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특집] 평신도 좌담회




■모든 성도가 '왕 같은 제사장', 그 삶 어떻게 이뤄낼 수 있을까?


·일 시:2012년 12월 6일
·장 소:본지 세미나실
·참석자:김영배 장로(로뎀교회), 이지은 집사(남서울교회), 김정길 장로(뜨인돌교회)
·진 행:양 승 록 편집국장(들소리신문)


'왕 같은 제사장',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주신 사명
'성직자=목사' '평신도=돕는 자' 인식이 해이한 신앙 양태 불러
제대로 된 목회자·성도 극히 미미… 먼저 희생하며 헌신해야

신천지 혼란, 말씀 배움 없고 희생 않는 예배로 '자기만족' 추구한 탓
교적부와 이명증서, 이 땅의 모든 교회가 한 몸 인식 가질 때 가능
무릎 꿇고 기도하고 성도들과 아파하며 애통하는 목회자 그리워


양승록 국장(이하 '양'):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의미를 되새기는 성탄절을 맞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제자'의 삶을 요구하셨던 그 부르심에 얼마만큼 제대로 응답하고 있는지 현실을 짚어보고자 좌담회를 마련하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은 예수께서 보이신 '왕 같은 제사장' 의식을 갖고 살아가시는 평신도 분들을 모셨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에 있어 핵심이었던 '만인제사장'은 사실 그 이전에 예수께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요구하셨던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하여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성직', 거룩한 직분으로 살아내기보다 '목사' '평신도'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에 갇혀 신앙 역할에도 제한을 두며 살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세 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김정길 장로(이하 '길'):저는 '만인제사'의 개념으로 볼 때 '목사'와 '평신도'의 구분은 기능적인 부분이라고 봅니다. 저의 경우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기 위한 거룩한 일에 부름 받은 '성직자'라는 의식이 싹튼 것은 11년 전 뜨인돌교회에 출석하면서부터였습니다. 그 이전엔 '목사'와 '성도'라는 도식적인 구분에 머물러 있었지요.

교회에서 성경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가 생기면서 시야가 열리고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고 깨달음에 대한 실천을 위해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더라고요.


양:성도의 행복한 신앙생활에 있어 목회자의 마인드와 성경에 대한 바른 가르침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신가요?


김영배 장로(이하 '배'):'제사장'에서 '장'자는 기능과 직위를 의미합니다. 김정길 장로님은 '만인제사'에 있어 목사와 성도 간의 기능적인 구분을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제사인'이라는 말로 접근해보고자 합니다. 최초의 아담이 그랬듯이 하나님과 관계함에 있어 우리의 본분은 제사인, 예배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누리면서 살도록 지어진 것이지요.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고 함께 교제하며 풍성한 삶을 누리도록 돼 있는데 아담의 범죄로 타락한 이후에 제사, 예배의 역사를 보면 가인과 아벨로부터 큰 틀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단을 쌓고, 가축을 잡기도 하는 등 제사의 형태가 바뀌었어요. 그러다보니 사람이 치러야 할 대가를 짐승을 돈 주고 사서 희생을 치르게 했지요. 죄에 대한 책임을 짐승에게 전가하고 그것을 죽이고 각을 뜨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 공동체이지요.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기에 예배라는 형식이나 의식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을 생각하고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의 부름 받은 자들로서 잘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는 취지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를 이루다보니 기능적으로 '장' 자 붙은 사람이 필요하지요. '장'은 더 많은 희생과 대가를 지불하는 모범을 보이는 사람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 모범은 예수님이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셨잖아요. 종교개혁을 통해 출발한 기독교 신교의 경우도 희생을 통한 모범을 보이기보다 소위 목회자만이 제사장이며, 마치 직위의 개념으로 의식하는 경향이 강해요.


양:집사님 얘기 좀 해 주세요. 집사님께서는 현재 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이시고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올바른 하나님 이해로 이끄는 '청소년·학부모 바이블 캠프'를 진행해 오신 것으로 압니다.

