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라스로 향한 해발 3326m 천산산맥 고개.

100cc 밖에 안 되는 홍익(스쿠터)이 600cc이상인 바이크들에게 민폐를 끼칠까 걱정되어 먼저 가라고 했지만 방향이 같은 곳까지 같이 가자고 하는 스웨덴 울프와 오스트리아 프랜즈 아저씨. 울퉁불퉁한 흙길을 달려가는데 비가 온다. 가는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진다.

마침 유목민 유르트가 보였고 비를 피하기 위해 바이크를 세웠다. 아주머니와 아이들이 유목 일을 하느라 분주하다. 덜덜 떨리는 몸을 소똥과 말똥으로 달궈진 난로 옆에서 녹이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말 젖 짜기, 우유를 버터와 치즈로 분리하기, 개울물 떠오기, 동물들 방목하기, 동물 배설물 모으기, 어둡기 전 동물들 우리 안으로 넣기 등 쉴 새 없이 분주하다. 멈추지 않는 비와 자욱하게 깔린 안개 덕에 하루를 유르트 안에서 보내게 되었다.

다음 날 다행히 비는 멈췄다. 세 바이크가 다시 출발한다. 그러나 이번엔 진흙탕이다. 흙길이 밤새 내린 비로 진흙탕으로 변한 것이다. 약속이나 한 듯 세 명 모두 바퀴와 발을 이용해 네발로 엉금엉금 기어간다. 다음 언덕이 보인다. 프랜즈 아저씨 바이크가 넘어졌다. 다시 힘을 합쳐 600kg 바이크를 세웠다. 다시 출발.

“오늘 우리가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있을까!” 한숨 지으며 말하는 울프. 난 그냥 웃음이 나왔다. 적어도 혼자는 아니니까. 바퀴와 바이크 사이에 진흙이 가득 들어가 있었고 순식간에 굳어져 버려 바퀴가 회전되지 않는다. 진흙이 이렇게 단단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예상보다 오래 걸려 하루를 어디선가 묵어야 하는 시간. 울프와 프랜즈 아저씨는 텐트를 친다.

나는 근처에 있는 외딴집에 부탁해 묵기로 했다. 그날이 프랜즈 아저씨 60번째 생일이라 현지 가족들과 같이 저녁을 먹으며 조촐한 파티를 했다.

다음날 다시 출발. 얼마 가지 않아 갈라지는 도로 표지판이 보인다. 비쉬켁으로 가는 두 분과 탈라스로 가야하는 나. 좀 더 같이 라이딩할까 물어보는 울프에게 아쉽지만 각자 갈 길로 가자며 인사하고 먼저 출발했다. 오랜만에 만난 고속도로라 신나게 달리는데 비가 또 온다.

알다가도 모를 천산 날씨. 그렇게 비가 내리더니 어느새 햇볕이 쨍쨍하다. 한참을 달려 드디어 탈라스에 도착했다. 루트가 좀 이상했지만 길을 돌아 탈라스로 온건 1300여 년 전 고선지 장군의 숨결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까 해서다.

이렇게 세 명이 송콜의 짧은 진흙탕을 빠져 나오는 것도 힘들었는데 어떻게 당나라와 주변 동맹국 사람들 수만 명을 이끌고 죽음의 파미르고원과 변덕스런 천산산맥을 넘어 탈라스까지 도착할 수 있었을까? 새삼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탈라스 전투는 서기 751년 당나라군대와 이슬람 연합군이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천산산맥 서북쪽에 있는 탈라스 강 유역에서 있었던 전투이다. 전투 중 당나라군에 속해있던 투르크계 카르룩이 이슬람 쪽으로 돌아서는 바람에 고구려 유민 고선지장군이 이끈 당나라군이 패하게 되었다.

이슬람 연합군의 승리로 이슬람 세력이 중앙아시아에 기반을 굳히게 되었고 유목민족들 사이에 이슬람교가 퍼지게 된 것이다. 종이를 만드는 기술자를 포함해 당나라 상당수의 병사가 포로로 붙잡혀 제지술과 나침반등이 서구세계에 전해지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100여 ㎞를 사이에 두고 카자흐스탄 쪽과 키르기스스탄 쪽 양쪽에 탈라스라는 마을이 있다. 격전지가 어디였는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두 마을 사이에 있는 탈라스 강변 어디쯤일 것이다. 전쟁과 관련해 사소한 정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찾았는데 작은 마을이라 박물관도 없다. 국경 없는 탈라스 강줄기만 처량하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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