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버려 둬!”

어느 제자가 스승에게 세속의 일에 대하여 부당함을 말씀드렸더니 스승이 했다는 답변이다. 말해주어도 받아들이지 않고 가르친들 배운대로 하지 않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큰 스승인들 어찌 하겠는가? 그릇된 생각과 주장과 그에 따른 행동은 그 나름대로 인생의 값비싼 지불을 치르고서야 아는 것이 인간인 것을.

그런데 요즘은 누가 스승이고 누가 제자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아니, 스승의 가르침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들으려 하지 않는다. 왜일까?

나에게는 몇 가지 행동 규범이 있다. 그중 하나는 거절 혹은 반대의 뜻을 전할 때 상대에게 불쾌하지 않게 하자. 또 하나는 말을 말로만 듣지 말고 그 말을 하는 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말하는 자의 소리뿐만 아니라 목소리의 강약고저를 읽고 표정을 읽고, 그의 자세를 읽어야 한다. 그러려니 경청해야만 한다.

하늘을 향해 내가 사는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위성이 오르고, 형제라지만 적일 수밖에 없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서해의 군함이 젊은 생명들을 보호하기엔 너무도 허무하게 허리가 잘려 세계의 여론에 진실이 어느 것인지 알 수 없게 하고 있다.

얼마 전 치른 선거에서는 이긴 자의 쾌재, 또다른 한쪽에서는 결과에 대하여 네가 책임지라며 마녀사냥을 하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씁쓸하다. 좋아서도 아니었음을, 둘 다 싫은데 더 좋은 것이 없어 선택의 기로에서 마지못해 선택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네 어른들이 늘 하신 말씀처럼 “밥 값 좀 하시오” 하고 소리치고 싶을 때가 많다. 정치인의 말이 정책이 되어야 하겠는데 정치인이 되기 위한 말들이 될 때 거기엔 이미 신뢰가 사라지고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너무도 큰 부끄러움들이 있다. 감추기라도 했으면 싶은 꼴들이 신앙의 이름으로 화면과 활자에 오르내리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종교와 종단의 일들. 사찰과 교회가 어디 개인의 소유나 유명세에 따라 움직여지는 것인가?

진실을 설명한 법이 어디 있으며 하늘을 증명한 말씀이 어디 있느냐는 물음이 우리를 향해 던져질 때 무엇이라 할 것인가. 부처가 계시지 않는 불자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이 계실 수 없도록 다른 것으로 가득 찬 심령들. 거룩함을 가장한 출세와 성공들 때문에 계셔야 할 그분들의 자리가 없다.

'내버려 둬!' 정말 내버려 둬야 할까? 얼마만큼 잃어버리고 헤매야 할까? 길 위에서 길을 묻듯이 내가 진리요 길이라 하셨는데도 어느새 우리 스스로가 그 말을 평가하고 있다. 어쩌면 불신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지나 않은가?

곤충학자의 글에서 본 것 같다. 기온에 민감한 개구리도 찬물에 두고 서서히 온도를 올리면 물이 뜨거워지는데도 뜨거운 물 밖으로 나오지 않고 끝내는 배를 하늘로 두고 데어 죽는다고 한다. 익숙함과 평안함이 주는 `독성'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행이다.

세상이 인간에 의해 움직이면서도 결국은 진리에 의해 이루어지고 만다고 알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너와 나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역사는 한 번도 그 목표를 다르게 하시지 않으실 것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교회를 찾자. 그리고 가만히 듣자.

예수님과 제자들이 말씀하시고 부탁한 것이 있다. 그 말대로 살자. 그것이 우리의 구원이며, 축복이 되리라. 이제 세상을 살자. 하늘 사람으로 살자. 너와 내가 진리로 살아지기까지 하늘을 읽고 땅을 읽으며 생명의 소리들을 마음으로 읽자.

한사발의 찬물, 대숲을 노니는 실바람의 시원함. 인간의 냄새가 섞이지 않은 계곡에서 흐르는 물의 가르침을 듣고 싶다. 그런데 아직도 참 사람의 냄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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