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을 기뻐한 사람들

[설교-백종선]


■누가복음 2:1∼14

오늘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신 성탄을 기념하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오셔서 우리의 죄 값을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자가 우리를 찾아오신 기쁨과 소망의 날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날을 기념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러 이 땅에 오셨건만 사람들은 영접하지도 아니했고 기뻐하지도 아니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 하셨을 때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 했습니다. 누가 어떤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했습니까?

1. 가난한 자, 짓밟힌 자, 실패한 자, 병든 자, 죄인으로 낙인이 찍힌 자…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가 오심을 기뻐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쓰임 받은 요셉과 마리아를 생각해 보십시다.

요셉은 평생 목공소를 경영하며 살아야지 하는 평범한 생각을 가진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시골 동네의 청년이었습니다. 나사렛 동네는 갈릴리 지역 63개 마을 가운데서도 그 이름이 끼지 못하는 아주 후진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듣고 밤중에 찾아온 목자들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당시에 목자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천민 중의 하나였습니다. 남의 양떼들을 밤새 지켜 주는 것을 생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무식한 사람들이었고, 성전에도 예배를 드릴 때도 바깥마당에서 서성거리다가 돌아와야 하는 천민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예수님이 오셨을 때 기뻐하고 환영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세상적으로 부유하고 명예와 권세가 있는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유해서 예수님을 기뻐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를 꼭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참으로 기뻐하면서, 내 마음 속에 모시는 일은 세상적인 것으로 가득차면 불가능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설령 내가 성공했다 할지라도 낮아져야 합니다.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유명한 사람일지라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낮아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말구유에 누우신 하나님을 우리가 볼 수 있게 됩니다. 또한 그 분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 앞에 감격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던 자들이었습니다. 가난한 목수 청년 요셉은 구원을 기다리던 사람이었습니다. 마리아도 구원을 기다리던 경건한 처녀였습니다. 예수님을 안고 기뻐했던 안나와 시므온도 구원자를 기다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다리던 예수님이 드디어 세상에 오셨습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태어나셨지만 세상적으로는 그 순간에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가난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목자였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멸시받는 나사렛 동네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시는 30년 후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동안은 아무 일도 그들에게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왜 구원자가 오셨는데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입니까? 30년을 기다릴 동안 요셉은 죽습니다. 세례 요한 아버지, 어머니, 사가랴와 엘리사벳도 죽었습니다. 목자들 가운데도 나이든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것만, 아무것도 손에 얻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뻐했습니다. 30년이 지나서 예수님이 30세 되셨을 때에 드디어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하시며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럴지라도 세상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그들이 갑자기 세도가 담당한 권세자나 귀족이 되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건강하고 장수해서 200살까지 살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세상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얻은 것도 없습니다. 여전히 가난했습니다. 여전히 고통을 당했습니다. 여전히 병들어 씨름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도대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성령이 강림하시는 영광스러운 사건이 교회 안에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그 당시에도 구원자가 오심을 기뻐하던 거룩한 백성들에게는 세상적으로 별다른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뻐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은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오셨다는 그 사실하나 만으로도 만족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날은 앞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최고의 행복은 저 앞에 있습니다. 우리는 저 하늘나라 그것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 그 구원을 기다리며 살다가 주님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자는 세상 것으로 기뻐하는 자가 아니라, 주안에서 기뻐합니다. 주님의 구원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자입니다.

백종선 목사(순복음세광교회 담임/본지 이사장)



첫 크리스마스의 메시지

[논단-지형은]

크리스마스는 해마다 온다. 올 때마다 늘 화려하고 바쁘다. 물건 파는 곳들과 서비스업종 상품들이 크리스마스를 낭만적으로 꾸며주니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연말이 겹쳐서 여러 가지 모임으로 바쁘지만 산다는 게 사람 만나는 일이 중심이니 이 또한 좋은 일이다. 다만 하나 아쉬운 것은 크리스마스의 원초적 메시지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첫 크리스마스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거기에서 전해진 메시지가 무엇이었을까?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사건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 사는 땅에 오신 사건이 크리스마스인데 예수님 탄생에 담긴 뜻은 무엇일까? 처음 크리스마스 사건을 보자. 성경의 몇 군데 기록 가운데 누가복음 2장을 살펴보자.

예수님 탄생 소식을 명시적으로 가장 먼저 들은 사람이 들에서 밤을 새면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이었다. 한밤중에 천사가 나타난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을 비추었다. 천사가 모든 사람이 기뻐할 소식을 전한다. 세상을 구원하실 주님이 탄생하신다는 것이다. 그때 찬송으로 메시지가 선포된다. 누가복음 2:13∼14절 말씀이 이렇다.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언어 표현에서 가장 정교하고 정갈하게 다듬어진 게 시어(詩語)와 노랫말이다. 많은 경우 시어가 노랫말이고 노랫말이 시어다. 결정체처럼 다듬어진 언어는 한 글자 한 글자가 그냥 쓰이지 않는다. 첫 크리스마스의 메시지가 노랫말에 시어로 표현돼 있다. 중요한 단어가 둘이다. 영광과 평화. 영광은 `하나님께' 영광이다.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는 뜻이다. 평화는 `사람들 중에' 평화다.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할 것이 평화란 말이다.

이 명제를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깨달음이 온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갈등과 싸움과 문제는 평화와 반대되는 것이다. `반(反) 평화' 현상의 대표가 전쟁이다. 전쟁은 비인간적이며 반인륜적이다. 전쟁은 존재하는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악한 두세 가지 중 하나다. 전쟁이 일어나는 게 영광 때문이다.

남보다 더 빼어나려고, 남보다 더 가지려는 게 문제의 근원이다. 이런 욕망은 사람의 본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정받으려는 욕구 말이다. 인정의 욕구가 사람의 성숙과 발전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제대로 다스리지 않으면 온갖 악한 일의 출발점이 된다.

많은 사람이 영광을 움켜쥐려 한다. 그러나 영광은 위험하다. 마치 저주가 걸린 다이아몬드 같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것도 바로 여기에 연관돼 있었다. '하나님처럼 된다'는 꼬임에 빠졌다.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처럼 큰 영광이 어디 있는가! 천사 중 가장 빼어난 자가 타락해서 사탄이 되었다고 보는데, 그 천사의 타락도 영광을 탐낸 때문이었다.

이사야 14장 12절을 보라.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사람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평화다. 영광을 움켜쥐려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평화가 찾아온다. 영광은 좋지만 매우 위험하다. 사람이 관리하기 힘들다. 아니, 관리할 수 없다. 그래서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사람이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은 그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그 영광의 빛을 우리에게 비추신다. 아름답고 복되신 하나님의 권위의 빛 가운데서 평화가 자란다.

인류 역사에서 어느 문화권에나 있는 이른바 유토피아 또는 이상향에 대한 묘사는 모두 공통 구조를 갖고 있다. 영광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는 곳, 서로 사랑하며 아껴주어 평화가 흐르는 곳이 유토피아다. 이 메시지는 하늘 아버지께서 사람에게 주신 가장 근원적인 가르침이다.

한해가 저물어간다. 크리스마스의 계절이다. 거룩한 탄생의 처음 메시지를 다시 되새기며 기도한다. “하늘 아버지, 영광을 탐하는 마음을 비웁니다. 구체적인 생활에서 우리를 사로잡는 재물과 지위와 명예와 사람에 대한 소유욕을 내려놓습니다.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시오. 영광과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 가운데 오십시오.”


지형은 목사(성락성결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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