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고향 다소. 바울의 우물 옆을 지나가는 다소 사람들.

그의 웃음소리는 몇가지 색깔로 나뉘는듯 했다. 먼저는 사라의 갑작스런 행동에 대한 그녀의 민망함을 달래주려는 배려가 있어 보이고, “이봐요 젊은이, 예수 자신이 유대인, 그 부모가 유대인, 그 제자들이 유대인…”이라며 자신감을 보여주는 데서는 유대인의 오만과 자부심이 있어 보이고, 또 한편으로는 너희 기독교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있었느냐는 핀잔까지 섞여있는 것 같았다.

사라는 거기까지 생각하면서 자기 귓볼이 후끈거림을 느꼈다. 귀 뿐 아니라 랍비의 호통을 듣는 순간 오랜동안 막혔던 어떤 응어리가 소리없이 그녀의 가슴팍에서 스러져가는 것 같은 상서로운 느낌까지 있었다. 어쩌면 랍비의 두 손을 움켜쥐었을 때 직감으로 자기 가슴에 전달된 감동이었으리라고 판단했다.

랍비가 사라와 알로펜을 그의 서재로 안내했다. 거기에는 책들로 가득했다. 작지않은 공간이었으나 어림잡아도 책이 3천권은 훨씬 더 되어보였다. 책들마다 아침 저녁으로 임자와 더불어 친근하게 지내 온 것처럼 대다수가 손때 묻어 있었다. 사라와 알로펜이 두리번거리면서 동시에 느끼는 것 같은 감정인듯 했다.

“앉으시오. 그래, 머무는 숙소는 불편하지 않으시나요?”

“네, 저희는 괜찮습니다.”

“불편하신다면 제가 우리 회당의 시설로 모실 수도 있는 데….”

“아닙니다. 그렇게까지는 지나치고요, 그보다는 저희는 사도바울의 전설적인 이야기 중에, 성경에는 그분이 다마스커스에서 예수님과 만나 그의 생애가 뒤바뀐 것으로 아는데 바울이 다마스커스 충격 이후 안디옥교회 선교사로 나설때까지 10여년간 고향집을 중심으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가 궁금합니다.”

“잘 보셨소! 바로 거기에 큰 의미가 하나 있지요.”

“그래요. 그걸 랍비께서 알고 계시나요?”

“그럼요. 랍비잖아요. 랍비는 신령세계의 선생이지요.”

알로펜은 랍비 요한이 너무 오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사라는 눈을 반짝거리며, 그의 길게 뽑은 목으로 랍비의 표정 어느 부분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만, 제 어린 소견으로는 랍비들이 신령한 지식의 소유자들이 아니었다고 봅니다만….”

알로펜이 참다가 모처럼 뱉어낸 말이었다.

“그래요. 청년의 말도 맞아요. 랍비라고 다 랍빈가요. 물론 내가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되지만 랍비들 중에도 여러분이 잘 알고 있듯이 가말리엘이나 그분의 스승인 힐렐 같은 이들이 있기도 하지만 선지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임으로 해서 기독교는 모르겠으나 유대교의 세계적 진출에 결정적인 장애를 준 랍비들도 있지요.”

“아, 그렇군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임으로 기독교와 원수관계가 되기도 했으며, 그로 말미암아 기독교 제국인 로마의 차별까지를 받았고, 중세기 이후 유럽에서 기독교로부터 학대를 받았으니 요한 랍비님의 말씀이 틀리다 할 수 없군요.”

“그같은 일은 하나님이 섭리하셨다 할 수 있지요. 유대교의 태만과 방종을 변명 하면서 모든 문제를 풀어갈 수 없으니 말입니다.”

“유대교에도 고민이 있습니까?”

사라는 랍비 요한과 죽이 맞아서 그들만의 황홀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너무 긴장하고 있어서 가볍게 건드리기만 해도 넘어질 것 같았다.

“랍비님은 바울 사도의 유대교 랍비시절을 잘 아실 것 같소만…, 저에게 좀 가르쳐 주시죠.”

알로펜 역시 사라의 심정과 같았다. 그는 침 넘어가는 소리로 읍소하듯이 말했다.

“뭘, 알고 싶으신가….”

“랍비시절 중 일이죠. 우리가 여기에 찾아온 용건이 그분이 다마스커스에서 부활하신 예수와의 충돌여파로 10여년 동안 아무 일도 못하고, 마치 폐인처럼 지냈다는 전설도 있고 유대교에 더 깊숙히 매달리다가 유대교로부터 배반자요, 위선자라는 낙인이 찍혀서 추방되었다고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그래요….”

