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스커스 성에서


           터키 비시디아 안디옥 주민과 함께한 한국 여행자.


다마스커스 신학교 교수이며 도서관장 마리아는 통칭 사무장으로 불린다. 그녀는 알로펜의 총명과 집중력이 있어 보이는 단정한 용모 앞에서 그녀의 앞날을 겸하여 생각해 보았다.

마리아는 현재 기독교의 모습에서 피로에 젖어있음을 감지했다. 그해가 AD 585년이니까 메시아 예수가 세상에 오신지가 600여년 되고보니 피곤할 때도 되었다는 생각을 해볼 수는 있다. 그러나 일명 카타콤 시대로 호칭하는 300여 년을 계산하면 나머지 시간이 300여년이다. 그 기간동안 기독교는 무엇을 했는데 벌써 지쳐있을까?

지하종교 생활을 벗어남과 함께 곧바로 열린 제1차 니케아 세계대회(AD 352년∼)에서 기독론과 삼위일체론을 체계화 했다고는 하나, 제3차 에베소 세계대회(AD 431년)는 네스토리우스와의 기독론 시비로 이단정죄 소동을 일으켰으며, 제5차 칼케돈 세계회의(AD 451년)에서야 겨우 안정을 찾았다고는 하나 '성령이 누구시냐'에 동·서 로마 교회는 만족한 답변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마리아 자신도 명색이 신학교수지만 교회들이 너무 서두른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교리나 신학이 앞세워지기는 하지만 민족들의 특성과 혈통의 단계를 뛰어넘지 못한 인간의 비애를 엿볼 수 있었다. 그녀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큰누나, 언제까지 걷기만 하죠?”

앗차, 알로펜과 동행중임을 깜박했구나. 방심이다. 혼자서만의 생각에 빠져서 실례를 했구나.

“알로펜 미안해요. 잠시 알로펜에게 어떤 선물을 주고 싶어서 생각하다가 내 생각의 함정에 빠져버렸어요. 미안, 미안해요.”

“괜찮아요. 더구나 내게 주고 싶은 어떤 선물이라 하시는데요 뭘….”

“그래, 선물을 주고 싶어요.”

“그게 뭔데요?”

“글쎄, 말하기가 조심스럽네.”

“아이참….”

“그래요. 내가 말하죠. 내가 알로펜의 후견인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후견인이라구요. 그건 만족하지 않은데요.”

“왜요?”

“더 큰 선물로 주세요.”

“더 큰 선물….”

“네. 저의 보호자가 되어 주세요.”

“보호자, 보호자는 계시잖아요. 크데시폰의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고 여기 다마스커스의 쟁쟁한 가문이신 외갓집 할아버지 야고보 장로님까지, 그런데 욕심이 너무 많은데.”

“네. 욕심, 그렇죠. 욕심 많아요. 그리고 그분들은….”

“그분들은…”

“네. 그분들은 제 혈육의 보호자시고, 마리아 교수님은 저의 신앙 지도의 보호자가 되어 주세요. 저 어제밤 할아버지로부터 마리아님의 신상에 대해 조금 소개받았어요. 마리아 교수님은 로마 카타콤 현지 동굴에서 40여일 동안 금식과 기도를 하신 일도 있고, 로마 교구 피에트로대학 박사과정을 마친 박사님이시라더군요.”

“응. 그건 그렇지요. 그러나 갑자기 보호자가 되어달라니까 긴장이 되는 데….”

“그러시면 기도하시면서 저를 더 지켜봐 주세요. 과연 보호해 줄 가치가 있는 놈인가 하구요.”

“그래, 그게 좋겠구먼.”

마리아 교수는 알로펜의 등을 서너번 토닥여 주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알로펜, 나는 오늘 자네에게 사도 바울 이야기를 좀 해주고 싶어요.”

“사도 바울요?”

“그래요.”

“그런데 그분은 욕심이 좀 많은 사람 같더군요.”

“뭐, 욕심이 많다고….”

“네. 그의 글이 너무 많아요. 신약성경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욕심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더구나, 그가 욕심쟁이라는 증거가 있지요.”

“욕심쟁이 증거라고….”

“그래요. 바울은 엄격하게 말해서 사도가 아니잖아요. 그는 육신을 입고 오사 세상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 골라서 선택한 제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에게 주어질 호칭은 열두사도와는 별도의 직함이 있어야 하는 데, 너도 사도, 나도 사도라고 하니까 기분이 별로예요.”

“허어, 알로펜! 편견이 있네요.”

“편견이 아니라 정직한 표현이죠.”


알로펜은 지지 않으려 했다. 마리아는 생각을 해보았다. 신약성경의 절반 정도를 혼자 썼으니 욕심이 많다. 사도가 아니라면서 사도를 고집했으니 싫다는 알로펜의 말을 떠올리며 마리아는 빙긋이 웃었다. 역시 보통녀석이 아니라는 자기 생각이 적중했음을 확인한 셈이다.

