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들어가십니다.”

“못 들어가다니? 내가 프란시스요. 프란시스가 프란시스 수도원에 들어가지 못한단 말인가?”

프란시스는 손으로 입구 기둥에 붙어 있는 간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도 안 됩니다.”

그때 우골리노 추기경이 좌우에 수행인들을 이끌고 프란시스 앞으로 나아왔다.

“프란시스여, 그곳 이집트에 머문다는 전갈을 받았는데 어찌 오셨소?”

“우골리노님, 1년이 넘긴 세월인데 모처럼 만나서 친구에게 무슨 인사가 그렇소. 사지에 다녀온 사람대접 치고는 섭섭하군요.”

대강을 레오에게 들은지라 그간의 변화는 알 수 있었다.

“프란시스, 여기는 이제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소. 당신의 고집스런 주장에 따라 탁발을 하고 거리 전도를 했던 낡은 시대의 수도원이 아닙니다. 교황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십니다. 로마가 이미 천국인데 거지 떼들처럼 동냥질(탁발)이나 하고, 이미 천국인데 전도는 무슨 전도인가. 이제 이곳 수도원에서는 탁발이나 거리 전도와는 상관이 없으니 당신을 우리는 필요로 하지 않소. 여기를 떠나시오!”

우골리노는 등을 돌려 프란시스에게서 떠나려 했다. 프란시스가 우골리노의 옷소매를 잡았다.

“우골리노 추기경님. 알겠소이다. 그러나 나를 보시오. 내가 40살이 넘은 나이에 어디로 가겠소. 수도원 규칙을 따라서 조용히 지낼 터이니 저쪽 산 밑에 있는 방 한칸만 내게 주시오.”

프란시스는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40살이 아니라 이미 늙은 노인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머리칼 속에는 흰 머리가 절반이었다.

“그래요….”

우골리노는 몸을 돌이켜 프란시스의 두 손을 잡았다. 프란시스의 얼굴을 찬찬히 쳐다본다. 고집부리고 이슬람 술탄을 찾아가서 십자군 전쟁 종식시킨다고 큰 소리를 칠 때는 물론 탁발을 하고 맨발 벗고 다니며 거리 전도 하는 시대가 아니라 해도 고집만 부리는지라 마음속에 미움을 키워두었던가, 내가 친구에게 너무 심했소이다.

그는 사과했다. 그리고 프란시스가 프란시스 수도원에서 쫓겨났다면서 앗시스 시내에 울고 다니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러면 시민들은 우골리노를 욕할 것 아닌가. 그보다도 교황님을 찾아가서 수도원 설립허가 조건을 우골리노가 변경시켰다고 호소하면 내 꼴이 무엇이 되는가까지 생각했다. 우골리노는 결심했다. 지금 프란시스가 제시한 조건으로 못을 박아두자.

“프란시스 형제여, 조금 전에 내게 한 말이 진실이오? 그대는 마음 변치 않고 지킬 수 있소? 수도원 안에 있는 수도사들 앞에서도 딴소리 하지 않을 것이지?”

울고 있는 프란시스는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옷소매로 그의 눈물을 씻어내고 있었다. 그는 하늘을 우러렀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지고 하얀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둥그렇다. (오, 내 사랑. 어여쁜 여인아, 내 가슴에 안겨다오. 내 사랑 나의 아내여.) 우골리노가 그에게서 시선을 옮겨갔는데도 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을 바라보고 중얼거린다.

이제 내 시대는 갔다. 내 할 일도 끝났다. 사람들과의 약속, 사람들과 함께 이루어 갈 열망, 그 어떤 욕구도 이제 더는 프란시스를 감동시키지 못하리라.

프란시스는 레오와 이스마엘을 데리고 그가 선택한 산비탈 방으로 갔다. 가서 레오에게 이스마엘의 형편을 다 말해주었다. 이스마엘에게도 레오는 사랑하는 제자이며 너희 둘은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프란시스는 대낮에도 문을 닫아걸었다. 한 달쯤 지나서 우골리노를 찾아갔다. 그동안 어느 수도사와도 만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햇빛이 있을 때 뒷산 양지바른 곳에 가서 따스한 햇빛을 쪼이고 싶다고 했다. 우골리노는 기꺼이 허락했다.

