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서의 선교현장 돋보기(8)

■ 캄보디아

캄보디아는 최근 인근 동남아국가들의 빠른 개방과 경제성장에 자극을 받아 개방적인 경제노선을 채택하고 경제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는 외국의 선교사의 입국과 활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현재 이 나라의 기독교인구 비중은 매우 미미하지만, 불교계와 보수파는 그 성장률이 높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불교계와 보수적 문화인사의 압력은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 하듯 몇 해 전부터 교회가 각 가정을 호별로 전도 방문하는 행위와 가두에서 노방전도활동을 벌이는 행위를 금지하였다.

캄보디아의 현재의 국왕은 전임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의 아들인 노로돔 시하모니 이다. 노로돔 시하모니 왕자의 정치적 입지는 상당히 특이하다. 그의 특이한 입지를 확인하려면 캄보디아의 현대사에 대한 간단한 이해가 필요하다.

원래 캄보디아는 시아누크 국왕이 통치하던 나라이지만, 1975년에 공산화 되면서 시아누크 국왕은 캄보디아를 탈출하여 북한에서 오랜 망명생활을 하였다. 이후 캄보디아는 내전을 거쳐 시아누크 국왕이 복귀 했다. 그러나 과거처럼 절대 군주가 아니라 입헌군주제의 국왕으로 복귀한 것이다. 입헌군주제이니만큼 실제 정치를 담당할 첫 의회와 내각을 구성하기 위한 선거가 1997년에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 훈센이 이끄는 집권당인 캄보디아 인민당이 승리했다. 이 정당은 과거 시아누크국왕을 축출시키고 사회주의 체제를 이끌었던 구 집권당의 후신이다. 반면 선거에 패하여 야당이 된 정당은 국왕의 아들인 리나리드 왕자가 이끄는 민족연합전선이었다.

결국 국왕의 아들이 이끄는 정당이 야당이 되고, 국왕이 야당의 후견인이 되는 기이한 정치 구조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리나리드 왕자는 이에 불복하고 장외투쟁에 들어갔다. 정부는 야당과 리나리드 왕자의 장외투쟁에 과잉진압으로 맞섰고, 결국 리나리드는 국외로 도피했다.

이에 정치적 불안을 느낀 국왕과 캄보디아의 안정을 바라는 국제사회의 중재로 리나리드는 귀국했고, 1998년에는 훈센을 1총리로, 리나리드를 2총리로 하는 이상한 연립정부가 출범했다. 이러한 연정 체제는 캄보디아 사회의 독특한 줄서기 문화를 만들었다.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가 1총리 라인과 2총리 라인으로 갈려 미묘한 갈등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정치 파벌싸움에서 자유롭지 못한 캄보디아 교회


이는 종교계도 예외가 아니다. 시아누크 복위 이후 기독교는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캄보디아 정부 역시 기독교의 성장을 크게 방해하지 않는 등 선교의 조건은 매우 좋다. 그러나 교회마저도 1총리파 교회와 2총리파 교회가 있고, 목사들도 1총리파 목사와 2총리파 목사가 있다. 또 외국인 선교사들까지도 행정적으로 필요한 일을 처리하려면 두 라인 가운데 한 라인을 잡아야 하는 독특한 구조다. 이러다 보니 교회가 정치 바람과 계파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하여 하나됨을 저해하고 있다.

이후 긴 시간이 지나면서 1총리, 2총리의 과도 체제는 없어지고 훈센이 정국을 이끌고 있으나 국왕의 아들로서, 제 1야당 지도자로서의 리나리드의 영향력과 사회 각 분야에서의 리나리드의 지분은 여전하다. 그런데 이번에 즉위한 새 국왕은 바로 이 리나리드의 이복동생이다.

이처럼 캄보디아 주요 지도자들의 관계는 가깝고도 멀고, 복잡하면서 미묘하게 얽혀 있다. 따라서 캄보디아 사회의 모든 분야는 극심한 눈치 보기와 줄서기, 그리고 줄잡기가 계속될 수밖에 없고, 교회 역시 여기서 별로 자유롭지 못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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