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법 개정안 부결,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29일 임시국회에서 부결 처리된 재외동포법 개정안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간이 가도 식을 줄 모르는 이 법안의 부결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는 시민들, 그리고 네티즌들은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은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고, 우리같이 힘 없는 사람들 자식만 군대에 가라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반발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병역기피와 재외동포법 개정안

지난 5월 국적법 개정안이 발의됐을 때 국적 포기를 신청한 1678명의 명단을 살펴보면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국적포기를 힐책하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됐었다.
병역의무 면탈을 위해 국적을 포기한 사람에 대해 재외동포로서의 각종 혜택을 박탈하는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을 개정하자는 안이 발의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재외동포법 개정안을 발의할 때는 찬성했던 의원들이 막상 국회 표결에서는 반대의 표를 던져 여론은 더 악화됐다. 232명의 의원들이 참가한 이날 표결에서는 찬성 104표, 반대 60표, 기권 68표로 부결됐는데, 법안이 통과되는 재석의원의 과반수인 116표에는 불과 12표가 부족했다. 정당별로는 한나라당이 찬성표가 많은 반면 열린우리당은 반대 및 기권표가 많아 기대했던 이들을 실망시키게 된 것.
이를 바라보는 네티즌들은 “힘 없고, 돈 없는 백성들 자식들만 군대 보낼 수 없다”(tjwhdgns13), “군대 가기 싫어서 자기 나라 국적을 포기하는 이들은 영원히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들은 병역을 기피한 범법자들이다. 자기 나라야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는,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가는 비겁한 자들이다”(caffeinn), “총만 안들었지 완전 군사정권이다“(서현아빠), “국가의 기운이 쇠하는 징조인가? 외세에 휘둘려버릴 국운을 예감하는 듯하여 한 없이 슬프다”(kyseek) 라며 분노하고 있다.

재외동포법, 현 시점에 없어도 된다?

열린우리당은 병역기피 목적의 국적이탈자를 응징하는 내용의 재외동포법에 찬성표를 던진 법사위 소속 최재천 의원과 반대표를 던진 통일외교통상위 소속 이화영 의원의 해명과 반론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법무부 내부지침으로 병역기피 목적의 국적이탈자를 규제하고 있는데 또다시 법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지난 5월 원정출산 등으로 인한 병역기피 등을 막기 위한 국적법중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201명의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189명, 반대 6명, 기권 6명으로 통과된 바 있다.
이 법안은 일시적으로 출국한 산모가 출산해 외국 시민권을 갖게 된 사람은 병역의무를 다했을 때라야 국적이탈신고를 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중국적자는 17살까지 국적을 선택하게 돼 있는 현행법률을 개정해 18살에 병역의무자 명단에 오른 뒤 3개월 안까지만 선택을 마치도록 해 병역의무만 다한다면 당사자가 충분한 시간을 갖고 국적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이와 함께 부모나 조부모 등이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국적 포기자는 재외동포 체류자격(F-4)을 받을 수 없게 된다.외국인으로 분류가 돼 의료보험이나 연금 혜택 등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고교 졸업 때까지는 방문동거(F-1) 자격이 부여되지만 졸업 후에는 유학 또는 취업 자격을 허용하는 별도의 비자를 발급받아야만 국내 체류가 가능해지도록 했다.
그래서 최 의원은 ‘재외동포법에 대한 오해와 이해’란 글에서 “2002년 병역기피 의혹으로 입국이 불허된 가수 유승준 사건을 계기로 법무부가 국적이탈자의 재외동포 활동을 지침으로 규제해오고 있어 병역기피 목적의 국적이탈자에 대해 재외동포 자격으로의 입국이나 국내거주 자체를 완벽하게 봉쇄하고 있다”며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발의한 재외동포법은 현 시점에서는 없어도 큰 상관이 없는 법”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그는 “홍준표 의원의 법안은 실익이 있는 법이 아니라 정서적 측면에 기대는 법”이라며 “우리당의 구성원들이 한나라당보다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보니 폐쇄적인 국수주의보다는 다양성과 다원주의를 존중하게 되고 일국중심주의 보다는 지구촌시대의 세계 시민으로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염려했던 점 등이 반영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 또한 “개정안은 편의적이고 정략적인 발상에서 비롯됐고 법적 요건도 구비 못한 이벤트 정치의 결과물이며,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얼마든지 규제되는 사항을 법적 시효도 없는 소급입법을 통해 처벌규정을 만들어야 하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홍준표 의원은 사태가 이렇게 되자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어 “재외동포로서 영주하고 있는 분들이 이 법에 대상이 되는 분들은 한 명도 없다”면서 “영주하지 않고 일시 체류하다 원정출산하고 한국에 들어와 사는 사람들이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인 행세를 하면서 권리와 특권을 재외동포와 똑같이 누리려 하는 것은 안되지 않느냐”며 개정안의 타당성을 강조했다.
또 그는 “많은 의원들이 이 법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 법안의 대상은 재외동포로 이민을 간 재외국민이나 재외국적 동포들은 전혀 대상이 되지 않는데, 이것을 두고 700만 재외동포 네트워킹에 어긋나니 하는 것은 잘못된 이해”라고 주장했다.
또 “법사위에서 여야 의원들이 전부 만장일치로 가결된 법안이고, 법사위 소위원회에서도 두 번에 걸친 격한 논쟁 끝에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그런데 이 안이 본회의에 와서 부결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홍 의원은 `법무부가 법무부 지침으로 병역기피 목적의 국적이탈자에 대해 권한을 제한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법무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지침이나 내규는 모법의 근거가 없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 허점을 지적했다.

