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카밀은 '완전 무결한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알 아딜의 아들이다. 알 아딜은 그의 형님 살라딘 못지 않은 술탄으로 알 카밀을 기르고 싶었다. 알 카밀은 아비의 소원을 알기나 했는지 일을 해내는 수완이나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통 크고 비범한 모습을 종종 보여주었다. 알 아딜은 카밀에게 당시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베네치아와의 협상을 지시했다.

알 카밀은 즉시 아버지인 왕의 지시에 따라 협상을 벌여 이를 성사시켰다. 알 카밀은 베네치아인들에게 알렉산드리아나 다미에타 같은 나일강의 항구들을 이용할 수 있는 권한과 더불어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필요한 모든 방도를 제공하기로 했다. 베네치아인들도 서유럽이 절대로 이집트를 침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주었던 일이 떠오른다.

알 카밀은 부관에게 지시했다.

“내가 오늘 밤에는 당신들의 성자와 매우 주요한 회합 중이라 부득이 다음날로 연기시켰으면 한다고 전하게. 아마, 허프만 사령관은 이해할거야. 아참, 그리고 내가 지금 매우 유쾌하니 당신들은 당신들이 원하는 선물을 넉넉하게 받게 될 거라고 전하게.”

알 카밀은 프란시스와 마주 앉았다.

“성자여, 내가 지금 당신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고 싶소. 혹시 당신 내 마음을 알 수 있소. 아니야, 아니….”

“왕이시여, 저도 대왕의 심중을 어느 만큼은 헤아리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게 뭔가요?”

“훌륭하신 통치자이신 부왕으로부터 절대 신임을 받았던 것 말입니다. 그래서 부왕이신 알 아딜 술탄시대보다 지금 제 앞에 계신 왕께서는 악명 높은 십자군이 왕의 영토 안에서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떠날 것 같다는 자신감을 갖고 계시잖아요.”

“아, 그건 희망사항이죠.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소.”

“네, 그리 되게 해야죠.”

프란시스는 프랑크군의 십자군에 대한 혐오 이상의 증오를 하고 있었다.

“나는 말입니다. 십자군의 실체인 프랑크인들과 우리 이슬람이 이토록 싸움을 해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서로 함께 살아가야 할 형제입니다.”

“그렇고 말고요. 왕이시여 참으로 현명하시군요.”

“성자여, 아니 프란시스 공. 공이 나를 찾아와서 좋은 말을 많이 해주었고 또 그래서 나는 많은 깨달음을 얻었어요. 프란시스 공이 날 만나서 첫 번째 한 말이 무엇이었나요?”

“우리는 한 형제라 했지요.”

“그래요. 저도 어렸을 때부터 배웠어요. 수천년 전부터 한 분 아버지의 자식들이잖아요. 우리 아랍인들은 이스마엘, 당신 성자의 조상은 이삭이라고 하지요. 한 분 아버지의 아들들인데 이 전쟁은 너무 심한 것입니다. 부왕이신 선왕께서는 물론 내 큰아버지인 살라딘 때부터 우리는 마음을 크게 열었어요. 어떤 운명의 장난에 의해서 우리는 1096년도 전쟁 초기부터 서로가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렸어요. 이제는 당장 전쟁을 그만두고 싶어요.”

“왕이시여. 현명하신 왕께서는 하나님, 아니 알라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많이 받으신 성군이십니다.”

“어허, 알라 하나님이라니…. `알라'가 곧 하나님이심을 모르시오?”


알 카밀은 프란시스를 향하여 눈을 부릅뜨고 위엄을 보이려 하였으나 그의 입가에 번지는 웃음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아, 그렇지요. 알라께서…. 아,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것인데 내가 말 실수를 했군요?”

“프란시스 공. 기독교는 알라를 야훼라고 호칭하시죠. 똑같은 유일신이라 하셨지요.”

“네, 그렇습니다.”

