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 오쉬 시장.

국토 전체의 40%가 해발 3천 미터를 넘는 산간 지방으로 이루어진 키르기스스탄. 탈라스를 출발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넘어가기 전 남쪽지방 중심지인 오시로 내려가는 길은 정말 끝없이 이어진 산길이었다. 키르기스인과 우즈벡인들의 민족대립으로 수백 명이 사망한 오시. 걱정과 두려움이 구불구불한 산길을 끝없이 지나 불빛도 없는 어두운 긴 터널을 홀로 지나야할 때 절정에 달한다.

중간쯤에 있는 마을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다시 오시로 향했다. 몇 달 전에 있었던 일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으로 그려진다. 불탄 집들이 줄을 이었고 다 탄 가재도구가 도로가에 쌓여 있었다. 여행 책에 있는 숙소들을 찾았지만 없어진 곳도 있고 이미 지도와 많이 달랐다. 다행히 펜션을 운영하는 러시아인을 만나 짐을 풀 수 있었다.

숙소 뒤쪽 도로를 둘러보았다. 줄지은 집들이 모두 불타 무너져 있었고 유엔 마크가 찍힌 8인용 피난민 텐트가 여기 저기 쳐져 있다. 텐트에 앉아 있는 분이 바로 앞에 무너진 집이 자기 집이었다며 이불과 옷이 필요하다고 한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문화와 인종 등을 고려하지 않고 편의에 따라 만들어진 국경선이 잠재적 갈등이 되었고 민족 간 빈부격차가 대립의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 시장으로 향했다.

오시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정착지 중 한 곳으로 3천 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이다. 인도, 중국, 유럽까지 잇는 교차점이어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활기찼던 곳이다. 그 장구한 역사 때문일까. 시장에 쳐진 천막들 뒤쪽엔 여전히 검게 그을리고 파손된 건물들이 즐비했지만 울음보단 웃음이, 한숨보단 살고자 하는 생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들은 파손된 상점 손질하기를, 화덕에 빵 굽기를, 고기 자르기를, 놓친 버스를 향해 소리치기를, 조금이라도 깎기 위해 흥정하기를, 구걸하기를, 구걸하는 사람에게 한 푼 주기를, 낯선 사람에게 웃어 주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이 좋다.

다음날 우즈베키스탄으로 넘어가기 위해 국경으로 향했다. 탱크와 군인천막이 보인다. 육로로 국경을 통과할 때마다 이날의 긴장은 더했다. 키르기스스탄 출국절차는 마쳤다. 우즈베키스탄 쪽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굳게 닫힌 창살문을 향해 소리쳐 힘껏 불러도 멀리서 보기만 하고 열어 주지를 않는다. 출국은 했는데 입국이 안 되는 국제미아가 된 심정을 한동안 느껴야 했다.

우즈베키스탄 쪽 검문은 다른 나라들보다 까다로웠다. 홍익(스쿠터)이 서류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드디어 우즈베키스탄 입국.

나라가 바뀐 걸 어떻게 알았는지 날씨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후끈하다. 도로 양쪽에 한없이 넓은 초록 꽃밭이 펼쳐진다. 처음엔 장미꽃밭처럼 보여 왜 흰색만 재배하나 했는데 아니다. 목화의 나라답게 목화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여기도 페르가나 분지.

북, 동, 남 세 방향의 커다란 산맥으로 둘러싸인 페르가나 분지는 비옥한 지대와 지리적 중요성 때문에 오래 전부터 많은 이들이 거주하였고 외부의 침입도 잦았다. 타지크인과 키르기스인들도 있긴 하지만 우즈벡인들이 중심을 이룬다. 목화와 비단 생산지로 유명하며 유럽과 중동을 거쳐 중국까지 연결해 주는 곳이다. 한혈마라는 명마를 얻기 위해 중국 한나라 장건의 침략을 받았고, 이곳 7세기부터는 돌궐 등 터키계 민족의 지배에 들어갔으며, 8세기에는 아랍에 정복되어 이슬람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키르기스스탄의 오시와 함께 페르가나 분지의 중요한 도시인 우즈베키스탄 안디잔에 도착했다. 온통 티코와 다마스로 넘친다. 토요일 업무가 끝난 시간이라 어렵게 부탁해 환전을 했는데 우즈베키스탄 돈 숨을 한 무더기로 쌓아서 준다.

다음날 수도 타슈켄트를 향해 출발했다. 시르다리야 강의 지류인 카라다리야 강과 드넓은 목화밭이 펼쳐지기도 하였으나 예전 `석국'이라는 이름처럼 타슈켄트 입성을 위해선 황량한 바위산들을 거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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