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다리우스 대왕 궁전 터에 발견된 부조물.

사무장 마리아는 두 손으로 자기 입을 가리고 소리 죽여 웃고 있었다. '엄살이 심하구나'라고 말하는 큰누나 같기도 하고 단순히 분위기를 북돋는 서비스 웃음같기도 했다. 마리아가 웃음을 멈추고 알로펜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그가 앉아야 할 자리로 안내했다.

알로펜은 한쪽 구석 자리로 안내되었다. 지령이 백년은 넘을 법한 문서들이 여기 저기에 널부러져 있었다. 알로펜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사무장 마리아는 문서가 위치하는 자리마다 조심스러운 손길을 주면서 다시 확인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알로펜을 가까이 다가오게 하였다.

“알로펜, 여기 이 책자를 보세요. 이게 우리들의 네스토리우스 님의 친필입니다.”

알로펜은 아, 소리를 냈다. 눈이 번쩍 뜨였다. 네스토리우스라, 그의 현재 시간으로부터 계산하니 150여년 전의 기록 문서였다. 가까이 더 가까이 가서 바라보니 바쁘게 쓴 글의 흔적을 알 수 있었다. 천 위에 쓰여진 글씨였으나 목판으로 받쳐둔 내용으로 보존처리가 되어진 문서였다. 알로펜은 만져볼 수 있느냐고 마리아에게 물었다.

“가능합니다.”

알로펜은 글씨가 닿지 않는 부분을 매만졌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글씨내용을 알아볼 수 없었다. 시리아어로 쓰여진 것인데 글이 난필이었고, 백여년이 지난데다가 보존상태 또한 좋지 않았으니 그럴 것이라고 그 나름대로 판단했다.

“글의 내용이 어렵군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총대주교님이 정죄를 받은 후 추방되어 10여 년이 더 되었던 때로 여겨집니다. 처음에는 시리아 사막에 계시다가 리비아 사막으로까지 옮겨가셨고, 세상 떠나실 무렵에는 안디옥 가까운 시리아 사막에 계셨죠. 그때 아마, 쓰신 내용 같다고 어른들이 판단하고 계시더군요.”

네스토리우스는 AD 431년 에베소 세계기독교회의가 열리자마자 그의 반대파 세력이면서 고발자이기도한 알렉산드리아 주교 키릴루스파 단독 회의에서 이단정죄가 되었었다.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와는 그 위상이 비교되지도 않았고, 지지세력 또한 작았던 키릴루스 세력들이 자기네들 단독으로 회의를 열었다.

네스토리우스를 지지하는 대의원들이 미처 오지 않은 때였다. 당시는 교통사정이 좋지 않았고, 특히 네스토리우스를 지지하는 대의원들은 페르시아 변방, 오늘날 중앙아시아 일부에서까지 퍼져 있었기 때문에 자연환경의 장애를 받을 경우 예정된 날짜를 지키지 못했었다.

당시 '에베소 회의'는 파행이었고, 그것이 몰고온 로마제국교회의 장래마저 위태로워진 내용들은 차츰 공개될 것이다.

알로펜은 '에베소 종교회의'의 내막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른다. 할아버지께 졸라대면 가르쳐 주시겠으나 겁이나서 묻지를 못했다. 그러나 막상 네스토리우스가 사막의 연금생활 20여년이 다 되었을 때 썼다는 비단 천 위에 쓰여진 글의 내용에 대해서는 알고 싶었다.

“마리아님, 이 글을 제게 설명해 주실 수 있으세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알로펜의 질문을 받은 사무장 마리아는 알로펜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다가 비단천을 집어들었다. 다시 한번 더 알로펜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있지요. 그리고 이 내용은 매우 감동적이죠.”

“왜, 그런가요?”

“왜라는 것보다, 이 글은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가 남긴 글들 중에 최후의 글이 아닐까 싶네요. 모두들 그렇게 보거든요.”

“총대주교님의 글이 많이 남아있나요?”

“아니요. 지금 우리가 보존하고 있는 책 등은 그가 쓴 책의 분량에 비해 십분의 일이나 또는 백분의 일도 안됩니다. 그 어른은 학자셨거든요. 성경해설집, 교리집 등 많은 글을 남기셨으나 로마교구(오늘의 로마 가톨릭)에서 다 수거해 갔답니다. 저들의 지하금고에 총대주교님의 책들이 수북할거라는 말들이 있지요. 지금 여기에 있는 것들은 총대주교님이 헤라클레이데스라는 이름으로 남긴 자료들과 면회하러간 성도나 감독들에게 써준 위로의 글들이 대다수이죠. 그러나 이 글들마저도 과연 얼마나 지켜질 수 있을까요.

지금도 로마교구 사람들은 네스토리우스라는 말만 들어도 혈기를 부리지요. 또 단성론자들이 무서운 대적들입니다. 단성론자들은 로마파 교회보다 훨씬 더 사상적으로는 악질이랍니다. 로마교구는 성모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존중하려는 데 우리들의 총대주교님이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표현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낸 것이 미움이 되어 날벼락을 당했지요. 그러나 단성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피조물로 여기며, 그는 하나님일 수 없다고 주장하여 기독교의 장래를 어둡게 하고 있답니다.”