해놓고는 랍비 요한은 빙그레 웃었다. 무엇인가, 한마디 더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알고 계시는 바가 있으시군요?”

사라가 잡아채듯이 말했다. 단정이었다.

“속단하지 마시오. 그리고 두 분이 내가 하는 말을 들어서 무엇이 유익이 될지는 잘 모르겠소만 벌써 500여 년 전의 이야기인데….”

“그래요. 그러나 저희는 바울, 곧 율법사 사울(바울)이 당시에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에 상당히 신뢰할 만큼의 자료가 있어보입니다만…, 왜 꺼리시는가요?”

“아니오. 너무 서두르지 마시오. 우리는 조금 전에야 만났어요. 또 여기에 몇일 머문다 하지 않았습니까.”

“아하, 그렇군요. 저희가 성급했습니다. 용서하세요.”

알로펜이 자기들의 접근이 성급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사라 역시 알로펜의 판단에 동의했다.

“내일 중으로 한번 오세요. 저보다 실력있는 분과 상의를 해서 같이 만날 수도 있을지 모르겠군요.”

“랍비여! 참으로 감사하여이다.”

알로펜과 사라는 거의 동시에 '랍비여!'를 외쳤다. 마치 예수 시대의 어감과 같은 분위기로 말이다. 그들은 너무 기뻐서 회당에서 어떻게 벗어나왔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어머님, 우리가 너무 헤프게 행동하지는 않았을까요?”

알로펜의 근심어린 표정을 달래려는 듯이 사라는 알로펜의 등허리를 두어번 쓸어내리면서 말했다.

“걱정마. 우리가 지금 흥분하지 않게 되었니? 잘하면 아주 중요한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거야.”

알로펜이 사라 곁으로 다가와서 그녀의 한 손을 꼭 붙잡았다. 그가 두 손을 모아 꼭 쥐자 사라는 손이 아파서 하마트면 '악' 소리를 지를뻔 했으나 이내 그의 손에서 전해오는 뜨거운 감정이 전해지자 그녀의 한 손으로 알로펜이 마주잡은 그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여주었다. 손이 두툼하고 듬직했다. 그녀는 알로펜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는 흥분하고 있었다.

“어머님, 저 지금 흥분해 있어요.”

“왜그래?”

“마치 바울선생을 만나기라도 한 것 같구요. 또 어머님이 동행해 주시니까 너무너무 편하고 행복해요.”

“무슨…, 내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

“어머님, 크데시폰 집에는 저의 어머니가 안계셔요. 돌아가셨거든요.”

“아, 저런. 언제? 아, 그렇구먼.”

“여러해 되었어요. 7, 8년쯤 된 것 같으네요.”

“저런, 안됐구나. 그럼 아버지는….”

“아버지는 혼자서 성역을 굳건히 지켜가십니다. 저희 아버지는 정말 자랑스러워요. 저의 참된 스승이시죠.”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들은 바울의 고향 마을을 거닐었다. 랍비 요한이 내일은 큰 선물을 준비해 줄것만 같았다. 알로펜이나 사라가 듣고 싶은 이야기, 유대교와 예수 사이 바울의 모습을 만나게 될 것 같았다.

알로펜과 사라는 큰거리로 나서려다가 바울 사도의 집터로 알려진 곳으로 가보았다. 로마의 주력 도로인 아피아가도가 동서를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들길로 나섰다. 1시간 가까이 무작정 걸었다.

전설의 강 키드누스 줄기가 눈 앞에 열렸다. 로마제국의 유력한 장교 안토니우스의 초청을 받고 이 강을 따라서 화려한 입성을 했던 클레오파트라의 모습을 연상해볼 수 있었다.

그때(BC 42년경) 클레오파트라는 그녀 자신의 용모는 물론이고, 그녀가 탔던 배에도 화려한 단장을 했었다. 그 현장에 세워진 클레오파트라의 문 또는 바울의 문으로 호칭하는 기념물도 볼 수 있었다.

알로펜은 다소 지역을 거닐면서 다음날 랍비 요한을 만나면 무엇을 물어볼까 하면서 생각을 가다듬다가 사라를 불렀다.

“어머님, 무얼 그렇게 깊이 생각하세요.”

