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7일 헌법재판소는 잔여 배아에 대해 5년의 보존 기간을 정하고 이후 폐기하도록 한 생명윤리법 제16조 1항, 제2항 부분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2004년 12월 체외수정되어 만들어진 배아 및 그들의 `부모', 그리고 윤리학자와 법학자 등이 청구한 헌법소원심판에 대한 판결이다.

요는 체외수정 후 임신목적으로 사용된 인간배아를 제외한 나머지 잔여배아에 대해 5년의 보존기간을 두고, 그 이후에 `부모'가 동의하면 연구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 현행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에 위헌의 요소가 없다는 것이다.

이 판결의 결과 그동안 논란의 여지가 있었던 잔여배아를 사용한 연구, 특히 배아줄기세포연구가 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간인 배아를 연구 목적으로 사용하여 파괴한다는 데 대해 여전히 우려하는 시각이 있으며, 천주교회와 일부 보수적인 교단은 이러한 입장을 굳게 견지하고 있다.

이들의 우려는 인간의 생명은 정자와 난자가 수정한 배아로부터 시작되며, 배아로부터 인간 개체까지 특정 시점에서 인간이 아니었다가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볼 때 배아는 우리 중에서 가장 약한 인간으로 볼 수 있으며 따라서 배아의 파괴와 연구를 허용한 이번 판결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헌재의 판결은 바로 이러한 지점을 겨냥하고 있다. 즉 배아가 모체에 착상되거나 원시선이 나타나지 않은 이상 독립된 인간과 배아 간의 개체적 연속성을 확정하기 어렵고, 착상 이전의 배아를 인간으로 인식하거나 그와 같이 취급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사회적 승인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헌법재판관 중에 천주교 및 기독교 신자들이 있었는데도 이와 같은 입장에 대해 전원 일치의 판결이 가능했던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착상 이전의 인간 배아를 독립된 인간 개체와 같은 수준의 `인간'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기독교계 내부에도 여러 입장들이 있다. 이것은 `신앙'의 문제라기보다는 `관점'의 문제로 보인다. 전승과 교회의 권위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천주교와 달리, 개신교에서는 성서와 양심에 비추어 볼 때 배아의 도덕적 지위에 대한 일치된 입장을 발견하기 어렵다.

체외수정된 잔여배아라는 존재 자체가 시험관아기 시술이 등장한 1978년 이전에는 불가능했고, 또 1990년대 후반 이후 이 잔여배아로부터 줄기세포를 수립하기 전까지는 배아에 대한 연구라는 것도 지극히 한정되었기 때문이다. 

배아가 우리의 도덕적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매우 예민한 대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어쨌거나 인간으로 발생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또 특정한 개인으로부터 얻은 정자와 난자가 결합한 산물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독립적 인간 개체가 가지고 있는 것과 동일한 만큼의 권리와 보호를 받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시각이 가능하다.

정작 우려되는 것은 `배아를 파괴하는 것은 살인이다'와 `배아는 세포덩어리에 불과하므로 연구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선동적이고 독단적인 주장들이다. 이렇듯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서로 간에 대화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며, 그것이 더욱 생산적일 것이다.

창조질서와 생명의 소중함을 연구 현장에서 지켜나가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할 일이 무엇인지 더욱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판결은 논의의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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