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① - 성경적 재해석 절실

“요즘들어 주일을 섬기지 못해 마음이 더 괴롭습니다. 주일에도 일해야 하는 직장에 있는지라 마음은 주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몸은 항상 따로 있습니다. 몇 번이고 직장을 선택 할 때 기도해야지 하면서도 제 생각대로 선택합니다. 이곳에 있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나가야 하는 것이 맞는지 마음이 답답합니다.”(xaris7)
“제 친구는 주일 낮 예배를 드리지 않고 저녁예배만 드리거나 야외로 나갈 일이 있으면 그곳에 있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이것은 주일성수를 제대로 지킨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괜찮습니까.”(leeky)
온라인상에서 상담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한 사람은 자신의 직업으로 인해 주일날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일한다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것이지만, 또 한 사람은 직업 때문이 아닌, 개인적인 휴식이나 여가, 행사 등으로 인해 정해진 시간, 정해진 교회에서 예배 드리지 못하는 것 때문에 주위의 사람이 의구심을 갖는 내용이다.
예전에는 많은 신자들이 ‘주일 성수’를 제대로 하기 위해 주일날 일하는 문제로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아직도 그런 부분에 매여서 마음을 졸이는 신자들이 있지만 이제는 주5일 근무제의 확대 실시로 행사 혹은 휴식을 위해 교회의 주일예배를 부득불 결석하는 이들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되는 추세다.

달라지는 주일의 개념, 풍토

시대가 달라지는 것과 동시에 많은 일상의 문화나 양식 등이 바뀌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변하지 않는 것, 그것을 우리는 진리라고 부른다. 하나님이 진리이며, 말씀이 진리이며, 인간에게 부여하신 사랑 또한 진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한국교회가 견지해 왔던 ‘주일’의 의미는 변하지 않는 진리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의 생활 양식이 변했다고 해서 덩달아 ‘주일’을 인식하는 태도가 변한다면 그토록 강조해 왔던 ‘주일 성수’를 주창했던 기독교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었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주일 저녁예배는 밤에 드려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요즘에는 주일 오후예배로 대체하는 교회가 많이 생겨났다. 더 나아가 저녁예배를 가정예배로 드리게 하는 교회도 있다. 금요일 철야 심야기도회를 수요일 기도회로 옮겨 드리는 교회도 있다. 아예 금요일 철야가 없는 교회도 많다. 그러나 적지 않은 교회는 “편의주의의 발상”이라며 예전대로 고수하는 교회도 많다.
이런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주일성수 전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교회는 그날을 마치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듯이 지키려 애써 온 것이 사실이다. 이 신앙을 위해 직장을 그만둔 사람들을 참 신앙인으로 존경해 왔다. 그러나 주일 예배를 토요일 저녁에 드리는 교회가 생겨나는가 하면, 금요일 저녁에 주일 1부 예배를 대체하는 교회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주일예배를 대체하여 금^토요일에 드리는 예배면 문제가 되겠지만 교회가 그날과 함께 주일에도 예배를 드리는 것은 오히려 현대인들을 교회에서 멀어지게 하지 않고 그들의 생활패턴에 맞추어 나가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렇게 변화를 보이는 교회는 아직까지 급증하고 있지는 않다. 100년이 넘는 기간동안 고착돼 왔던 부분들을 극복하기가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그토록 강조했던 ‘주일 성수’의 개념은 과연 잘못된 것이었을까.

주일 성수 의미 재해석 필요성

종로구의 H 목사는 “한국교회가 주일에 대한 개념을 잘못 가르친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구약의 안식일 개념에서 신약의 주일 개념으로 날짜는 변화되어 지키지만 많은 부분 구약의 개념을 답습하고 있다. 주일예배를 드리지 못해서 죄악시 하고, 그들의 심령을 억눌리게 만든 것은 분명 잘못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주일은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 것을 기념하는 날’(마 28:1, 막 16:2, 눅 24:1, 요 20:1)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대부분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전통에 따라 안식일은 지키고 주일은 지키지 않았다. 그에 반해 예수를 따라 율법주의에 강력하게 항거했던 사도 바울은, 기독교인들은 주일을 지켜야 하며, 유대교 의식에 따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복음에 역행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런 영향으로 2세기 초,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은 안식일 대신 주일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고 기독교인들도 이를 따르기 시작했다. 17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안식일과 주일을 분리하고 다른 것으로 규정했다. 이들은 삶에서 자신들의 몸과 영혼을 쉬게 하기 위해 일주일에 하루가 필요할 뿐 그날이 어떤 날이며, 그날 쉬고 안 쉬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감신대 이원규 교수(종교사회학)는 〈기독교의 위기와 희망〉이란 책에서 주5일 근무제와 관련 “구약의 네 번 째 계명인 안식일에 대한 말씀(출 20:8~10)대로 안식일을 지키려면 주일에는 아무 일도 해서는 안된다”며 “엿새동안 일하고 제 칠일에는 쉬라는 말씀도 문자적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한편 십계명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하게 하는 〈데칼로그〉의 저자 김용규 씨는 “예수는 일찍이 율법주의를 비난하고 욕했다.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날 때 제자들이 배가 고파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을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거론하며 비난하자 예수는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않았으리라’(마 12:7)며 안식일주의를 꾸짖었다. 그러나 아직도 사람들은 자비보다 제사를, 신보다 우상을, 존재보다 존재물을 섬기길 즐겨하는 듯 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주일만의 크리스찬으론 안돼

그는 또 “역사적으로 보아도 율법주의 이전의 유대교 안식일은 그저 일하지 않는 날이 결코 아니며, 단념하거나 금욕하는 날은 더더욱 아니었다. 안식일은 곧 기쁨의 날이요, 풍요의 날이었다. 포도주와 좋은 음식을 나누며, 서로가 쉬면서 함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안식일의 결정적 요소”라면서 “무노동이란 안식일의 의미에서 실로 외형적이고 부차적인 것일 뿐 본질적인 것이 전혀 아니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말라는 뜻도 아니고, 금욕^금식하고 기도하라는 뜻은 더욱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설사 안식일에 쉬어도 그것이 다음날에 열중할 무한한 욕망을 위해서라면 그것은 안식일을 어기는 것이며, 반대로 안식일에 격한 노동을 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무한한 욕망을 위한 것이 아니고 구제사업처럼 오히려 우리의 존재를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연동교회 이성희 목사는 “주일예배에서 매일예배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주일예배를 고집하기 보다는 연동적으로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아침에 예배 드리는 교회가 복음전도를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변화하고 있는 이 시대 속에서, 주일의 개념을 어떻게 정립하고 활성화시켜 나가야 할지 한국교회는 명쾌한 해법을 제시해야할 시점이다. 더 이상 ‘신자가 빠져나가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좀더 자신감 있게 이 사회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체적으로 하루 하루의 삶이 모두 예배가 되도록, 선데이(sunday, 주일만의)크리스찬이 아닌, 에브리데이(everyday, 모든 날의) 크리스찬이 되도록 하기 위한 해법은 무엇인지 골몰해야 할 것이다.양승록 기자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