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할 자들은 날마다 새로운 탄생을 경험해야 한다. 부활, 예수 부활 곧 나의 부활을 온 영과 몸으로 체휼하는 시간까지 신자의 기다림(행 1:4)은 간절한 인내와 겸손함을 필요로 한다.

위로부터 능력을 힘입을 때까지 기다리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다. 여기서 말씀의 골격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에 있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그 은혜를 기다려야 하는 장소는 예루살렘이다.

여기서 예루살렘(모리아, 골고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이루신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를 다시 말하면 성령 하나님이 내게 임하실 ‘그곳’은 ‘십자가 죽음의 현장’이라는 뜻이다. 단순한 그곳, 그 장소가 아니라 예수 죽음에 내가 동반한 그곳(갈 2:20)이다.

우리는 골고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그가 내 대신 죽으셨다는 현상황을 추상처리하면 안된다. 그런 사람들이 기다린다 하여 오순절 성령강림이 그들의 몫이 되지 못한다.

예수의 부활 현장에 500여 명의 형제들(고전 15:6)이 있었으나 예루살렘 다락방 성령강림 대망의 시간에는 120명의 제자들(행 1:15) 뿐이었으니 그럼 380여 명은 구경꾼들이었을까?

예수 부활을 확인했으나 그것이 나의 부활로 연결되기까지는 이렇듯 시련의 과정이 있다. 오늘 우리는 120명 가운데 있는지를 진솔한 자세로 분별해내야 한다.

물론 120여 명의 예루살렘 다락방에 내가 있다 하여도 그것으로 책임을 다하는 것 아니다. 예수의 생명, 곧 성령 하나님께서 내게 오사 경배와 사랑의 주체가 되어 주시기까지 믿는 자들이 넘어야 할 산이 아직도 남아 있다.

어떤 이들은 경배는 하나님께, 이웃사랑은 내 몫이요, 내가 하는 내 행위의 결과물로 착각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이같은 신자들 때문에 교회공동체가 거룩으로 가는 길에 장애를 받는다. 경배와 사랑은 둘 다 성령 하나님의 몫이다. 성령께서 내게 오사 온전한 경배를 이루시고, 내가 신성에 참여하도록 하신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신성(神性)에 동반한 나의 믿음을 통하여 직접, 나를 통했으나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신다.

다시 말하면 우리 신자가 행하는 이웃사랑이나 모든 선행까지도 신의 권능, 하나님의 능력의 나타남이지, 내가 하는 일이 아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신앙의 열매’가 완성되고 실패하는 함정이 있다. 선행이나 사랑 베품이 나의 착한 행위일 때는 도덕성의 한계에 부딪힌다. 그러나 하나님, 곧 신성의 권위인 성령의 능력으로 행한 행위는 하나님의 직접행위와 같다.

바로 여기에 예수님의 행위가 있으며, 또 여기 이같은 자세로 나의 모든 행위동작이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사람으로 내 행위가 성립된다.

신자여! 주 하나님을 향한 무한 경배가 무한 사랑과 겸손으로 이어져 이루어지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의 은혜자들이 되어야 한다.

〈無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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