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개혁기의 한 형태 - 아나밥티스트운동(4)]



                오하이오주 아미쉬 공동체 회원들의 한가한 나들이.


극심한 박해 피해 미국으로 간 아미쉬인들
형제애, 성품다듬기 등 공동체 결속 강화


         ■ 싣는 순서 ■

 ① 후터라이트의 신앙, 순교
 
 ② 멘노나이트 1·2

 ③ 아미쉬공동체



1. 아미쉬 운동의 개요

아나밥티스트 운동이 시작된 1525년 제2의 종교개혁기 출발은 '피비린내' 바로 그것이었다. 쯔빙글리 7제자가 '재세례받기'를 행동으로 옮겼을 초기 2∼3년 동안 그토록 소중한 인생들이 파리 목숨되어 죽어갔고, 이어서 후터라이트, 멘노 나이트 운동으로 이어오면서 사람 참 많이 죽었다.

예수를 바르게 믿자는 운동과정에서도 사람이 그렇게 무의미하고, 무책임하게 죽일 수 있을까? 기독교 역사과정에서 16세기 만큼 부도덕하게 사람을 죽였던 때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로마제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던 카타콤 시대가 있었다 하나 그들 로마는 사람을 16세기 종교개혁·반(反) 종교개혁기에 기독교 신자들끼리 죽이는 식으로 죽이지 않았다.

아미쉬 이야기다. 아미쉬인들은 독일, 스위스, 알사스(독일·프랑스·스위스 경계 지역에서 살던 아나밥티스트들)로 극심한 박해를 피하여 미국으로 이민온 사람들이다. 1773년 아미쉬 최초의 이민자들은 펜실베니아주 랭키스터 시에 정착했다. 이어서 1815년, 1860년 사이에 거듭 이민 물결이 이어졌으며 그들은 오하이오주를 비롯하여 미국 20여개 주에 퍼져서 살고 있다.

1846년 오하이오 주에서 온 3가정 아미쉬가 칼로나에 정착하여 800여 명으로 번창했으며, 그들은 미시시피 서부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그러나 그들이 너무 세속화 되었다고 본 한 무리가 하젤톤 가까운 곳 부차난 시로 가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했고, 그들은 400여 명으로 오하이오 주에서 두번째로 큰 공동체이다. 그들은 이렇게 서로를 견제하듯이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서로를 살피지만 폭력은 커녕 눈도 한 번 훌기지 않고 서로를 견제하고 또 격려한다.

아미쉬 신앙은 스위스 아나밥티스트 운동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루터나 쯔빙글리 등 개혁기 인물들의 불투명한 개혁운동에 불만을 품은 개혁자들이다. 아미쉬라는 이름은 프랑스 알사스 지방 아나밥티스트파 교회 목사 야콥 암만(Tacob Amman)을 따르던 이들이 붙인 이름이다. 암만 목사는 더 엄격한 개혁을 주장하다가 교회에서 추방되었다.

그들은 후터라이트나 멘노 등과 마찬가지로 태어났을 때 하는 유아세례를 믿지 않는다. 그들은 아이가 청소년기를 지나 교회생활에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즉 16세나 18세에 세례서약을 한다.

그들의 세례절차는 6∼8회 정도의 교육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세례식때 젊은이들은 죽는 날까지 교회와 공동체의 규율을 따르겠다고 엄숙하게 선언한다.


                    아미쉬 남성들의 복색과 수염 형태.


아미쉬인들은 예수의 삶과 예수의 산상수훈 모범을 일상의 교훈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가족, 공동체의 결속, 형제애를 중시하며 세속과 분리된 채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행하지 않고, 겸손하고 평화롭게 살아가야 한다고 확신한다.



2. 아미쉬의 난해한 삶


그들은 군대에 가지 않는다. 이를 이유로 아미쉬인들은 감옥에 갔고, 2차 세계대전 때는 심한 탄압을 받기도 했다. 신앙에 따라서 선거에 참여하지 않고, 정부 일에 참여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자신들에게 잘못을 저질러도 일절 법에 호소하지 않는다.

아미쉬는 선교활동을 하지 않는다. 외부인을 설득하여 아미쉬 신앙을 갖게 하려하지 않는다(스스로 빛이 되고 싶을 뿐). 아미쉬인들은 그들의 신앙의 표준에 도달하기 위하여 깊이 있는 신앙훈련을 한다. 오직 세상의 빛이 되기를 열망한다. 이웃들에게 자기 삶을 보여줄 뿐, 아미쉬 아닌 이웃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이방인들, 타인들을 그들의 모습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뿐이다.



3. 줄기찬 전통


아미쉬인들은 500여 년 동안 변함없이 아미쉬 전통을 따른다. 아미쉬 신앙의 가장 큰 부분은 교회와 공동체의 생활계율과 규칙을 따르는 것이다. 아미쉬인들은 어려서부터 오르드눙(규율)이라는 엄격한 육체 계율에 따라 행동하고 옷을 갖춰 입는다.

