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푸(Bapu=father) 함석헌의 삶]

          
민주수호협의회의 성명서를 검토하고 있는 함석헌 선생.

1923년 9월 1일,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그 관동대지진은 다시 있어서는 안될 비극이요 재앙이었지만 함석헌에게 있어서만은 그것은 오래전부터 준비된 은혜의 선물이었다. 오직 인류의 미래를 위한 `생각하는 사람'으로 함석헌을 키우기 위해 하늘이 그 사건을 준비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는 물론 없는 것이고, 또 그런 하나님이실리도 없을 것이지만 그 형언할 수 없는 재앙이 함석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각인(刻印)되어졌다는 데서 하는 말이다.

이처럼 고난에서 뜻을 찾는 역사(役事)가 그의 평생을 통해 계속되었다는 사실이 그를 아는 자들, 그를 읽는 자들로 감격을 금치 못하게 한다. 독특하다  하리만큼, 부럽다 하리만큼 환난에서 뜻을 찾는 그는 드디어 고난을 예찬하는 자리에까지 이른다.

“고난은 인생을 위대하게 한다” “고난은 인생의 죄를 씻는다” “우리는 고난을 위하여 이 땅에 왔다” “그러면 이제 오라, 우리가 세계의 죄 짐을 지고 연옥을 걷자” “우리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다!” 함석헌의 `고난'은 그 고난을 만나는 자로 그 자신을 제물로 드려 구원의 역사(歷史)를 열어가게 한다. 함석헌이 동경대지진을 통해 발견하게 된 만고의 적이 나, 곧 나라는 것이었다. 죽기로 싸워야 할 대적이 바로 내 안에서 발견된 것이다.


대지진에서 얻은 축복 ① - '나'라는 적


무엇보다도 나, 나를 싸워야 할 대적으로 발견했다는 것은 더 할 수 없는 축복이었다. 세계를, 우주를, 미래를, 하나님까지를 담는 그릇이 오직 `나'라는 것. 그제 한밤을 그 불인지변에서 보냈고, 어제는 구입(駒휬)경찰서 유치장에서 보내고 나왔는데, 나와서 다시 그 지진을 만났던 탕도 쪽 이야기를 들으니 석헌의 마음은 또 이상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제 밤 그 불인지변에서 신전구(神田區) 쪽으로부터 석헌이와 덕일이 쪽으로 세차게 불어오던 바람을 그대로 타고 휘몰아오던 불길에 고함을 치는 이들, 알아들을 수 없는 괴이한 소리로 뭐라 부르짖는 이들, 아예 윗옷을 뒤집어쓰고 불인지 못으로 뛰어드는 이들, 그야말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이 벌어지는 찰라, 이상스럽게도 불길이 멈추는가 하더니 되도는 것이었다. 바람이 방향을 바꾼 것이다. 만일 불을 모는 바람이 그 길을 바꾸지 아니했다면 몇 만 명은 불에 타죽을 뻔했는데….

함석헌은 덕일이와 일본인 친구 강두(江頭)와 함께 효정(肴町) 자취 집으로 돌아오면서 깊은 숨을 내쉬며 홀로 이렇게 속삭였다. “하나님이 나를 살리시려고 바람을 돌리셨다!” 한번만이 아니었다. 제 삼, 제 사, 반복했다. “하나님이 나를 살리시려 그 바람 길을 돌리신 것이다!”

그 다음날 구입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다시 덕일이와 함께 탕도(湯島) 쪽으로 가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하나님이 날 살리시려 그날 그 바람 방향을 바꾸셨구나” 하는 생각이 더욱 확실해져 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새벽녘 바람이 방향이 바뀌면서 불길 역시 잡히는 것을 보고 한숨을 놓으면서 돌아왔는데, 석헌이 떠난 후 다시 불길이 불인지변까지 역습하여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거의 다 죽었다는 것이었다.

함석헌은 기가 막혔다. 가슴은 먹먹해지고 생각은 멍해졌다. 그런 중에도 여전히 중얼대는 소리가 “하나님이 날 살리시려 그 때 그 불길을 돌리셨던 거다!” 함석헌은 그 때의 사실을 기억하여 이렇게 전하고 있다. “추측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밝은 아침 우리가 떠난 후 불이 다시 역습하여 그 불인지가에 있던 사람이 거의 다 죽었다고 합니다. 뒤가 물이니 도망갈 수도 없고 물 속에 뛰어들어 날아오는 불티를 피하려 겉옷 같은 것들을 벗어 적셔 머리에 쓰고 물 속에 들어갔다가 숨을 쉬어야겠으니 나왔다가, 나오면 뜨거우니 또 물 속에 들어갔다가, 그것을 그저 반복하다가 기진맥진해 모두 죽어 정말 불인지(不忍地)가 돼 버렸답니다. 그러니 신기하게 생각을 아니 할래도 아니 할 수가 없었습니다”(전집 4·250).

