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명하고
땅이 부르는 법칙에 따라서
메시아는 다시 오셔야 한다.
인간들이 교활하여 다시는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지만 메시아는
다시 오시마, 하신 약속의 말씀을 따라 곧 오셔야 할 것이다.


들소리 창사 33주년 아침의 기도시간에 나는 재림시대의 열망을 제2기 들소리 사명으로 확신했다. 아브라함의 시간에 맞춘다면 앞으로 2천여 년을 기다려야 하고, 다윗의 시간이면 1천년, 이사야의 시간으로 기준을 삼아도 7백여 년은 더 기다려야 할 재림의 시대여, 그렇다면 이제 서둔다 하여도 빠르지 않은 시간이다.

내게 오시는 메시아여, 다시 오심의 뜻을 찾아 세우려 하는데 제 의견이 어떠한가요? 첫째, 인류 구원사(救援史)의 구체적인 출발점은 아브라함일 것이다. 그가 100살에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이삭을 모리아 산에 바치는 결단을 향해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의 행위과정에서 이삭을 제물로 바침은 마치 골고다에서 대속의 제물로 예수를 바치는 하나님의 행위를 연상시킨다.

이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향한 구체적인 하나님의 결단이 된다. 둘째도 시편 51편에 나타난 다윗의 회개문을 보면 인류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방향을 발견하게 된다. 회개다. 자기의 죄와 죄성에 대한 근원적 탐구와 이에 대한 용서의 방법은 십자가의 메시아 대속죄로 연결됨을 볼 수 있다.

끝으로 메시아의 길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의 하나님의 선언에서 발견하게 된다. 하늘의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사 사람을 하나님처럼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비장의 카드가 여기에 있다.

다시 정리하면 인간이 어느 만큼의 죄인인가, 즉 인간본성 이해와 그 대책으로의 십자가 대속, 그리고 천지(天地)간의 질서, 종교와 인간의 관계, 종교 아닌 종교시대의 완성을 향한 메시아 예수의 등장, 그리고 재등장은 인류 구원사의 완전형을 암시하고 있다.

메시아 다시 오심의 날이 와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기독교는 오시지 않아야 한다, 오지 말았으면, 오지 못할 것이다. 그는 다시 올 수 없다는 훼방을 놓고 있는 것이 기독교의 현실이다. 그러나 구약은 아브라함, 아니 그 이전부터 메시아의 등장을 향한 열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구약의 기록에서만 살펴보아도 수천번이 더 되는데 그들 구약시대 구성원 모두의 소원을 기록한다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이 된다.

메시아가 다시 와야 한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요 16:12) 이라고 하셨다. 이때 조건을 말씀하셨는데,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요 16:13)이라 하셨다. 그러나 여기서의 말씀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경지이다.


아직은 기독교가 미숙하여 삼위일체의 균형을 갖추지 못하여 지상위에 이슬람을 부르고(AD 610), 동서교회의 결별(AD 1054) 앞에서 기독교는 이슬람과 유대교, 또 기독교 자체의 갈등까지도 해결해야만 참된 메시아 재림시대의 문이 열릴 것이다.

이에 대한 각오가 되어 있는가? 먼저는 기독교 내부갈등 극복이다. 먼저는 AD 325년 제1차 니케아 회의의 재심의요, 그 다음으로 AD 431년 에베소 세계 종교회의에서 네스토리우스 콘스탄티노풀 총대주교를 기독론 시비로 몰아붙여 이단정죄 추방을 했던 사건 재심의가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서, 기독교 자신은 로마제국을 선물로 받았으면서도 예수 십자가에 메달아 죽인 죄를 용서하지 못한 용렬하고 비겁한 죄를 저지르면서 아직도 유대인들을 용서하지 않는 기독교의 행위는 무한 범죄가 된다. 그 결과 AD 610년 이슬람을 아라비아에서 일어나게 하였고, 이제는 유대교와 이슬람의 뒷발질이 앞발질에 휘말려 기독교는 바로 서기가 매우 힘들어졌다.