이지은 집사(이하 '이'):제가 사역하기 전까지는 만인제사에 대해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고 교회 안의 성도로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깊이 공부하면서 만인제사장주의가 무엇인지 깨달았고, 목사와 성도는 직분의 차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만인제사장주의가 시발된 말씀은 출 19장 5∼6절 입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전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어 그들에게 주신 말씀이 '제사장 나라를 만들라'는 거였어요. 그 말씀을 읽을 때마다 그것이 그림처럼 눈앞에 보이는 듯 합니다. 이스라엘 온 백성이 다 모인 가운데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전했습니다. 지도자인 모세 한 사람에게만 언약하신 게 아니라 모든 백성과 언약했고 백성들은 일제히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하고 응답하였습니다.

신약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벧전 2장 9절의 말씀을 듣는 대상은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성경대로만 보자면 '왕 같은 제사장'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 여자와 남자 모두였던 겁니다. 그야말로 제사장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명령이고 사명이지요.

성경에서 볼 때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야 함이 명백한데 문제는 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목회자나 성도로 나눠지고 이것이 온데간데없이 돼버리는 것을 느낍니다. 왜 그럴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나 스스로도 과연 그게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어요.

그 원인은 사명의식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성도 스스로 목회자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자신은 '돕는 자'라고 여기는 겁니다. 예배 참석, 헌금, 봉사 잘하고, 목회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런 인식은 사역자들도 마찬가지예요. 성도들은 내가 이끄는 대로 따라오면 된다는 인식이 은연중에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분명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주실 때 백성 하나하나에게 주셨어요.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안내에 따라 가나안땅으로 갈 때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함께 이동했어요. 여기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사명을 감당해야 이룰 수 있는 나라가 제사장 나라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목사나 전도사만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룩한 백성이고 왕 같은 제사장이어야 하는 것이지요. 크기와 용량, 용도의 차이일 뿐 똑같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질그릇인 겁니다.


양:집사님께서 해법을 이야기셨는데요. 만인제사장에 위배되는 현실을 깰 수 있도록 의견을 모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보통은 교회에서 만인제사장 인식을 확립하기에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교회가 그런 부분을 양육과 훈련을 통해 가르쳐야 하는데 교회 안에 그런 가르침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성경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간 후 땅을 분배할 때도 족장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약속의 땅을 나눠주셨어요. 만인제사장은 신구약을 통해 너무도 명확하기 때문에 말씀을 제대로 알면 분명해질 거예요.


길:
우선 교회에서 말씀해석을 제대로 해주어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열리면 깨닫게 되고 삶이 변합니다. 예를 들어, 신앙이란 교회생활만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가 성경의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통해서였어요. 보통은 제물에만 초점 맞추는데 헬라어 원어성경을 보면 '가인과 제물을 받지 않으셨다'고 명확히 나와있어요. 가인의 삶이 포함되었다는 것입니다. 충격이었어요. 제물이 아니라 가인의 삶이 문제였구나,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삶이지 제물이 아니었구나 하는 걸 알게 된 겁니다. 그동안은 교회 출석과 헌금, 봉사에 연연했다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이:
끊임없이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른 나에게 주신 사명은 뭘까에 대해 몰두하고 그대로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서 깜짝 놀란 부분이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입성 전 광야에서 40년간 유랑한 사건이 계획하신 것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보다 가나안 정탐꾼들이 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따르면서 40년의 광야 심판을 받은 거였잖아요. 무서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언약 맺고 기쁨으로 헌금 드려 성막을 지었고, 예배와 제사를 지내며 충만해서 하나님을 찬송했는데, 이것만 가지고는 되지 않았던 거예요. 하나님께서 너희를 왜 선택하셨고, 어디로 가고 있으며, 왜 가는지, 이런 분명한 인식 없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 하셔서 광야 40년 유랑의 삶을 살게 하셨지요. 안주하지 말고, 자꾸 사역자들에게 미루지 말고,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며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덕을 전파해야 한다는 사명 인식이 절실합니다.