역시 함석헌은 그 사건을 기억하며 “남에게는 몰라도 내게는… 모든 것이 잘 짜여진 각본대로 된 것만 같습니다. 거기 모였던 사람들이 몇 만 명 이었는지 모르나… 그 사람들이 산 것은(풍향 바뀌어서가 아니요) 나 하나를 살리시기 위해서요, 나를 살려둔 것은 증거 하실 것이 있어서 하신 것 같습니다”(같은 책 249쪽).

함석헌은 그 관동대지진이 신 전구 쪽에서 탕도로 몰아쳐 오는 불길이 불인지 200여 미터를 앞두고 반대방향으로 돌아선 풍향이 다 자신을 위해서였다고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제 대지진의 불기가 어느정도 식어내리고 숨을 내쉬게 되는데, 함석헌은 관동대지진과는 비할 수조차 없는 또 다른 변을 당하게 된다.

요전에 당한 변은 지진재(地震災)였지만 이제 당하는 것은 천재지변(天災地變)이었다. 동경 대지진이 대동지환(大同之患)이었다면 이제 함석헌이 당하는 지진은 유아지환(唯我之患)이었다. 그런만큼 이 환난은 처참했다. 홀로 당해내야 하는 환고! 대동으로 당하는 고난엔 대동의 위로가 있다. 그러나 홀로 당하는 고난은 오직 한 길, 궁극적인 실재를 만나서만 풀려난다. 그런만큼 그가 해야 할 일은 더 많이 아파하고,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앓는 것이다.

관동대지진제의 불기운이 가시면서 함석헌의 가슴 한복판에서 `죄의 불길'이 터진 것은 그래서였다. 그것은 함석헌에겐 동경의 대지진보다도 더욱 비참한 것이었다. 지진이 일어나서 집이 무너지고 그 불에 사람이 타 죽는 것이 무섭고 비참함이 아니었다. 그같은 밖의 변동으로 한때 무법천지가 되고, 이성과 오성(悟性)의 공백이 생기자 그 틈을 타서 일어나는 본능과 충동, 야욕의 불길이었다. 뉘라서 아니라 할 수 있을까만 함석헌에게 있어 이 본능과 야욕, 그 충동에서 오는 부끄러움과 비참함은 뭐라 형언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지진(地震)은 견디어 낼 수 있었지만 아, 이 야욕의 충동은 이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같은 내 속에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는 그 `욕(欲)'을 투시했다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욕의 나'를 대적하기 시작하게 된 것은 실로 거룩한 축복이라 할 것이다. 함석헌이 그 관동대지진을 겪는 중에 자아 속에 왕좌를 틀고 있는 그 본능·충동의 불길을 경험한 그때를 후에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남은 아니 그랬고 나만이 그렇게 약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끄러워도 내가 이 말을 아니하면 다른 모든 말의 의미가 없습니다. 겉으로는 지진의 흔들림과 불길과 싸우고 있는 동안 나는 마음의 밑바닥을 가르고 그틈으로 치솟는 불길과 연기와 진동과 밤새 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참의미에서 살아났습니다. 이튿날 아침 먼동이 환란의 하늘 위에 훤히 터올 때 친구들의 손을 잡고 내 하숙으로 가자 일으키며 나는 지옥에서 놓여나오는 느낌이었습니다. 내 양심은 남이 듣지도 못할 가는 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는 터진 땅 밑에서 무슨 새싹이 삐죽이 올라오는 것 같은 것을 느끼며 피난민 사이를 빠져나갔습니다.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50년간 어디서도 누구보고도 해 본 일이 없습니다. 오늘이 처음입니다”(같은 책 250, 251 참조).


대지진에서 얻은 축복 ② - '국가지상주의'라는 적


함석헌이 동경대지진의 불길 속에서 “내가 죽기로 싸워야 할 적으로서의 나”의 발견에 더해진 또하나의 축복이 `국가주의의 실체'를 뚫어보게 된 것이었다. 1923년 9월 1일 일본의 이 대지진을 통해 함석헌에 의해 투시된 국가주의는 바로 일만악의 총체였다. 사람도 죽일 수 있다?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아니 사람이 별거냐? 그건 국가를 지키는 거다. 국가를 위해, 오직 국가를 지키기 위해 사람은 있는 거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해야 하고 화살받이, 총알받이이기를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떼죽음도 피해서는 안된다. `일본 땅에서의 조선 사람이란 타국민이었으니 그렇게 대할 수도 있었겠지' 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국가주의라는 것이기에 말이다.

함석헌은 이 관동의 환란에서 바로 이 악의 실체요, 그 악의 뿌리를 본 것이다. 그래서 관동의 환난은 함석헌에게만은 없었다면 큰일날 뻔했다는 것이다. 역사는 사람에 의해서 전개된다.