세속적인 방식을 차단하기 위해서 현대문명(자동차·전화·텔레비젼·전기)을 거부하고, 자기들만의 옷차림을 갖춘다. 아미쉬 남자들은 재킷에 단추나 접는 깃을 달지 않는다. 또한 아미쉬 사람들은 콧수염을 기르지 않으나 결혼을 하면 콧수염을 손질하지 않은채 기른다. 이런 특이한 관습은 구세군 파가 아미쉬 교도들을 박해한데서 비롯되었다. 그 당시 구세군 파는 단추와 접는 깃을 사용하고, 콧수염을 길렀지만 턱수염은 기르지 않았다. 그래서 아미쉬 사람들은 구세군과 다르게 통이 넓은 바지에 멜빵을 메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쓰게 되었다.

아미쉬 사람들은 오르드눙(규율)을 따라야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가령 아미쉬 여자들은 머리를 자르지 않는다. 대신 집안에 있을 때는 머리를 땋아 흰색이나 검정 오건디(얇은 모슬린 직물)로 만든 '기도모자'로 단정하게 가린다. 그리고 공공장소에 있을 때는 모직으로 된 검정보닛을 쓰는데, 1백년 전 개척지 여자들이 쓰던 것과 비슷하다.

이 관습은 '예배를 드릴 때 여자는 머리를 가리라'는 성경 말씀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 중 언제라도 기도할 수 있으므로 항상 머리를 가릴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한다. 또, 여자는 화장을 하면 안되고, 앞치마가 달린 단정한 긴 원피스를 입고 단추 대신 아이어(eyers)로 옷을 여민다. 옷감은 무늬가 없는 단색이어야 한다.



4. 아미쉬인의 한계


아마쉬인들은 로멘스에 빠질 때 큰 곤욕을 치룬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아미쉬인들은 여러가지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 과학문명의 의존도가 높아지는 세상에서 대규모 농장이 주류를 이루는데 세상 기술에 의존하지 않기 위하여 소규모 농사를 짓는다. 소규모 농사로는 생계마저 유지하기 어렵다.

요즘에는 행동규칙을 따르는 문제에도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아미쉬인들은 힘들때 솔선수범하여 서로를 돕는 사람들이지만, 가끔 성도들까지 복종을 강요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오르드눙(규칙)을 존중하는 이들은 안정, 형제애, 만족, 성품다듬기, 결속, 협력, 우애, 부부애 등 공동체의 결속 강화를 누리고 살아간다.



                      아미쉬 여성들의 머리보호 기도 모자.


그러나 세례를 받은 사람이 오르드눙(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그 사람은 믿음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추방당할 수도 있다. 한 번 추방되면 그 사람은 격리(meidung, 이는 모든 공동체인들이 그 사람을 멀리한다는 뜻이다)를 당하게 된다. 공동체인들이 돈을 너무 많이 벌거나, 재물을 내세워 자랑을 하거나, 오르드눙을 따르지 않으면 다른 교우들이 그들을 멀리한다.

아미쉬인들은 좀 더 자유롭게 생활하고 싶으면 멘노 나이트 같은 다른 아나밥티스트 교회로 참여할 수도 있다. 아닐 경우 좀 더 인내심이 더 많은 공동체로 이사할 수도 있다. 이같은 방법으로 출구를 찾을 수 있다. 또 다른 경우는 광활한 미국의 터전에서 마음이 더 가까운 이들끼리 새로운 공동체를 시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중요한 문제가 있다. 유전자 문제이다. 유전자 공급원이 제한되어 있다. 미국의 3대 주요 정착지(펜실베니아 주, 오하이오 주, 인디애나 주)의 유전자 공급원이 너무 비슷하다. 아미쉬인들은 보통 자기 공동체 사람들을 배우자로 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절반이 넘는 사람들의 성 씨가 절반인 5개 밖에 안되는 형편이다. 그로인해 유전적인 질병이 많이 퍼져 있다.

그밖에 다른 면에서의 건강은 미국인들 보다 아미쉬가 훨씬 건강하다. 자살률이 절반 이하, 고혈압 환자가 거의 없다. 자궁암 발생률도 훨씬 작다.

일반인들 중에서는 요즘 아미쉬 공동체를 전보다 훨씬 더 높게 평가하고 있다. 아미쉬는 친밀한 가족애, 헌신적인 자녀돌보기, 비폭력 신앙에 바탕을 둔 생활방식, 위기에 처한 이웃을 돌보는 인간애, 사회환경 보호력의 수준 등을 들 수 있다.



5. 그들은 존중의 대상


재작년 오하이오 주 아미쉬 공동체를 찾아가 본, 그때의 필자 감정은 참으로 평온하고 평화롭다는 느낌이었다. 각 가정을 살펴보면 그들 공동체 예배를 위한 공간이 있다. 거실이 평균 50명 정도가 모일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아미쉬 공동체가 살아가는 삶은 혹독한 규율(오르드눙)에서 느끼는 바가 많다.

어찌보면 수사, 수녀, 승려, 비구, 비구니, 사막의 독(홀로) 수사 등과 크게 다를 바 없어보이기도 하고, 수도원이나 사찰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그들은 매우 자유로운 부부생활, 자녀들, 이웃들과 어우러진 공동체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 아미쉬 공동체라는 느낌을 얻을 수 있다.

만약, 불편하고 고통스럽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고통이니,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떠올리면 될 것이다. 이렇듯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의와 사랑에 도전하며 사는 그들 아미쉬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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