배:
무엇보다 제사, 예배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예배가 제대로 이루어졌을 때 나머지는 우리의 은사와 직임을 가지고 하는 것이잖아요. 개인적인 예배도 중요하지만 공동체로서 예배를 회복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요. 공동체를 주도하는 분이 제사장, 목회자라고 봅니다.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알고, 바르게 지성소로 성도들을 끌고 들어가야 하는 거죠. 구약의 제사장들은 희생하고 죽기를 각오하며 지성소에 들어갔어요. 오늘의 목회자들도 그런 본을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고 있는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원점으로 가고 있는가를 늘 점검해야 합니다. 문제는 한국교회 안에 제사장들, 부르심 받은 목회자들이 이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니 양떼들이 이리저리 옮겨 다닙니다.

양:고민하는 양들의 프로테지는 어느 정도로 보십니까?


배:
제대로 된 목자는 5% 정도, 고민하는 양들은 20% 정도, 나머지 80%는 헷갈려하는 것 같아요.


길:
제사장 의식을 가진 목회자와 성도는 전체로 볼 때 10%정도나 될까요.


배:
수평이동이 너무 많습니다. 한국교회에 본격적으로 위기상황이 온 것은 강제적으로 70세 정년제가 생긴 때부터라고 봅니다. 개혁적인 분들에 의해 제도가 생긴 것인데 제도는 언제든지 완벽하지 못합니다. 그에 대한 부작용은 새로운 목회자를 청빙할 때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력서나 설교를 보면서 고르잖아요. 이것이 어떻게 보면 세속주의 경향을 따르는 것일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목회자들도 교회 규모에 따라 아파트, 자동차, 사례비 등 조건을 겁니다. 성도들도 덩달아 세속의 가치관을 배웁니다. 제사장이 제대로 안하니까 이런 불필요한 제도들이 생기는 거예요.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기독교가 희생 없는 종교가 된 것이라고 봅니다. 먼저 희생을 가르치고 모범을 보여야 할 분이 목회자입니다. 구약에서 제사장이 피를 내고 물두멍에 손 씻으며 지성소에 들어갔던 심정을 기억해야 합니다. 목회자들이 교인들이 가져다주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는 것을 신뢰하면서 제물에 관심 갖지 않고 전심으로 예배에 나아가는 모범을 보여줬으면 한국교회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하나님께서 레위인들을 흩어져 살게 하신 이유는 온 백성에게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가르치라는 뜻이었죠. 이것이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어떠실까 하는 생각을 한국교회를 보면서 하기도 합니다. 목회자들에 대해 이런 저런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많지만 그럴수록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명에 따른 제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하는 건 제사장들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세상과 구별되어 제사장 나라의 삶이 뭔지 드러내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레위인에 속하는 목회자들은 성도들이 그걸 잘 할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양:그렇습니다. 목자든 양이든 모두가 거룩한 나라의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사명을 인식하고 그대로 실행할 때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봅니다.


이:
네, 그래서 만인제사장주의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깨우쳐지는 것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집이 든든히 서려면 모든 벽돌이 튼튼하게 제 역할을 잘 해주어야 합니다. 반대로 벽돌 한 장이 부실하다고 집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요. 목회자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모든 직분자, 성도들이 만인제사장 의식을 갖고 각자의 처소에서 견고하게 선다면 교회도 견고해지고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양:
제가 아는 바로는 목사님들도 목회 제대로 해보려고 상당히 노력하십니다.


