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말해주겠지.”

알 카밀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시간이 지나고 날과 달이 지났다. 8월이었다. 프랑크군이 철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술탄의 지시를 받은 병사들이 강둑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그해 8월 26일. 프랑크군은 퇴로가 완전히 차단되었음을 발견했다. 모세가 자기 백성을 데리고 이집트를 탈출할 때의 기적과 같은 것일까. 프랑크군은 전멸의 위기를 맞았다.

펠라기우스는 알 카밀에게 긴급 특사를 보내 평화조약을 서두르자고 했다. 그러나 아이유브 왕 알 카밀은 조건을 추가했다. 프랑크군은 다미에타 지역은 물론 아이유브 영토 주변에서 완전히 떠날 것이며, 최소한 10년 간의 휴전 안에 서명하라고 요구했다. 이 조항에 응한다면 무사히 항구에 도달하도록 도울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넘겨주겠다는 나일강 범람 전의 약속은 없었던 것으로 한다고 통보했다.

펠라기우스는 평화조약이 아니라 항복문서에 서명을 하는 것 같은 신세가 되었다. 전투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알 카밀에게 씻을 수 없는 수모만 당한 채 철군했다.

프란시스 일행은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하여 여러날 쉬었다. 그는 이 도시를 빨리 떠나고 싶었으나 라틴왕 보두엥을 한 번 만나고 떠나려 했다. 옳지 않은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해서였다. 라틴왕 보두엥, 그는 꼭두각시일 뿐임을 안다. 그러나 그에게 왕관을 씌워준 사람에게 그의 의사를 전하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술탄 알카밀의 양자 이스마엘과 함께 소피아 예배당 주변을 거닐면서 소피아 예배당을 지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소피아 예배당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아들 치세인 320년 2월에 첫번째 예배당을 지었던 곳인데,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이 건물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AD 527∼565)가 AD 532년에 지었다네. 이 건축물의 크기는 말이야. 동서가 77미터, 남북이 71.1미터의 직사각형인데 그 위에 동서 32미터, 남북이 31미터의 타원형 돔을 얹었지. 자네도 보아서 알겠으나 이 웅장하고 아름다운 예배당을 지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헌당식날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잘 모르겠는데요.”

이스마엘이 자기가 모르고 있는 것이 큰 죄나 되는 듯이 어물어물 대답했다.

“530년대이니 생각해보게. 궁궐보다 더 큰 예배당이었으니 말이야.”

“그러게요.”

“근데 말이야.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느닷없이 고함을 질렀지.”

“뭐라고 했나요?”

“황제가 말야. 솔로몬이여 내가 당신을 이겼소이다! 했다는 거야.”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응. 성경책을 보면 다윗왕이 준비하여 솔로몬왕이 성전을 지었지. 지금으로부터 2천년 가까운 저 옛날에 참으로 큰 성전이었지. 그런데 우리가 지금 바라보는 소피아 예배당은 그보다 더 큰 건물이야. 그러니 황제가 잠시 체통을 잃고 내가 당신을 이겼다는 식으로 마치 어린애처럼 말했던 거라네.”

말을 하는 프란시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우스개처럼 말해놓고 금방 울음을 터트릴 듯 한 표정이었다. 맑은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모여들어 비를 쏟을것 같은 장마철 날씨처럼.

“스승님. 갑자기 왜 슬픈 표정을 지으시나요.”

“그래. 내가 지금 슬프기도 하고, 불안하고 그래.”

“왜 그러시죠?”

“주 우리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먼 거리에 있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신앙이나 그 뒤로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이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같은 생각 속에서 사는 것 같아서 말이야.”

“스승님, 그게 어때서요. 저는 스승님의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는군요.”

“그럴거야. 복음서를 읽어보게.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면서 그 웅장함에 놀라 감격스러워하자, 예수께서 말씀 하시기를 다 무너진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으리라 하셨지. 더구나 요한복음에는 이 성전을 헐라 하시는 말씀까지 보여주셨어요. 이 말씀의 뜻은 `성전'이라는 방식이란 흘러간 시대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 주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뒤에는 예수님이 성전을 대신하시니 성전중심의 인간생활이 아닐거라는 생각이야. 더구나 요한복음서에서는 이 성전을 헐라 하실 때 `이 성전'이 예수님 자신을 말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기독교 집단주의 따위는 예수정신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 그러니 `솔로몬이여 내가 당신을 이겼소'라고 하는 정신적 수준을 우리는 빨리 극복해야 된다고 나는 보는 것이지.”

“스승님, 어떻게 말입니까?”

“나도 아직은 잘 모르겠어. 내가 금번 알 카밀 술탄을 만나서 많이 배운거야. 내가 술탄에게 개종을 권유하고 기독교 안에서 신자들끼리 설명하는 식으로 그에게 교리설명을 하는 내 수준이 어찌나 순박해 보였던지,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얼굴이 후끈거린다네. 그리고 정신의 수준이나 자기 신앙을 관리하는 능력에 있어서 알 카밀 술탄은 분명 나보다 한 수 위였지.”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스승님이 아이유브 왕보다 너그러우시고 자비하셔요. 저는 스승님께 앞으로 많이 배우고 싶어요. 스승님, 저를 버리지 마세요.”

“그런가? 자네는 참으로 영특해. 하나님이 이스마엘 자네를 내게 주신 걸까?”

이스마엘은 프란시스가 하는 말 중에 `하나님이 이스마엘 자네를 내게 주신 걸까?'라고 했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물줄기가 솟구쳐 목구멍을 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랫배에서 사추리 쪽으로 자극이 몰려가서 생식기를 자극하는 듯 묘한 느낌, 쉽게 말하면 육친의 정을 느낌과 같은 것일까. 그는 눈물이 펑 쏟아지는 것을 미처 손쓰지 못했다.

프란시스는 재빨리 그런 그의 표정을 비껴버린다. 못 볼 것을 보았을 때 같은 심정일까. 프란시스 자신도 이스마엘이 마치 자기 자식 같이 느껴짐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스승님, 저는요 이슬람 신자인지 기독교 신자인지, 저 자신을 어느 편에 세워야 할지를 잘 모르겠어요.”

“둘 다 해라. 그럼….”

“네? 그럼 저는 기독교 신자도, 이슬람 신자도 아니라는 뜻이 되겠군요.”

“그리 생각되면 그리 살아가려무나….”

“스승님, 점점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절더러 어떻게 판단하라고요.”

“자네는 생각보다 말이 빠르군. 그거 차츰 고쳐야 해.”

엄숙한 말씀이다.

“스승님, 용서하세요.”

“아니야, 나도 자네 같은 생각을 하곤 한다네. 내가 그런 마음이 있으니까 술탄을 개종시키겠다고 무작정 나섰지. 사실은 말이야 이슬람은 기독교의 한 부분이야. 기독교 또한 그 나머지 반쪽이고, 하나님이 심술을 부리신 것일지도 모르지.”

“아하, 그렇군요. 그러니까 우리는 한 형제라는 말 그대로 육신으로나 그 육신 속에 담긴 영혼 또한 하나가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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