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종교, 그 하늘같은 위엄과 공갈하는 힘으로 `문화인류시대'를 정착시키는 일에 주요역할을 했으나 종교가 지배하는 시대를 마감키로 결심하신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심으로 종교지상 시대를 마감했다.이같은 하나님의 비밀하신 뜻을 배운 필자는 예수께 대한 성격 이해를 `종교지상시대의 막내요 인간중심시대의 맏아들'이라고 말한다. 시대의 갈림길, 그 십자로에 예수가 메시아의 이름으로 계신다.오늘의 기독교는 기독교의 본질이해에 혼돈을 일으켜 휴머니즘과 기독교, 헬레니즘과 예수를 동일시하는 과오를 가지고 있다. 이는 무지(無知)에서 온 혼돈이다. 전혀 그럴 수 없어야 하는데도 말이다.많은 크리스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종교의 범주 안에서 이해하고 있으며, 세상이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로 대접해 주는 정도에 감지덕지 하고 있다.그러므로 기독교의 자기 이해 부족, 또는 오해는 종교들 가운데 함께 행세해야 하는 부담을 가지고 있다. 종교란 종교와 인간이 마주 서는 상대관계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와 인간이 함께 하 하는 나의 자리, 곧 절대의 자리에 선다.누가복음 15장에 가면 목자가 양 아흔 아홉마리를 우리 안에 두고 한 마리 양을 찾아 길을 나선다고 했다. 아흔아홉과 하나, 이 두 관계의 상대 위치가 종교이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목자는 99에 만족하지 않고 `나머지 하나'를 찾기로 한다.이 말씀에서 우리는 99가 종교의 한계 영역임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99는 100이 아니다. 미완성은 완성이 아니듯이…. 그래서 종교의 왕좌에 오른 고오타마 붓다는 `스스로를 다만 길을 가리킬 뿐'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99를 뒤에 두고 나머지 하나를 찾아나선 이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여 내가 뛰어들어 99를 잡으면 100이요 또 99를 내 던지고 `그 하나'를 만나면 완전의 자리(하나님의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관념의 틀에서 벗어나라. 마치 저 아름다운 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애모의 뜻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저 달에 뛰어 들어 함께 하는 달이 되어준다면 달은 바라봄의 종교의 틀에서 벗어나 인간에게는 자유함이 넘치는 삶의 현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 된다.우리가 아는대로 유대교나 조로아스터, 이슬람, 심지어 불교까지도 `유일신'이라는 이름의 종교의 추상성과 철학의 틀에 묶여 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신)의 보내심을 받은 자요, 하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이요 또 그 분의 체온이요 삶의 연장이다.그리스도 예수는 믿는 자의 체온이요 호흡이시다. 그는 종교의 추상성, 또 관념을 제어하시고 온전한 인간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셨다. 종교는 본디 하나님의 신념체계다. 신념은 그 스스로가 자기 변호를 해야 하는 고달픔이 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는 믿음의 틀 안에 함께 존재한다. 서로를 신뢰하는 약속이 있다.그래서 오늘을 사는 크리스찬은 `역사 예수의 현재'가 된다. 이 놀라운 비밀 아닌 비밀을 구체화 하면 이 세상은 살만한 나라요 하나님의 통치가 이미 이루어지고 있음을 넉넉하게 경험 할 수 있다. -無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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