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네. 그러나 우리가 나누는 이같은 대화가 과연 일상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 거야. 이 깨달음을 얻기까지 피를 많이 흘리겠지.”

“그럼 십자군 전쟁기간 동안 양쪽에서 흘린 피와 죽은 목숨들 또한 진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이군요.”

“그래 이스마엘, 자네는 하나를 일러주면 둘을 아는군. 경거망동하지 말고 잘 커다오.”

“네 스승님.”

그때 이스마엘이 프란시스의 허리께를 두 손으로 껴안았다. 양 팔에 힘을 주었다. 잠깐 두렵기는 했으나 차츰 자신감이 생겼다. 뿌리치면 다시 붙잡으리라. 놓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한동안 있었다. 프란시스도 그의 어여쁜 행동에 동의하는 듯 듬직한 기둥처럼 서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나자, 깍지 낀 두 손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이제는 그게 걱정이었다. 그때 그의 망설임을 읽었는지 프란시스가 그의 등을 몇 번이고 쓰다듬고 토닥여주었다.

서지 못할 곳에 세운 나라, 그 이름 라틴국. 그 왕은 보두앵. 거듭 생각해도 있어서는 안될 역사의 현실이다. 장차 역사의 준엄한 심판이 있어야 할 것 같다. 프란시스는 라틴 왕 보두앵을 만나서 당장 왕국을 해체하고 부르사로 피난을 가 있는 로마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오라고 말하기로 몇 번이고 다짐했다. 이레내 수도원장이 만남을 주선하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소식이 없다.

프란시스는 금식을 하기로 결심했다. 왕궁 뜰에 엎드려 금식을 시작했으나 궁정 목사(신부)의 권유에 따라서 왕궁 예배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왕의 예배당이면 소피아인데 보두앵은 차마 소피아는 자기의 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별궁을 사용하고 있었다.

금식 5일째 되는 날 보두앵 왕이 프란시스를 부른다. 그는 온몸이 너무 탈진하여 추스르기가 쉽지 않았다. 금식이라 했으나 음식물은 물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이스마엘의 부축을 받으면서 간신히 보두앵 왕좌에서 10미터쯤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그가 앗시스의 유명세를 가진 수도원장임을 보두앵도 알고 있는 것일까. 프란시스는 신하가 군왕에게 드리는 예를 갖추지 않았다. 늙은 내시 한 사람이 급한 손짓을 했으나 못들은 척 하였다. 프란시스는 의자에 앉은 채로 말했다.

“보두앵이시여. 나는 앗시스의 프란시스입니다. 지금 5차 십자군 전쟁터가 되어 있는 이집트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아이유브 왕 알 카밀과 담판을 짓고, 그가 한 조상이신 이의 자식 된 신분으로 기독교로 개종하겠다는 답을 내게 하였소이다. 그런데 우리 로마제국의 기독교는 이게 뭡니까? 보두앵 당신이 앉아 있는 그 자리가….”

여기까지 말할 때 병사 두 사람이 달려와서 그를 끌어낼 심산이었다. 그들이 보두앵을 바라본다. 보두앵 왕이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는 프란시스의 모욕적인 언행에도 느긋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말을 이어보시오. 프란시스여.”

“고맙소이다. 나도 어찌 이 말이 하기 좋으며, 또 쉽다고 하겠소. 그러나 내 신앙 양심이 나를 이 자리에 불렀소이다. 보두앵 왕이시여, 그 자리에서 지금 내려오시오. 교황 성하께 가서 라틴 국가를 해체하고 콘스탄티노플을 원상회복시켜야 한다고 호소하세요. 제국의 신민들 앞에 부끄럽지 않으세요? 우리가 이러고도 하늘의 주 하나님과 구세주 예수님을 만나 뵐 수 있겠나이까. 내가 이렇게 엎드려 비옵니다.”

프란시스는 엎어지듯이 쓰러졌다. 안간힘을 다해 몸을 가누어 바르게 하여 보두앵을 향하여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 그는 엉엉, 통곡을 쏟아냈다.

얼마쯤 지났을까. 보두앵 왕이 그를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를 향하여 오른쪽 무릎을 꺾어 상체를 세우고 성호를 그었다. 그러는 그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프란시스는 보두앵의 주선으로 베네치아 상선을 이용하여 마르마라 해협을 지나 이탈리아 해로 들어섰다. 얼마만인가. 그는 앗시스로 갔다.

앗시스 성읍 시민들이 프란시스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앞 다투어 거리로 나왔다. 그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떠날 때보다 모습이 많이 초췌해 있었다. 떠날 때와 달리 한 청년이 그를 부축하고 있었다. 이스마엘이었다.

“이스마엘, 여기가 앗시스야. 내 인생의 훈련장이지.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십자군 전쟁을 종식시키겠다는 생각에 매달려서 너무 많이 내 본분에서 떠나 있었다는 생각을 지금 느끼게 되는구먼.”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술탄 알 카밀이 스승님을 온 몸으로 존경하는 것을 제가 보았고, 또 그는 스스로를 이미 기독교 신자라고까지 말하지 않던가요. 아마, 술탄은 스승님의 요구를 따라 가까운 시간 안에 십자군 종전 선언을 하실 것입니다. 일이 그렇게 된다면 스승님은 큰일을 해내신 것이 됩니다.”

“이스마엘, 자네는 앞으로 내게 배울 것이 없을거야.”

“스승님, 무슨 말씀이세요? 그럼 저를 버리실 작정이세요?”

이스마엘은 깜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프란시스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빙긋이 웃는다. 프란시스의 평화롭고 신뢰감에 찬 눈과 마주치면 행복한 웃음이 솟구쳤다. 프란시스도 같이 웃는다. 앗시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성자여, 우리들의 아버지여. 이제 오십니까. 우리들이 얼마나 기다린줄 아십니까.”

“그래, 모두들 잘 있었나?”

환영인파를 빠져 나가기가 힘들었다. 이사람 저사람이 서로 프란시스를 붙잡고 포옹을 하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겉옷을 붙잡으니 옷이 찢어지고 그것이 떨어져 나가는 등, 한동안 즐거운(?) 수난을 당해야 했다.
레오가 달려왔다.

“오, 레오! 잘 있었느냐. 그동안 세월이 많이 지났더냐? 많이 큰 것 같구나.”

“네, 선생님. 그런데 이 사람은 누굽니까?”

레오가 경계의 눈빛으로 이스마엘을 위아래로 훑어본다.

“아, 네….”

이스마엘이 자기소개를 하려 할 때 프란시스가 가로막았다.

“응, 내가 소개하지. 이 사람은 아이유브 왕 알 카밀의 아드님이시다. 그분 대신 아드님 되신 이스마엘님이 나와 동행하였구나. 너는 왕자님으로 잘 모시거라.”

“네? 무슨 말씀이신지….”

레오는 뒷머리만 긁으면서 프란시스의 말을 이해 못하겠다는 시늉을 한다. 그러다가 깜박 잊었다는 듯이 서두른다.

“참, 스승님. 수도원이 변했어요. 스승님은 수도원에서 추방될 거라고 사람들이 수군거린 지 벌써 오랩니다.”

프란시스는 발길을 멈추고 레오를 바라본다.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무슨 일일까? 레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는 수도원의 성격이 바뀌었대요. 탁발이나 길거리 전도를 못하게 해요. 벌써 1년쯤 되었거든요.”

프란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골리노의 소행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프란시스 수도원 간판이 뚜렷했다. 수도원 입구에 들어서자 프란시스를 가로막는 이가 있었다. 관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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