그리고 AD 800년 샤를마유를 서로마의 황제로 세운 로마교황 레오 3세와 샤를마뉴의 동반범죄, 사를마뉴의 그 많은 살육, 특히 어느날 하루에 작센족 4,000명의 목을 자른 죄는 어찌할 것인가? 그리고 AD 1097년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죄, 그보다 앞서 AD 1054년 성령발출론 시비로 말미암은 동서 로마교회의 결별로 말미암은 기독교 세계의 급격한 쇠락을 부른 일, AD 1204년, 제4차 십자군이 로마제국, 곧 자기의 제국 황제가 통치하는 로마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풀을 침공하여 뻔뻔스럽게도 그곳에다 `라틴왕국'을 세워 통치하는 몰염치한 살인적 범죄행위, 그 결과 AD 1453년 로마제국을 영원히 오스만투르크 이슬람에게 빼앗겨버린 범죄행위까지만 해도 기독교는 용서받기 어려운 죄악을 저질렀다.

메시아 예수의 재림 이전에 기독교는 앞서 열거한 내용들에 대해서 분명한 자기 해명이 있어야 하고 구체적 사죄를 요구하는 회개가 있어야 하낟. 물론 16세기 말 신구 기독교의 30년 전쟁, 재세례파에 대한 무한 학대와 살생죄, 무신론 시대를 부른죄, 찰스다윈과 칼 마르크스를 불러들인 죄,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불러들인 죄까지 기독교는 책임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세계 기독교는 메시아 재림을 앞두고 청산하고 회개해야 할 일들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눈을 속이려 하지 마라. 이 모든 죄들이 모두 하나님이 지켜보시는 현장에서 이루어진 기독교의 죄악들이다.

물론 기독교가 인류사 위에서 잘한 일도 많이 있다. 그러나 역사는 결과가 말해준다 해도 우리는 할 말이 없다. 기독교여, 차라리 `파산절차'를 밟는 것이 어떨까?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기독교를 어찌 할까.

한국기독교는 더욱 천박한 일들을 지금 이 시간에도 즐기고 있다. 예배당을 무당 푸닥거리, 점쟁이 잔치집을 만들고, 자기가 개척하였다 하여 자기 자식에게 교회를 세습하느라고 온갖 술수를 부리는 자들, 목사질 하면서 수십억, 그 이상의 재물을 모아서 `목사재벌'이 등장했다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있지 않던가. 천국에 보내준다고 신자 만든다면서 자기가 천국문을 막고 있는 목회자, 돈주고 감투사고, 박사학위 사는 등 범죄의 수준들이 너무나 치졸한 경우가 너무 많다.

어떤 이들은(의사나 전도자들은) 예수 믿겠다는 사람들에게 믿고 맡길 교회를 찾기가 힘들어서 고민이라는 말을 듣기까지 되었다. 새신자를 얻었는데, 그들이 사는 곳에서 교회당까지 적절한 거리 안에 마땅히 소개할 교회가 없다는 것이다.

위에서 지적한 내용들을 거듭 상고해 볼 필요가 있다. 저지른 죄악들을 살아 있는 동안에 다 해결할 수 없다. 죽음의 절차, 대속죄의 철저한 과정이 필요하다. 새롭게 태어나자는 열정으로, 다시 가르침을 받겠다는 겸허한 자세로 재림 예수시대를 불러야 한다.

지난날 2천여 년의 기독교 죄악을 구조적으로 살펴보면 시스템(system) 부제가 기독교다운, 모습을 만드는데 실패한 부분이 많으며,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성경이 선물한 적정량 메시아 예수의 에너지(진리)를 절반도 못 챙겨 먹었으니 기독교는 영양실조 상태가 되어 있다. 제 몸을 가눌 수 있는 능력이 없으니 역사 속에서 실수만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다시 가르침을 받기 위하여 우리에게는 재림 메시아 시대가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無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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