프란시스는 산에 올랐다. 종일 있어도 오가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과 함께 가난한 예수의 식탁만큼의 즐거움도 없다. 거리에 나가면 주 예수의 복음을 전해줄 가난한 사람들, 복음에 굶주려 마음이 가난한 주 예수의 자녀들을 만날 수 있는데 그는 갈 수가 없다.

가난아, 나의 여인아. 나의 아내여. 내가 너와 함께 가난을 나누면 그 가운데 가난한 나사렛 그분과 늘 마주칠 수 있는데 가난 그 실체마저도 이제는 내게 주어지지 않는구나.

그의 앗시스 전성기에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큰 부잣집 잔치에 프란시스가 초대받았다. 가보니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는데 그 사치스럽고 위선스러움의 자리에 동참하기가 싫었다. 밖으로 나왔다. 마당가로 나갔다. 거지들이 모여 있었다.

어느 거지에게 벙거지 하나를 빌려 쓰고 프란시스는 마당에 앉았다. 초대받은 이들은 식사시간이 되면 몇 사람이 그 자리에 없어도 식사가 진행된다. 주인은 프란시스가 없어진 사실을 알았으나 더 기다리지 못했다. 그들 초청 받은 이들의 식사가 진행되었다. 잠시 후 마당에서 거지 하나가 소리쳤다.

“주 하나님의 자비로 가난하고 병든 떠돌이에게도 적선을 좀 하시오” 했더니 집안에서 주의 자비로 구하는 형제의 요구를 누가 뿌리치리이까, 하는 화답과 함께 밥사발 가득 밥과 찬을 내주었다. 그 거지는 그것을 받아먹고, 머리에 쓴 벙거지를 벗었다. 프란시스였다. 저런…. 그를 바라보는 이들 앞에 나아가 프란시스는 말했다.

“내가 접시 하나에 밥, 반찬 섞어놓고 땅바닥에 엎드려 먹었다 해서 이 귀한 초청자의 집에서 홀대받았다 하지 않습니다. 주 예수 나의 주님과 함께하는 식탁의 기쁨까지 누리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프란시스는 이런 사람이었다. 그에게서 탁발의 기쁨과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 찾아다니며 거리 전도하는 축복을 빼앗아 간다는 것인가.


연금처럼, 속박의 날이 몇달쯤 지났을까. 산비탈에서 태양가를 흥얼거리는 프란시스 앞에 산토끼 한 마리가 다가왔다. 어, 이 녀석 봐라. 토끼가 프란시스의 무릎 앞으로 와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눈을 껌뻑인다. 커다란 두 귀를 하나씩 교대로 머리통 뒤로 떨어뜨리는 등 장난을 치고 있었다. 두 손을 토끼에게 내밀었다. 그의 두 손바닥 위에 뛰어오른 산토끼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콧바람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만남이다. 무료한 나날의 산비탈 산책, 혓바닥이 아리고 입술은 물론 목이 따갑도록 태양가를 부르지만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는데 토끼가 한나절 동안 오늘도 그와 놀다가 떠났다.

다음 날이었다. 오늘은 여러 종류의 짐승들이 찾아왔다. 산토끼, 다람쥐, 산새들, 여우도 잠깐 스쳐가고, 뱀도 그의 주변에서 맴돌고 있었다.

아름답구나. 나의 친구들, 지저귀는 산새들, 껑충껑충 체조를 하는 어린 학생들 같은 토끼와 다람쥐, 저녁 무렵에는 여우와 늑대들도 두 세 마리씩 그의 주변에서 어슬렁거린다.

아름다운 놈들, 너희가 어쩌면 내 마음을 아는구나. 너희들은 모두 내 형제요 자매로구나. 사랑스러운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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