길:
우리교회 목사님의 경우 여러 가지 일 하면 하나님 말씀 연구할 시간 없다는 주의세요. 예배와 말씀 사역에만 주력하십니다. 심방도 1년에 한 차례 공식 일정 외에는 없어요. 대신 주중에 11개의 성경공부 그룹이 가동됩니다. 말씀으로 깨달으면 자연스럽게 삶의 터전에서 고민하고 싸우면서 은혜 받게 되더라고요. 어떤 방향과 가르침으로 목회자들이 사느냐에 따라 성도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 점에서 삶에서 보여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배:
가슴 아픈 부분이 그거예요. 과거 목회자들의 학벌 수준이 높은 것 아니었어요. 신학도 발전되지 않았고요. 그저 무릎 꿇고 기도하며 성도들과 같이 아파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기도하고 애통하는 복을 가지셨던 것 같습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길:성도들은 깨이고 똑똑해지는데 목회자들은 잘 안 변하는 것 같아요. 목회자로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분들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이: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이게 정말 목회자만의 문제일까 하는 거예요. 목회자만의 문제였다면 한국교회가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욕먹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바르게 가르치고 모범을 보여야 하는 면에서 많은 책임이 목회자에게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모든 탓을 목회자에게 돌리기에는 우리가 말씀교육을 참 많이 받았다는 거예요. 과거보다 훨씬 더 성경을 많이 알아요. 인터넷이나 서점을 통해서 강의도 언제든지 들을 수 있고 얼마든지 성경공부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말씀을 공급받을 수 있는 루트가 많아졌어요. 그런데 왜 욕을 먹을까요? 우리 모두의 문제인데 자꾸 화살을 목회자에게만 돌리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입니다.

사업을 하다보면 창고에 재고가 많이 쌓이는 것이 문제예요. 성도들이 많이 공급받은 만큼 흘려보내야 하는데 정체돼 있다 보니 이것저것 문제가 생긴다고 봅니다.


배:이지은 집사님 말씀에 동의하면서도, 지도자에게 포커스 맞추는 이유는 이미지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야 전도를 하더라도 쉬워요. 교회의 이미지를 위해 지도자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겁니다. 지도자들이 사고를 많이 치니까 교회의 이미지도 나빠졌어요. 삶으로 헌신하고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희생하고 죽어주는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앞서 모범을 보여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오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렇게 교회는 희생하고 손해 보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배우는 삶의 연습장이 돼야 합니다.

양:이야기를 좀 전환시켜 볼까요. 요즘 한국교회에 신천지로 인해 교회마다 비상이 걸렸습니다. 교회 안팎에 '신천지 출입 금지' 경고문을 붙여놓고 대처해보지만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신천지에 대해 교회의 구조적인 문제 탓이라는 분석도 높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배:교리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리가 너무 약화됐어요. 뼈대가 없이 자기만족을 위한 찬양과 예배로 감동을 주려 하고, 이벤트 식, 경영마인드로 변질되는 분위기다보니 집이 허술할 수밖에 없습니다. 메시아, 재림사상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요. 교리적으로 뼈대를 잘 세워놨으면 이단에 빠질 일이 없어요. 기초가 부실하니 신천지가 성경 몇 군데 가지고 접근하는 것에 흔들립니다.


길:
그렇습니다. 바른 가르침을 들으면 이단을 구별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은 성도들이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교회에서 제대로 말씀과 공동체의 위로 등을 공급해주지 못하니까 이단들이 그 부분을 치고 들어오는 것으로 봅니다. 내가 힘들 때 잘해주는 쪽으로 빠지는 거예요.


양:
신천지에 빠진 분들을 보면 장로님이나 권사님들도 부지기수예요. 신자가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을 교회는 모르는 걸까요?


길:
교회가 커지면 성도의 상황을 고루 파악하기 어렵지요. 성경적으로 마지막 때에 나타나는 징조로 보기도 합니다. 성도들이 잘 살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양:
지금은 재림신앙이나 종말신앙이 너무 없어서 문제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날마다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살아야 하는데 도리어 그런 나라는 성경에만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풍토예요.


길:
이 세상이 너무 해피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너무 좋아졌잖아요. (웃음)


배:
우리가 예수님이 오실 것처럼,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처럼 살지 않는 게 문제예요. 주기도문에 나타나듯이 예수님은 이 땅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길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너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고 하셨는데 교회는 너무 물질주의에 빠져 세속적으로 가고 있어요. 하나님 나라를 우리가 이 땅 안에서 지향하고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미 예수님은 내 안에 임재해 계시고, 내가 그 예수님을 대행해서 제사장의 모습으로 살아야지요. 그렇게 할 때 이미 우리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공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양:
그동안 신천지 대안으로 교적부와 이명증서를 강조했지만 쉽지 않습니다. 필요하다는 데는 모두 공감하지만 막상 교적부와 이명증서 요구하면 있는 신자가 떨어져 나간다는 인식이에요. 과연 어디서 그것을 시행할 것인가의 문제도 있고요.


