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서의 선교현장 돋보기(27)

세상에는 종교분쟁이라고 부르는 것이 많다. 그러나 이들 분쟁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실은 종족간의 분쟁, 경제적 이권을 다투는 분쟁, 영토 분쟁인 경우가 많다. 다만 종교라는 명분이 포장되어 있을 뿐이다. 나이지리아의 기독교와 이슬람 간 갈등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나이지리아는 인구 1억 3천만으로 아프리카 최다 인구국가이며,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이다. 그리고 250개 종족이 한 나라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최다종족 국가로 대체로 보면 하우사족과 플라니족의 혼혈족인 하우사플라니족(이하 하우사족)과 요루바족, 그리고 이그보족 3대 종족과 나머지 군소종족의 구성이라고 보면 된다.

분쟁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서 원인을 찾다 보면 이곳을 통치했던 영국 식민정부의 탓을 어느 정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식민정부의 입장에서 이들 3대 종족, 더 나가서 250개 종족이 일치단결하여 식민정부에 대항하는 것은 가장 생각하기 싫은 가능성이다.

이를 미리 막기 위해서 3대 종족 사이를 이간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대체로 북쪽은 하우사족 거주지역이고, 남동부는 이그보족, 남서부는 요루바족 거주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북쪽 하우사족의 거주지는 의도적으로 선교사들의 파견을 억제했다. 원래 이슬람 신자들인 이들이 살고 있는 북쪽 지역은 영국의 방조에 의해 이슬람 색채가 강화되었다. 반면 남쪽에 대해서는 기독교 선교사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이미 종족으로 갈린 남북간을 종교적으로도 확실히 나눠 놓았다.

여기에 더하여 영국의 투자는 남쪽에 집중된 반면, 식민지 체제의 방위를 위해 현지 군인을 징발할 때는 북쪽 하우사족을 징발했다. 자연스럽게 하우사족과 영국 식민정부는 군사적, 정치적으로 유착되었다. 때문에 1960년 독립 후 지금까지 일부 예외는 있었지만, 이슬람을 믿는 하우사족이 정치권력을 장악했고, 경제권은 남동부의 이그보족이 장악하는 구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연히 하우사족은 정치권력을 이용하여 경제 주도권까지 접수하려는 시도를 하고, 이그보족은 이에 반발하는 갈등구도가 독립 후 내내 계속되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변수는 요루바족이 거주하는 남서쪽의 유전지대의 문제이다. 요루바족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있는 유전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사실상의 주인인 국영기업이 이를 개발하고, 그 이익의 대부분이 하우사족에게 넘어가는 것에 대한 박탈감이 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발생한 갈등의 대표적인 사건이 1966년의 비아프라 내전이다. 요루바족은 유전의 이익을 하우사족에게 넘기고 싶지 않다는 불만과 박탈감으로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북부 정부군은 우세한 화력으로 쿠데타군을 제압했고, 이후 남쪽 지역에 대한 가혹한 탄압을 전개하면서 그 결과로 200만 명 이상이나 사망했다.

이 정도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고 나이지리아의 내부를 들여다본다면 왜 그들이 상대 종교 측의 사소한 자극에도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이해가 갈 것 같다. 이러한 양 종교 간의 갈등관계의 결정적인 계기는 1999년의 올루세곤 오바산조의 대통령 당선과 취임이다.

그는 나이지리아 역사상 드물게 기독교인 대통령이다. 그가 대권을 쥐자 북부 하우사족은 위기감을 느꼈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적 주도권을 쥔 남쪽에게 정치적 주도권마저 빼앗기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었다.
이러한 위기감 속에서 1999년 말에서 2000년 초로 넘어가면서 잠파라주를 필두로, 카노주, 플라투주 등 북부 12개 주에서 이슬람 율법을 실정법으로 삼아 적용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슬람의 종교 율법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민형사상의 실정법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와 같이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반목과 상대방에 대한 감정의 골로 인해 아주 사소한 자극조차도 크게 작용하여 폭발하면서 양 종교간, 종족 간의 대형 충돌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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