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개혁기의 한 형태 - 아나밥티스트운동(3)]


   
더크 윌렘스가 자기를 잡으려고 쫓아오는 자를 얼음물 속에서 건져올리려 한다.


         ■ 싣는 순서 ■

 ① 후터라이트의 신앙, 순교
 
 ② 멘노나이트(2)

 ③ 아미쉬공동체



마르틴 루터는 아나밥티스트파들을 싸잡아서 '광신자'들이라고 했다. 칼빈도 '광신자들', '미혹된 자들', '두뇌가 어지러운 자들', '고집쟁이들', '악당들', '미친 개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아나밥티스트파 신자들이 '떼죽음' 또는 '개죽음'을 당하게 된 원인이 무엇이며, 그들에게 그토록 참혹하고 비인간적 대접을 하여 죽인 범인들이 누구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요즘에 와서 교회역사는 그들 아나밥티스트들에게 '급진주의자'들이라는 호칭을 부여하기 시작했으니 이제는 그때 가해자들이 제정신을 차리게 되는 것 같다. 이런 평가가 등장하면서부터 침례파 교인들 입에서 종종 나오고 있다.

학자들 중에서는 근래에 조지 윌리암스가 '급진주의자들'이라는 호칭에 동의하고 있다. 그는 아나밥티스트를 심령주의자, 복음적 이성주의자로 말하기도 했다.

루터나 칼빈이 말한대로 아나밥티스트는 '광신도'나 '미치광이'였을까? 아마 루터나 칼빈시대는 대부분 개혁세력들이 마치 불길 가운데 포위되어 살고 있는 것과 같았기에 너와 나의 처지를 더는 깊이 살피지 못했을 수 있다.

필자는 지난 50여 년 동안 기독교 역사 전체는 물론 특히 16세기 종교개혁 전·후기를 힘을 다해 공부해오면서 '뮨스터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모든 아나밥티스트 운동들이 매우 훌륭하면서도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았다고 확신한다.

한 예를 들어보자. 아나밥티스트 운동사를 기록한 책 〈순교자들의 거울〉(The Martyrs Mirror)에 더크 윌렘스(Dirk Willems) 이야기가 있다. 그는 1569년 독실하고 신실한 아나밥티스트로서 행동했던 일이 있었다. 교황주의자들과 위선적 개혁주의자들의 혹독한 핍박을 피하여 살아가던 그가 어느 날 네덜란드의 아스페렌(Asperen) 지역에서 개혁주의자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집하면 반드시 죽게 되는 상황에서 온 힘을 다해 도망을 쳤다. 잡히면 죽는다. 무조건 도망치자. 마치 그때가 한겨울이었다. 그는 어느 강, 꽁꽁 얼어붙은 강을 건너서 도망쳤다.

그가 강을 건너서 무사히 도망을 치는데 그를 쫓아오는 개혁파 사람 하나가 더크처럼 꽁꽁 언 강을 타고 달려오다가 덜컹 얼음장이 깨졌다. 그는 강물 속에서 허우적 거렸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하면서 물속에 잠겨들고 있었다.

더크 윌렘스는 도망치다가 자기를 잡아서 죽일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보상금을 노리는 자를 생각했다. 그러나 두 번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내가 나만 살자고 도망칠 수 없다. 그는 자기를 잡아갈 사람을 강물 속에서 건져냈다.

그러나 강물에 빠졌다가 더크 윌렘스의 도움으로 살아난 자가 '고맙다, 내 생명을 건져주어서 감사하다'는 말 대신 더크의 허리춤을 잡았다. 그를 단단히 묶었다. 그러면서 강물에 빠져죽을뻔 했던 그 사람이 하는 말 '당신을 그냥 보내줄 수도 있으나 바로 나를 감시하는 자들이 어딘가에 있으니 그렇게 할 수가 없소' 하면서 더크 윌렘스를 끌고가서 불길 속에 집어던지는 자들에게 넘겼다.

그렇다. 당시 16세기 프로테스탄트, 또는 리폼드라고 하는 이름의 개혁자들 중 또 다른 개혁세력인 멘노파 더크 윌렘스를 이렇게 처리했다.

