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미에타는 난공불락의 방어선이다. 나일강의 요새였다. 이 도시 카이로의 동쪽과 남쪽을 두른 성곽은 질퍽한 늪지대로 둘러싸여 있다. 또 북쪽과 서쪽은 나일강의 후배지(後背地)여서 영구적인 방어선이 되어 주었다. 적이 무모하게 도시를 포위하려 해도 이 강의 방어기능을 돌파하지 않으면 접근이 불가능하다.

술탄의 전략대로이면 도시 접근 가까이의 나일강 줄기는 약간의 병목현상이 되어 있고, 이를 성문처럼 보호하기 위하여 크고 굵은 쇠사슬을 한쪽으로는 성곽에 묶고 또 한쪽으로는 강 저편의 섬에 위치한 성곽에 묶어두었다. 물론 강물 속에 묻어둔 쇠사슬 전략은 최후 방어선이다.

특히 우기와 마주칠 때는 쇠사슬 방어선 진지 전방에 전략 방어선이 셋이나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개 유인 전략용으로 사용할 때가 많았다.

알 카밀은 거드름을 피우기 좋아하는 프랑크 군사령관인 펠라기우스에게 전령을 보냈다. 그는 에스파냐인으로 교황의 신임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 무장으로는 드물게 대화가 되는 인물이라고 알 카밀은 생각하고 있다. 십자군 전쟁은 더 이상 무익한 전쟁이다. 세계가 지금 싸움이나 할때냐. 인류 문명사에 전환점이 오고 있다. 아시아의 빛이 세계를 압도하는 때에 우리는 서로 뭉쳐서 셈족의 꿈인 아브라함의 평화를 성취하기 위하여 힘을 모아야 한다고 열망하고 있었다. 그의 시국담은 성직자의 설교와 같았다.

“언제쯤 우리가 평화조약을 하면 좋겠느냐고 물어보고 오라.”

십자군의 동향이 궁금했다. 그들이 3만7천 명의 군사를 증원한 현실에 대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알 카밀은 평화조약만 이루어지면 그의 동생 알 무아잠 다마스쿠스 술탄을 설득하여 예루살렘 요새에서 철수시킬 것이며 예루살렘 뿐 아니라 팔레스타인에서 요르단 서쪽에 이르는 영토마저도 십자군에게 내줄 결심을 하고 있다.

십자군 요르단 지역, 알레포 지역, 팔레스타인 지역 장수들도 만족하는 있는데 무슨 꿍꿍이가 또 있는지 교황의 친위군 사령관을 자처하는 펠라기우스 추기경이 움쩍하지 않았다.

알 카밀은 다마스쿠스와 예루살렘 통치자인 동생 알 무아잠 술탄, 라지라는 두 번째 동생 알 아슈라프 술탄이 형님의 평화안에 적극 동의를 하고 있는 현재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겼다.

아무리 그를 마치 아버지 받들듯이 복종하는 동생들이지만 정치란 생물이다. 언제 어떤 변화가 올줄 모른다. 그렇다고 알 카밀이 십자군이 무섭거나 전투에 질까 싶은 두려움은 없다. 저들이 며칠전 3만7천의 군사를 보충 받았다고는 하지만 이름만 거창하게 십자군이지 그들이 군인은 무슨 군인인가.

그들이 지난 1204년 제4차 십자군의 이름으로 예루살렘 재탈환을 위하여 교황 앞에 충성했으나 그들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지 않은가. 그곳은 엄연히 그들이 보호해야 할 그들의 영토인 로마제국의 수도인데 마치 점령군 행세를 하면서 노략질을 했으며 백성들의 가산을 탈취하고 부녀자를 마구잡이로 탐하고 금은보화를 찾아내다가 심지어는 십자가와 메시아 예수의 성상에 박힌 금붙이에 손을 댔다지 않던가.


소피아 예배당 총대주교좌에 매춘부와 수녀를 양손에 껴안고 앉아서 추잡한 노래를 부르고, 즉석 성행위를 하는 등 행패를 부리다가 수도사들과 성직자들이 살려달라고 애걸하자, 자기들처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매춘부들 또는 수녀들과 성행위를 하면 살려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성직자들이 머뭇거리면 흥을 깨는 놈들이라면서 그들을 죽여 없앴다고 전해 들었다.