“그래요. 그렇게 자기 논리를 다듬어가는 습관이 있어야 해요. 그러나 섣불리 발설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문제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조심스러워야 하거든. 예를 들어 우리가 선택한 네스토리우스 기독론이나 그의 설교집 몇군데서 드러난 논리의 성급함 같은 것들도 우리들 시대에는 분별해야죠.”

“죄송합니다. 제가 건방을 떨었군요. 저는 마리아 교수님으로부터 더 많은 인정을 받고 싶어요.”

“얼마나 더, 이제 보니까 바울 사도만 욕심이 많은 것이 아니라 알로펜 또한 만만치 않은데….”

“아이코, 들켜버렸네. 이를 어찌한다….”

알로펜이 제자리에서 껑충껑충 뛰면서 자기 머리통을 툭툭 친다.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리아는 알로펜의 때묻지 않은 품성을 발견한다. 귀엽다. 한번 껴안아 주고 싶었다.

“그래, 걱정 말아요. 내가 도와줄께.”

“네, 네. 고맙습니다.”

“자, 우리 지금 다마스커스 옛 성터에 갑니다. 가서 알로펜 말대로 바울 선생의 욕심많은 성품을 확인하는 겁니다.”

“네.”

알로펜은 마리아 곁으로 바싹 닥아서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마리아 또한 그의 손에 힘을 주어 그의 요구에 동의했다. 알로펜의 손이 어찌나 뜨거웠든지 마리아는 깜짝 놀라 주춤했다. 그러나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알로펜, 사도행전을 읽으면 부활하신 예수께 붙잡힌 바울이 잠시 눈이 멀었다가 아니니아의 도움으로 회복되자, 곧바로 저기 저 광장으로 달려가서 '예수는 부활하셨다'고 외치면서 복음을 전했지요. 그때 바울의 모습을 알아본 유대인들이 변절자 바울을 죽이겠다고 덤벼들자 성벽을 타고 줄행랑을 칩니다. 믿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광주리에 담아서 성벽 너머로 간신히 피신하여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거기서도 성급하게 유대인 광장으로 달려가서 예수를 증거하다가 유대인들에게 쫓기는 몸이 되어 그의 고향 다소로 보내집니다. 사도행전 9장에 있는 내용이죠. 여기서도 사도 바울의 성급한 모습을 봅니다. 그의 감격시대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아, 네. 그렇죠.”

“알로펜, 그런데 우리가 바울선생의 성급하지도 그렇다고 덤벙대지도 않는 지극히 진솔한 성격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게 뭔데요.”

“그래요. 내가 말하지요. 바울은 그가 예수를 영접하던 초기 여기 다마스커스와 예루살렘에서 쫓겨다니던 모습을 다시는 보이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당당했지요. 루스드라에서 돌맹이 세례를 받으며 죽어갔을 때(사도행전 14:19)와 로마에서 순교할 때까지 바울의 선교일생 중 비겁했던 날이 없었어요. 우리는 바울 선생의 그같은 능력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게, 어디서죠.”

“네. 바울선생은 예루살렘에서 쫓기듯이 고향집에 돌아온 후 안디옥교회 선교사로 파송받을 때까지 10년 이상을 '그의 복음'을 완성하기까지 힘든 날들을 기다렸답니다. 사도인 바울이 결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마리아 교수님, 죄송합니다.”

“허어, 알로펜 답지 않네. 더욱 당당해야죠. 뭐가 죄송하다는 거예요.”

“사실은 저도 어제밤 할아버지와 상의했어요. 가까운 시일 안에 저는 안디옥교회를 방문하기로 했어요.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절더러 바울선생의 고향 다소 일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시더군요. 그리고 저는 힘들기는 하지만 아라비아까지 순례를 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아, 저런. 감동입니다. 너무 좋아요. 생각을 집중하고, 단순화 해서 복음을 '나의 복음'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사실 저는 금번 외갓집에 와서 외할아버지가 저에게 큰 기대를 가지고 계신 점에 있어서는 조심스러움이 있으나, 아라비아의 구도자 무함마드를 만난 날들의 충격과 마리아 교수님을 내 믿음의 스승으로 모시게 된 것을 큰 축복으로 받아들입니다.”

“고맙네. 그리고 그 결심 참으로 잘했어요. 여행이 장기간이 되는 것은 좀 그렇지만.”

“아니예요. 10여년 안에 마치고 페르시아는 물론 인도나 중국까지 아시아 선교에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쳐야죠.”

“어머나, 10년까지나. 그럼 10년 후에나 우리는 만나는거야.”

“아니죠. 말이 그렇죠. 그리고 답답하거나 궁금하고, 길이 막히면 글을 올려 마리아 교수님의 가르침을 기다릴겁니다.”

마리아와 알로펜은 다마스커스 성벽터를 따라서 해질 무렵까지 걸었다. 그들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마리아 교수가 알로펜의 어깨죽지를 의지하듯이 붙잡기도 하고, 손을 잡아주기도 했다.

그들은 알로펜 외할아버지의 기업인, 카라반, 곧 대상들의 숙소 가까이로 왔다. 무함마드가 눈에 보일까 했으나 없었다. 알로펜이 할아버지 야고보 장로님 집으로 마리아 교수님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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