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되었든 한국교회는 1천여 만 명의 기독교 신자를 가졌다. 우리는 이에 큰 자부심을 갖는다. 겨우 1백여 년 역사인데,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계시기에 이 사인(sign)을 우리에게 주셨을까. 우리는 각자 자기의 모습을 살펴 부르신 이의 뜻에 따라 자기 몸을 던질 수 있어야 하겠다.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눅 2:51). 유월절 예루살렘 순례길 오고 가다가 아들을 잃어버린 예수의 부모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 예수를 만났다. 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양친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곧바로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하였다. 깨닫지는 못했으나 마음에 두었다고 하였다. 무슨 말씀인가? 마음에 두다, 라는 것은 스승의 가르침을 간직하는 제자의 표현법이다. 그러므로 모친 마리아는 예수님의 제1의 제자가 되어 있었음을 뜻한다. 가장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복한 여인, 그의 생명 모두 예수를 위해 다바쳐 올린 사랑하는 여인, 그가 비록 누가복음 2장 51절에는 말씀을 마음에 두는 정도였으나 예수의 모친으로, 또 제자로서 만세에 그 이름이 남는 성모 마리아시다. 거룩한 날이 오고 있다. 온 세계, 그 어느 생명이 주 예수의 은혜에 제외될까마는 특별히 이 아침 우리는 복 많이 받은 대한민국의 크리스챤 모두의 마음에 내 마음을 푸근히 담아 본다. 어떻게 할까? 이 백성 뿐 아니라 모두에까지만 형극의 삶을 1천 여 년 견디어 낸 백성, 1천 여 년이라 함은 고려조 중엽 이후부터를 말한다. 원나라 기세에 짓밟히기 시작한 이후 언제 편할 날이 있었던가. 날마다 쫓기면서 살아왔다. 1천여 년 동안 크고 작은 침략과 전쟁, 재난의 날들을 어느 학자가 대강 계산해 보니 1년에 한 번 꼴로 재난과 전쟁이었다고 했다. 그 숫자의 정확성보다, 과연 많은 날들이 사연과 고난이었구나 하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요즈음 북한은 반신불수 같은 정치놀음에 다 병신되어 가고, 남쪽은 빈부의 갈등, 좌우의 갈등이 극심하여 자칫 한 세기 전 개항기나 해방기에 겪었던 수난이 또 오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특히 나라가 어려워지고, 섣부른 남북 연합이나 연방시도 등 소영웅주의에 빠져있는 자들이 불장난을 시도하려들면 어찌하는가 하는 걱정이 많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1천만 이 땅의 크리스찬을 통하여 민족의 위난을 건져내시기를 원한다. 아까운 자식들, 어떤 체제에서든지 신앙의 양심을 지켜내온 성도들, 카타콤에서도 견뎠으며, 아우슈비츠에서도 비겁하게 피하지 않았으며, 공산당들의 폭력 앞에서도 지조를 지킨 바 있었던 성도들의 기개와 주 예수를 향한 착한 양심을 우리는 따를 것이다. 사랑스러운 이 땅의 성도들, 아직은 재난이 멀리 있거니 하면서 방심하는 신자들을 위하여 먼저 기도하겠다. 어떻게 하면 내 백성을 지켜낼까, 또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내 사랑하는 성도들을 위하여 이 몸을 바칠 수 있을까. 성도여, 사랑스러운 이 땅의 성도들이여, 조선, 대한의 그리스도인들이여, 내 마음 지금은 천만 성도들의 기도하는 가슴에 묻고 사랑과 위안을 나누고 싶다. -無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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