배:
기독교 연합기관에서 정치적 이익과 노선 때문에 자꾸 분열하지 말고 전체 개신교 큰 틀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권위를 이뤄갈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연합해야 합니다.

수평이동을 지양하고 어떻게든지 태신자를양육시켜서 세례 베푸는 것이 진짜 교인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교인이 옮길 때는 교적부와 이명증서를 써주고 축복해서 파송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다른 교회에서 올 때도 왜 옮기게 됐는지 여부와 신앙이력을 파악해서 그 사람에게 맞는 관리가 돼야 합니다. 목회자들 사이에서 이런 인식이 확산되고 나 혼자라도 시행하겠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길:저도 공감합니다. 우리교회는 성도가 이사 가면 그 지역의 건강한 교회를 찾아서 추천해주고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교적부가 올바른 제도이고 도입되면 좋겠지만 목회자에 대해 마음의 상처가 있는 경우 말을 못하고 조용히 떠나는 것 같습니다.


양:
지금 하신 이야기가 일반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교회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안 돼 있고 인식 자체가 없으니 문제예요. 지금이라도 늦은 감이 있지만 서둘러야 한다고 보는데요.


이:
교적부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야 소속감과 책임감도 있고요. 신천지를 이야기 하셨는데요, 어느 순간 성경공부 실시하는 기관이 많이 없어졌어요. 이것 역시 신천지 영향인 것 같습니다. 특히 과천의 교회들은 다른 곳에 가서 성경공부 하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경계합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를 통해 오늘과 내일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기 위한 것이지요. 장로교 하면 칼빈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칼빈 당시에도 이단 때문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럴 때 칼빈은 더욱 성경 가르치고 연구하는데 매진했습니다. 오늘의 교회들처럼 바리케이드 치고 경계하지 않았어요. 여기서 신천지 해법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불안할수록 더 성경에 파고들라는 거예요. 칼빈은 그런 과정 속에서 제네바학당을 만들고 다음세대의 교육을 꽃 피우는 등 더 견고하게 섰습니다. 역사 가운데 이단이 없었던 때가 없었죠. 그걸 이길 수 있었던 해법은 움츠러들지 않고 말씀을 더 바르게 연구하고 가르치는 거였습니다.


양:
이제 곧 성탄절입니다. 성탄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한 말씀씩 부탁드립니다.


이:
예수님은 갑자기 오신 것 아니라 성경에서 끊임없이 예고됐었어요. 그분이 오시면 맞이하라는 거였죠. 예수님 탄생의 진정한 의미를 바르게 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의도대로 끊임없이 그 역사를 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역사가 예수님을 향했었다는 것을 알도록 말이죠. 그런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성탄절이 되길 바랍니다.


길:
성탄은 예수께서 자기 자신을 버리신 것이 핵심이고 그것이 궁극적인 기독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사실이지요. 예수님의 자기 버림은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성탄의 의미는 예수님의 그 정신을 제대로 찾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걸 받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배:
이 땅을 원래 하나님이 계획하신 땅으로 고치라고 오신 메시아가 예수님입니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발길은 그들에게 향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삶을 통해 가르치신 것을 회복함으로써 이 땅이 회복되는 것이 예수께서 오신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희생을 통해 이 땅이 고쳐지고 그렇게 희생하는 것이 제사장의 삶입니다. 그러기에 성탄절 하루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늘 우리 가운데 탄생시켜야 합니다.


양:
오늘 한국교회가 당면한 문제들과 해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현장에서의 고민들을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땅의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의 삶을 회복하는 그날을 꿈꿔봅니다. 오랜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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