재외동포법 개정안은 연좌제다?

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은 이번 재외동포법 개정안에 대해 “개정안의 핵심은 2천명의 국적포자들을 영원히 재외동포에서 제외, 후안무치한 행동을 한 데 대해 벌하자는 목적”이라며 “나는 이들의 어처구니 없는 일탈에 여러분과 같이 분노하고 있지만 그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순간, 그 존재 의미를 상실한다”며 “국적 포기자의 연령을 보면 15세 미만이 거의 60%에 달하며, 두 살, 세 살, 네 살의 아이들이 부지기수인데, 이들은 이미 부모의 빗나간 선택에 의해 병역기피자라는 낙인을 안고 평생을 살게 되었으며, 장차 대한민국의 고위 공직자나 책임있는 지위의 일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문제는 개정안에 의해 다시 이들을 영원히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으로 살게 할 것인가”라면서 “정작 이 선택을 한 부모는 버젓이 한국인의 권리를 누리고, 아이들이 연좌제의 책임을 고스란히 져야 하는가, 아이들의 인권은 보호받을 가치가 없는가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홍준표 의원은 “열린우리당에서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과거사법 같은 경우 후손이 책임져야 하는 것인데, 그럼 그것도 연좌제인가”라면서 “18살이 됐을 때 국적을 회복하면 책임을지지 않아도 되는데, 그것도 하지 않으려 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난했다.
홍 의원은 “국적포기는 기본권이지만 군대 갔다 와서 국적 포기하라는 것이다. 한국인으로서는 당연한 기본적인 의무는 지켜달라는 것인데, 그것도 하지 않고 포기해 놓고 재외동포도 한국인과 똑같이 대접해 달라는 것 모순이다”고 말했다.

재외동포법 개정안 다시 상정?

재외동포법 개정안 부결에 따른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비난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열린우리당은 서둘러 새로운 법률적 대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원혜영 정책위원장을 팀장으로 하는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놓은 상태다.
한편 이번 개정안 발의로 여론의 호평을 받고 있는 홍준표 의원은 향후 대책과 관련, “9월 정기국회에서 법안 재발의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일사부재의 원칙에 의해 한번 부결된 법안이 재발의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재발의를 하려면 국민 여론이 받쳐줘야 한다”고 국민의 지지를 호소했다.
홍 의원은 “장영달 의원이 공동발의를 제안하기도 했다”면서 “이 법안은 여야를 초월해 의지를 모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하기 때문에, 공동발의도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우리당의 개정안 추진 움직임에 긍정적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번 재외동포법 개정안이 부결된 것을 두고 시민 및 네티즌들이 분노하는 것은 이제까지 권력을 가진 많은 가정의 자녀들이 ‘특혜’를 받아 병역을 면제받은 일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으로 관측된다.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가 아들의 병역기피가 문제가 됐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병역 문제에 대해 민감해 있는 터에 ‘힘 있는 이들에게만 유리하게 또다시 빗겨가는 듯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국민의 정서가 이번 개정안에 또다시 `무시'되자 또다시 좌절과 비난이 거센 것이다.
양승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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