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메시아께서 ‘하나님의 역사 현재’로 이 세상에 오심으로, 바로 그 순간부터 성전시대가 끝났다. 예수는 골고다에서 성전시대와 마지막 대결을 하셨다. 예수의 육신이 그때 무너지고, 그 순간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이 둘로 가라지는 표적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그리고 성전은 마지막 종언을 고했고(AD 70), 죽은 예수는 부활의 맏아들로 역사의 중심에 우뚝 일어섰다. 예수께서 죽고 다시 사심으로 ‘인간시대’가 ‘종교시대’의 사슬을 끊고 새역사의 출발선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그 순간부터 인류는 스스로가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께 단독의 제사를 드리는 창조 시대의 은혜를 입은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초기의 박해, 그리고 긴 3백여 년 동안 카타콤생활을 하느라고 세계적인 체계를 잡는 시기를 놓쳤다. 이어서 AD 325년 니케야 시대 진입 이후 ‘제국의 교회’가 되어 선택의 시대를 살다가 근대사의 문턱인 AD 1517년 10월 31일 이른바 종교개혁이라는 시대구분을 했으나 아직 세상은 성(聖) 속(俗)의 이분법이 더 편해서 훌쩍 21세기까지 ‘자기극복’을 하지 못한 채 여기에 있다. 이제는 기독교의 본격 개혁시대를 불러야 한다. 루터이후의 기독교 신교는 예수, 바울, 어거스틴, 루터로 이어 내려오는 만인제사의 꿈을 이루어 완성도를 높이고자 했다. 하기는 바울은 예루살렘 생활공동체(everyday church)를 회당공동체(Sunday church)로 후퇴시키는 반동의 역사를 부르고 말았으나, 그때는 시기적으로 예수의 삶을 생활교회(daily church, everyday church, Home church)로 발전시키기가 쉽지 않은 때였다. 다행히 고대 기독교 시대에 수도공동체가 생활교회의 틀을 지켜 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세속화 곧 세속 속에서 세상 사람들과 차별화 없이 평범하게 이루어가는 교회시대를 불러내지는 못했다. 이제 기독교는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일으키리라'하신 말씀의 구체화를 이루어 내야 한다. 이 말씀의 현재를 이루어 내기 위하여 우리에게는 십자가가 하나 남아 있다. 지금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라. 교회의 중심이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교회가 사업체화 되어간다. 평신도와 목회자 계층의 갈등은 수습이 어려울만큼 되어 있다. 마치 지배자와 피지배자처럼, 그레고리 7세와 헨리 4세의 관계처럼 안타깝다. 전성기 그레고리 7세는 알프스 산장 그 추운 눈밭에 황제인 헨리 4세를 세워둘 수 있었으나 늙어 이빨 빠진 호랑이 되었을 때 피눈물을 흘려야 했었다. 한국교회의 교황인 담임목사는 황제인 당회원 장로들의 집단의 힘 앞에서 심히 떨고 있지 않은가. 교회가 파워게임의 중심지인가? 아니다. 교회를 교회되게 하라. 목사나 장로들, 그리고 제자운동하는 목사들은 평신도가 평신도 이끌게 하라. 목사는 예수가 아니다. 같이 제자 이상일 수 없으니 지배자처럼 또 다른 형식으로 신자를 굴복시키려 하지 말고 신자들과 똑같은 조건과 신분으로 신자들이 향하는 쪽을 목회자들도 바라보면서 선생 노릇하려 들지 마라. 그리고 목사와 평신도의 성사(聖事) 집례권을 일치시키고 동일한 자격으로 하라. 그때 비로소 만인제사, 만인 제자화 시대가 열릴 것이다. 〈無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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