다시 보라. 더크 윌렘스는 자기를 잡아갈 자가 강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죽어갈 때, 하나님을 믿는 자의 양심으로 나만 살자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먼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자. 그 다음에 내 목숨을 생각하자는 더크 윌렘스를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까?

오늘의 신자들 중 상당수의 어떤 이들은 그냥 도망칠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잡으려는 저 악당을 강물 속에 집어던지신 것이다, 하나님이 심판하셨다면서 악한 자의 죽음과 그들로부터 내가 보호받았다는 식으로 자기 행동을 정당화 하면서 멀리 멀리 도망쳤을 것이다.

신자의 가치, 생명의 가치, 가치관이 더러 변한다지만 여기서 우리는 더크 윌렘스의 신앙에 동의함이 옳고, 용기있는 사람들이라 해야 할 것이다. 바로 저들, 더크 윌렘스와 같이 순결하고 아름다운 비폭력적 신앙을 가진 그들이 훨씬 더 아름답다.



1. 멘노 나이트 신앙고백


①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시고 믿음으로 가까이 나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믿는다. 우리는 거룩하고 사랑이신 하나님, 아버지이시고 아들이신 그리고 성령이신 하나님께 영원토록 예배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이는 모든 것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에게 구원과 새 삶을 주셨고 계속해서 세상 끝날 때까지 교회와 모든 것들을 지켜나가심을 믿는다.(후략)


②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을 낮추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함으로써 우리를 죄의 지배로부터 인도해 내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킨 세상의 구세주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능력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고, 영화롭게 되신 죽임당한 어린 양, 영광 중에 하나님과 함께 통치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주님이시다.(후략)


③ 성령
우리는 성령을 믿는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셨고, 교회에 권능을 부여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삶의 원천이시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 뿐 아니라 창조물의 구속까지도 믿고 확신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어진 영원하신 하나님의 성령을 믿는다.(후략)


④ 성경
우리는 성경의 모든 말씀이 구원의 가르침과 의의 훈련을 위해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감동을 주셨기 때문에 기록된 것임을 믿는다. 우리는 성경을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을 위해 온전히 믿고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성령에 의해 인도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기록하게 하신 신구약 성경이 쓰여질 당시의 수세기 동안에도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셨음을 믿는다.(후략)



16세기 아나밥티스트파 지도자 멘노 사이먼스.

이어서 ⑤ 하나님의 창조섭리 ⑥ 창조와 인간의 부름 ⑦ 죄 ⑧ 구원 ⑨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그리고 (24)까지 멘노 나이트 교단의 교리장정이 있다.


2. 멘노 나이트와 아나밥티스트 운동에 대한 이해와 오해


필자는 지면 관계상, 1525년 쯔빙글리, 루터, 칼빈 등 정통파 16세기 개혁자들로부터, 광신자, 미혹된 자들, 두뇌가 산만한 자들, 고집쟁이들, 악당들, 미친개들로 호칭되면서 악당이나 미친 개는 몽둥이가 약이라 했듯이 당시 아나밥티스파 개혁파들이 미친 개들 취급받으면서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아야 했던 원인 중 중요 부분을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성직계급'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제사장이나 예언자가 아니었듯이, 예수 복음의 핵심인 성과 속의 2원(二元) 체계를 거부하는 데 있었다. 로마 가톨릭의 일곱 개 성례가 기독교 신교의 개혁시대에는 두 개의 성례, 곧 성찬과 세례의식으로 축소되었는데, 성직자의 고유권한이라는 것마저 거부한 당시 아나밥티스트 개혁파들은 아직은 때가 아닌 때에 역사의 무대에 뛰어들었다가 희생되었다.

지금도 전 세계의 밥티스트파 기독교는 아나밥티스트들의 유산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한국의 밥티스트 교회도 50여 년 전까지 16세기 개혁을 개혁하자면서 두 번 죽어야 했던 아나밥티스트 개혁파 유산을 어느만큼 보유하고 있었다.

다음 호에서는 성과 속의 이원체계를 또 다른 각도에서 극복해낸, 그리고 현재까지도 그 시대의 유산을 보존하고 있는 '아미쉬 공동체'를 살펴보겠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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