알 카밀이 평화협약을 서두르고 있는 데 펠라기우스는 알 카멜의 태도를 순진한 애숭이의 행동이라고 비웃고 있었다. 그는 평화조약이 아니라 이집트를 점령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정보로는 프리드리히 2세가 신성로마 황제로 서품 받는 즉시 대군을 이끌고 이집트로 온다는 사실이다. 그 정도이면 10만 명 정예군을 형성하게 된다.

알 카밀은 프랑크 십자군이 생각하는 대로 아이유브 왕국을 내줄 위인이 아님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펠라기우스가 알고 있는 프리드리히 2세가 머지않아 이집트 전선에 합류한다는 정보를 그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알 카밀이 평화조약을 맺자고 요구하는 것은 진실이다.

그의 백부 살라딘처럼 그도 프랑크군의 사령관 펠라기우스가 리차드 사자왕이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도 살라딘처럼 덕이 넘치는 왕이기를 원했다. 그러나 펠라기우스가 가까운 시간 안에 평화조약을 거부한다면 그들이 프리드리히 2세와 연합하여 이집트를 정복하도록 그냥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다. 시한이 정해져 있다. 이는 알 카밀의 시간이 아니라 알라의 시간이며 천지만물의 조화가 빚어내는 질서이며 순리가 될 것이다.
알 카밀은 펠라기우스 프랑크 사령관의 덜미를 조이는 듯한 압력을 보여주었다. 키프로스 주둔 함대를 움직였다. 프랑크군의 전함들을 기습공격 했다. 십자군은 후방에서 큰 피해를 당했다.

알 카밀은 십자군 사령관에게 전령을 보냈다. 30년 휴전도 좋다. 영구 평화의 토대가 될 만큼 충분한 성의를 보이겠다고도 말했다.

펠라기우스의 뇌리에는 알 카밀의 술수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예감이 스쳐갔다. 양동작전이 아닌가. 십자군 후방을 타격할 수 있는 힘을 보여주면서 평화조약을 서두르는 것은 무엇인가? 일단 나일강을 요새로한 카이로 진입로를 공격하기로 했다. 바지선을 앞세웠다. 배의 중량을 어느만큼 무겁게 하기 위하여 배들에는 흙을 절반쯤 담았다. 배들을 삼겹으로 이어서 이슬람군이 지키는 저지선 쇠줄을 끊어낼 계획을 세웠다. “쾅”하고 부딪쳐 보았으나 움쩍도 하지 않았다.


알 카밀은 노여웠다. 프랑크는 평화를 마음에 두지 않음을 확인했다. 이제는 조인식만 남겨두었다는 선까지 협상을 하였으며, 그래서 나일강 하구에 프랑크 군 수만명이 버티고 있는 전선을 철수했는데 마치 성문을 부수듯이 철책선을 기습 전략으로 뜯어내려 하다니, 울분이 치밀었다. 그래도 그는 믿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알 카밀은 펠라기우스의 진심을 차츰 믿지 못했다. 그가 키프로스 해안의 군선 몇척을 부수면서 평화조약을 압박했던 것은 혹시 펠라기우스가 이집트의 아이유브 왕조의 내부적으로 어려워서 평화조약을 서두르는가 하는 의혹을 없애주기 위하여, 또는 장기전은 물론 프랑크가 덤벼든다면 얼마든지 대응해줄 힘이 있으나 이 전쟁, 십자군을 앞세우는 전쟁은 그만해야 된다는 판단을 그는 이미 하고 있었다.

벌써 100년이 넘었지 않은가. 기독교와 이슬람, 알라와 야훼가 100년이 넘는 긴날 동안 전쟁을 하면서 세월을 보내야 한다는 것인가. 그는 어느 쪽이 이긴다 해도 그저 말초적인 성취감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집트는 물론 다마스쿠스나 알레포, 수리아, 팔레스타인, 예루살렘 중 어느 지역도 풍요하기는 커녕 사막을 끼고 있는 박토의 지대였다. 아브라함의 친자식 관계가 아니라도 전쟁을 멈추고 사이좋게 살고 싶었다.

프랑크 군이 전투대형을 갖추었다. 일전이 불가피했다. 알 카밀은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나일강을 향해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그는 나일강이 한 번 범람해 주었으면 했다. 해마다는 아니지만 가끔씩 강이 범람할 때는 감당하지 못한다. 그런데 지금 강물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었다.

장수들이 모여들었다. 모두가 술탄을 향하여 군례를 올렸다. 그들은 강물의 수위가 오르는데도 프랑크군이 동요가 없다고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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