술탄이 프란시스의 찻잔에 따스한 쟈스민 차를 따르고 있었다. 부관인 듯 한 청년 장교가 과일을 한 아름 가져왔다. 그가 잰걸음으로 가까이 와서 사과를 깎고 메론을 또 깎았다. 바나나와 사과는 물론 석류도 잘 여물어 가슴팍을 터뜨린 모습이었다.

“이스마엘아.”

알 카밀이 청년장교를 불렀다. 그 어깨를 토닥이며 그의 옆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술탄의 눈길이 따스해 보였다.

“네, 각하!”

이스마엘은 깜짝 놀란 듯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의 장단지가 부르르 떨리는 것 같았다.

“어허.”

술탄이 그를 향하여 눈을 흘겼다. 그러자 이스마엘은 더욱 몸을 곧추 세우며 얼굴이 파아랗게 질려 있었다.

“아니야. 아니야. 프란시스 공. 이 아이는 내 양아들입니다. 지난번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칠 때, 그 도시를 탈출한 헝가리 출신이죠. 그때 이 아이가 내 부대로 찾아들었어요. 고국으로 보내주려 했으나 이 녀석이 내가 더 좋다면서 내 곁에 남았어요.”

“아, 그렇군요.”

“인사드려라. 성자님이시다.”

알 카밀이 이스마엘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이스마엘은 한순간 손으로 십자성호를 그으며 두 손을 모은다. 그의 눈가에 물기가 젖어 있었다.
네! 수도사님, 프란시스님, 하고 부르면서 프란시스 앞에 이스마엘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프란시스는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을 내렸다.

잠시 후 이스마엘이 도망치듯이 술탄의 방을 빠져 나갔다.

“아직 어려요. 저 놈이 내게 올 때 나이가 7살이라 했던가. 프란시스공. 우리 이야기 합시다. 참, 내가 어디까지 말했던가?”

“야훼다, 알라다, 하시며 말 노름을 하셨죠.”

프란시스는 갑자기 농담처럼 말했다. 이스마엘이 자기 앞에서 성호를 그으며 강복을 원했었다. 저 아이가 술탄의 장막에 있다. 또 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점령기면 대략 15년 전인데….

“말놀음이라고. 그래 진짜 말놀음 한 번 합시다. 나는 이 말을 프란시스공에게 지금 하고 싶소.”

“무슨 말씀이시오. 어서 말씀해 보시죠.”

프란시스가 자리를 고쳐 앉았다.

“성자여, 난 말이요. 협상의 명수이며 탁월한 통치자이신 내 선친보다 큰 아버지인 살라딘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지요. 그러나 그분 앞에서는 열등감이 훨씬 크지요. 그러다보니 늘 고민하고 있지요. 내 백부는 참으로, 그래 당신만큼이나 성자시지요. 용맹한 군인이시며 제왕이신 그분은 늘 자기 몫 이상을 감당하시면서 온유하심과 겸손하심은 물론 늘 우는 자와 같이 우셨다더군요. 이런 얘기 아십니까?”

“무슨 말씀….”

“그래요. 한 번은 살라딘 술탄이 프랑크군과 격전을 치르는 예민한 시간에 부하 장수 하나가 웬 여인을 이끌고 사령관 군진으로 왔더래요. 그 여인이 자기 가슴을 쥐어뜯으며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다가가서 그녀의 말을 들으니 이슬람 왕을 찾아가면 소원을 들어줄 거라고 프랑크 군이 보내서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 살라딘이 통역을 통해 여인의 슬픈 눈물 이야기를 들었대요. 내용은 무슬림 떼강도가 여인의 집을 급습하여 자기 딸을 잡아 갔으나 무슬림 왕은 인정이 많으니 찾아가면 도와줄 것이라면서 프랑크 군이 이슬람 군영으로 보내주어서 왔다는 내용이었어요. 이 말을 듣고 있던 살라딘이 여인을 따라서 눈물을 글썽거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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