메시아 예수의 등장을 정확하게 예고했으며, 그것도 메시아 오시기 700년 또는 600여년 전에 등장한 선지자였다는 점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메시아 강림 예고를 적중시켰으며, 또 이 말씀을 통해서 이 백성을 메시아 앞으로 인도했는데 신약교회는 아직도 캄캄이다. 설계가 없다. 미래의 교회, 오고 오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 제시가 없다.

바로 이같은 수준의 시대에 태어나서 세월을 허송하는가 싶어서 부끄럽고 죄송하다. 바로 이 부분이 나의 부끄러움이요, 그래서 나의 회개가 여기에 있다.〈無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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