“그래, 바울사도의 음성이 어디에선가 들려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집중해 보는거야. 왜, 이곳을 진즉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그래요. 바울선생이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고, 아마 조금 전에 다녀온 그 회당에서 토라를 공부했을지 모르는데 그의 다섯살 무렵도 떠올려봅니다.”

“그래요. 내일 랍비를 만나면 우리의 상상력에 보탬을 줄 파격적인 자료가 나올수도 있겠지.”

“어머님은 무엇이 가장 궁금하세요?”

“이미 말했잖은가. 바울 선생이 다마스커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바울에게 이방사도직을 명하셨으니 그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내신 것인데 그의 생애를 보면 활동 연도가 일치하지 않아. 예를 들어 바울선생이 다마스커스에서 주님을 만날 때가 AD 33년 또는 34년이라는 학설이 유력하고, 그가 안디옥교회 파송 선교사 자격으로 실루기아 항을 떠나 선교의 길에 나섰던 때가 AD 47년으로 계산하면 그가 선교사 준비기간은 약 13년 정도가 되니 그게 풀 수 없는 궁금증이지. 10여년이라는 중요한 기간을 바울은 무엇을 했을까? 왜, 그는 예수의 명령을 10여년 동안 지연시켰을까? 그의 신변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늘 생각해오던 사람으로 속시원한 해답을 얻었으면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실로 궁금해 하던 바입니다.”

“그럴거야. 그래서 내가 알로펜을 어른같다 하는거야. 그 나이에 누가 그런 궁금증을 가지겠어. 자네의 마음씨가 생각할수록 갸륵해 보이거든….”

“어머님, 너무 그러시면 저는 정말 쥐구멍을 찾아야 합니다. 저를 지나치게 많이 칭찬하시는 겁니다.”

“아니야. 칭찬이 아니지. 생각해 보라구. 바울사도의 초기 동작 하나하나가 우리 크리스찬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크겠어. 바울선생 같은 큰 어른의 행동하나를 쉽게 보아넘길 없을거야.”

알로펜과 사라는 다음날 랍비 요한을 찾아갔다. 랍비 요한이 맞아주었다.

“어서와요. 잘들 지냈어요?”

“그럼요. 저희는 잘 지냈습니다. 한 분 어른이 오신다더니 오셨나요?”

“아니요, 아직. 좀 더 있어야 오시겠습니다.”

잘 정돈된 회당의 마당은 정숙미가 느껴졌다. 유대교의 정서가 매우 안정감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라가 요한 랍비에게 이 회당에 대해서 물었다.

“랍비여, 이 회당 역사는 얼마나 되었나요?”

“사울이 활동하던 그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사울이나 그 가족들이 생활하던 곳입니다. 우리 유대교 회당은 가정과 같지요. 사울시대 이전부터 오늘날까지 계속된 다소의 역사와 가족사가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정말이세요. 그럼 바울사도의 역사기록도 다 남아있겠군요.”

알로펜이 눈이 휘둥그래져 가지고 큰소리로 말했다. 바울의 행적이 남아 있다니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듣고 싶어하는 부분이 어디라 했지요?”

“아, 그렇지. 사울 교법사가 다마스커스에서 예수의 영과 마주친 일에 대해서라고 했지요. 그렇죠?”

“네, 그래요. 바울선생이 다마스커스에서 돌아온 이후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났지요?”

알로펜의 말에 랍비는 또 한번 껄껄 웃어넘겼다.

“청년은 성급해요. 너무 성급하면 진실과의 만남이 자꾸만 힘들어지는 겁니다. 지금 두 분 다 제가 보기에는 대단할 것도 없는 일에 매달려 있어요.”

“뭐라구요! 랍비님 하룻밤 사이에 마음이 변하셨군요.”

“무슨 말입니까?”

랍비가 크게 눈을 뜨더니, 곧바로 근심어린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는 알로펜과 사라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웃둥 거렸다.

그때, 노인 한 사람이 회당 안으로 들어왔다. 랍비가 '실력있는 분'이라고 말한 그 사람인 듯 했다. 사라와 알로펜이 노인을 바라본다. 상당히 나이가 많아 보였다.

“아, 제가 소개하죠. 이 어른은 여러분의 기독교 장로이십니다. 스데파노 장로님이십니다. 장로님, 제가 어제 말씀드린 기독교 신자들입니다.”

알로펜과 사라는 스테파노 장로의 등장에 또 한번 놀랬다. 교회 장로의 등장에 큰 호기심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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