기독교는 “하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신다고 말하지만 그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형체를 입고 나타나는 법이 없다. 그때의 사람, 그 시대의 사람으로 그때, 그 시대를 섬기게(주관이 아닌) 하신다. 그래서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같은 절대 역사에의 반역이 대대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국가주의(國家主義)라는 것 말이다. 마치 국가가 지상(至上)이라는 듯이.”

그의 나이 열 아홉 되던 해, “아예 관(官)과는 원수가 되기로 작심(作心)”을 했던 함석헌은 지금 일본이라는 국가가 조작하고 있는 소위 `조센징들의 일본국 붕괴책동'을 투시하면서 국가라는 것이야말로 지상(至上)의 관권(官權)임을 간파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일평생, 관과는 원수로 살겠다”한 함석헌에게 있어 그 국가주의, 특히 국가지상주이는 평생의 원수로 낙인된다.

국가! 필요 악인가? 아니다. 국가주의, 특히 국가 `지상'주의는 제거하지 않으면 안되는 악의 실체다. 궁극적인 실재자 이외에 어떤 것에도 `지상'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궁극적 실존 이외에 붙여진 `지상'이라는 어떤 이름도 우상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범죄다. 그래서 “아예 관과는 원수가 되기로” 했던 함석헌은 이제 “국가라는 것, 국가주의라는 것, 더구나 국가지상주의라는 것을 원수로 선언한다. 이것이 함석헌이 스물세 살 나던 해였다.

함석헌은 행복했다. 일생동안 흔들림 없이, 변함 없이 싸워야 할 생(生)의 대적을 조준(照準)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내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대학을 가야 하는 함석헌이었지만 `국가주의'라는 필생의 적을 맞은 그는 “무엇을 가지고 나라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함석헌은 이때 이미 국가와 나라를 다른 것으로 보기 시작했다. 필자주).

국가라는 조직체가 역사적인 필연에 의해 발생한 것이었다 해도 그 필연(必然)이란 국가 자체의 유지가 아니라 그 구성원의 안전과 보호였다. 그러나 유사 이래 국가라는 것이 그 구성원을 섬기는 기구로서 존재한 경우는 없었다.

함석헌은 이 관동대지진을 통해 국가주의를 간과한 후 나라를 해가는 주체를 `민'(民)으로 확신하게 된다. 함석헌이 그 이후 지극한 정성으로 섬겨낸 쌍놈, 민중, 씨알 하는 이름들, 평생을 사랑으로 불러간 이름들이다. 1924년 봄 함석헌은 그렇게 맘 조리던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일본에서도 크게 자랑스러워하는 동경고등사범(東京高等師範)에 합격한 것이다. 이제는 맘도 좀 차분해졌고 “정말 공부 한 번 제대로 해봐야겠다” 결심을 한다.

일등을 해야 하겠다든가, 장학금을 타야겠다는 등의 생각은 물론 아니었다. 사립, 공립을 거치고 두 해씩이나 퇴학 당해 헤매이는 동안 많은 해를 허송해 같은 급우들보다 4,5년이나 연상이 된 터라 잃은 세월(?)을 되찾아야 했다. 살(生)아서 무엇을 얻게 되고 이루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삶(生) 자체를 하늘의 선물이라 깨달은 석헌은 이제까지도 그러했지만 이제는 더욱 순간순간을 순교의 자세로 살아야 한다.

끊임없이 생각을 파고들고 책 읽기를 밥 먹기보다 더욱 즐기며 힘쓰는 함석헌의 지적 영역은 이미 주변 지인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게다가 깊은 세계관, 역사관, 인생관이 자리잡은 터라 이제 그 앞엔 신비스럽다고 하리만큼의 미래가 열려오는 것이다. 그것은 이제껏 대가집의 계집종같이 치욕과 비천을 살아온 조선사(朝鮮史)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다. 이제 머지 않아 못 죽어 이어 온 조선사에 새로운 의미가, 새로운 뜻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 힘이 아닌 뜻이, 살기(殺氣)가 아닌 화기(和氣)가 온 땅을 덮는 대변화가 한반도를 새롭게 그리게 될 것이다. 모든 인격엔 하늘의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 뜻의 발아엔 고난과 환난이 요구된다.

울다 울다 지쳐 입술만 동하게 될 때까지, 우주의 정신적 진화, 역사의 도덕적 진화란 사실일까? 의와 불의의 길을 나누어 딛고 생사의 싸움을 다하기까지, 의의 싸움을 싸우며 달려갈 길을 분명히 가면서도 “과연 길은 있는 것인가? 가슴 태우기를 다할 때까지 못견딜만큼의 고난이 요구된다. 천만다행이랄까? 하늘은 함석헌의 길목길목마다 그같은 고난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그것은 실로 큰 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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