“저는 거기까지는 아직 다 모르겠어요. 저는 그 보다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합니다.”

알로펜은 소년답지 않게 자리를 고쳐 앉으며 가슴팍을 죽 내밀면서 말했다.

“무슨 말인가요? 알로펜.”

“먼저, 저의 당돌한 말을 용서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셔야 해요?”

“그래, 좋아요.”

사무장 마리아가 긴장된 모습으로 바뀌었다.

“사무장님, 저는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는 페르시아 전 지역에 복음을 전해주신 큰 은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크데시폰 교구에 가보면 네스토리우스의 선교사들이 중앙아시아는 물론 서역을 지나서 인도나 중국에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보고가 있어요.”

“아, 그런가요.”

“네. 사실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요. 로마제국의 영토안에서 함께 어울리고만 있으면 중국이나 인도는 물론 페르시아에 기독교가 뻗어나갈 수 있었겠어요.”

“그렇군요. 알로펜. 참으로 대단한 생각을 하고 있군요. 바로 여기 이 글 속에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의 글에도 이미 알로펜이 생각하는 내용들이 실려 있지요.”

“그래요. 한번 읽어 주세요.”

“그럼, 그럼지요.”


네스토리우스의 편지내용이다.


“…아, 이제는 어머니의 젖무덤 처럼 아득하고 포근한 사막의 모래무덤도 내게 더 이상 위안을 주지는 못할 것 같군요. 형제들이여, 나는 이제 주 예수의 품으로 갈 때가 다가온거야. 그리고 말이지. 에베소 종교회의 때 로마교구의 하수인 노릇을 했던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를 이제는 용서하기로 했어요. 그때, 내가 너무 방심했던 거야.

다시 말하면 오만했다고 해야 하나. 내 인기와 실력만 믿고 더구나 황제 데오도시우스 Ⅱ세의 신임만 믿고 그들 키릴루스파가 범죄하도록 방치해둔 결과를 초래했으니, 그 정치꾼 키릴루스가 범죄하도록 하고 말았지. 더구나 그는 단성론자야.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지 않은 범죄자였지요.

자, 이제 몸이 너무 쇠잔하여 긴 글을 쓸 수 없구만. 다만 구약성경 욥기의 마지막 부분에 욥이 기록한 고백을 나의 마지막 고백으로 삼고 싶어요. 욥이 말이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샀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하였거든. 이 말을 나는 이렇게 해석해 보는구먼. 이전에는 귀로만 주의 말씀을 들었는데 지금은 귀로 듣고, 눈으로 주님을 뵙는다고 말이야. 이전에는 절반을 알았다면 지금은 온전히 알았노라가 되겠지.

지금 내 심정이 그래요. 온갖 음모와 잔악한 술수로 나를 사막으로 쫓아내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학대하고, 저주해온 로마교구나 그들과 합세한 단성론자들이 나를 20여년 동안 사막에 내던져서 단련시키더니 드디어 내가 주 하나님과 내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배우고 알게 하였구먼. 내가 이를 어찌 감사치 않을까. 이제 나는 나와 관계된 자들, 나를 저주한 자들 모두를 완전히 용서하네. 지금 이 글을 마치는 순간부터 말이야. 끝으로 내가 아직까지 믿음을 지켜 사막의 저주스런 환경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있음은 이 글을 읽는 나의 동지, 동역자 여러분들의 힘이 컸어요. 이제 마지막으로 부탁하노니 네스토리우스가 이 세상을 하직한 그 날, 여러분은 에뎃사에 모여 아시아 기독교 시대를 열어갈 새날의 창업을 서둘러 주시오.”

알로펜은 사무장 마리아가 읽어주는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의 편지를 귀로 들으면서 복받쳐 오르는 가슴의 뜨거운 열기를 느꼈다. 숨이 차올라 코로만 숨을 쉴 수 없어서, 붕어처럼 입까지 뻐끔거리며 호흡을 골랐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한없이 흐르고 있었다.

“알로펜. 어때요.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의 마음과 알로펜의 의지가 일치해 있음이 신기하죠. 그렇죠. 그러니 울지 말고 용기를 내세요.”

“…….”

알로펜은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네스토리우스의 마지막 임종을 상상해 보았다. 그가 시리아, 요르단, 리비아, 다시 마지막 시기에 와 있었던 다마스커스 인근 알레포 지역인 비교적 안온한 지대에 머물 때 그가 그토록 행복해 했다던 이야기가 머리 속을 맴돌았다.

그가 비교적 젊은 날에는 자신의 급격한 신분변화에 분노하고, 그 무엇보다도 그를 따르던 제자들이 저주의 멍에를 뒤집어 쓰고, 교회에서 쫓겨난 이야기를 들을 때는 졸도를 거듭했다던 교회사랑 이야기가 있다. 풍설에 의하면 네스토리우스가 이단의 멍에를 섰고, 사막으로 추방된 날부터 얼마나 많은 네스토리우스파가 쫓겨났던지, '로마 교회가 절반은 텅 비었다'고 했었다.

알로펜은 희귀한 자료들을 살펴볼 기력이 없어졌다. 어디인가, 조용한 곳으로 가서 실컷 울고 싶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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