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타클라마칸 사막의 모래산들.


모처럼 알로펜은 젊은 날의 객기가 발동했다. 그는 오늘 이 시간까지 무려 30여 년 동안을 날마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 달려온 유랑인이다.

쉐키에서 머물면서 여기가 정착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도 있었으나 그는 또 여행길에 나섰다. 세상 끝날 때까지 여행을 해도 좋다는 마음이었으나 코초국 쿰바홀의 헌신과 아량으로 누리게 된 현재의 시간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늙었을까….

“스승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돌히 하시나요. 혹시 불편한 점이라도….”

“아니오. 거 무슨, 나 지금 너무나 좋은 환경에 취해 있어요. 헛허….”

“아, 그러신가요.”

쿰바홀은 알로펜의 좋은 환경이라는 말에 저절로 기분이 좋았다.

타클라마칸이 죽음의 사막이라지만 쿰바훌의 집은 드넓은 포도원 한 복판으로서 아침 이른 시간에 포도원을 한바퀴 도는데 두 시간이 걸린다. 미명에 집을 나서서 한 시간쯤 지나면 태양이 사막에서 솟아오르는 듯 힘차게 떠오른다.

박새들이 포도원 숲 속에서 조심스럽게 지저귄다. 5월의 포도밭은 푸르름을 뽐내면서 알로펜을 맞아주었다.

“쿰바홀 님, 청년 지망생들 중 달마승에 대한 향수를 가진 형제가 있던데 그를 어떻게 하면 좋겠소?”

“어떻게 하다니요. 스승님!?”

“그를 소림사로 돌려보내주는 것이 좋을 듯해서요.”

“글쎄요. 제가 그 사람 이태수를 아는데 불교도의 길을 원하는 것 같지 않게 보였습니다만 스승님 마음이 의심스러우시면 그를 직접 한번 만나시죠.”

“응, 그래야겠소.”

그때 안토니가 알로펜의 방으로 찾아왔다.

“주교님, 장안에서 떠난 소규모 상단이 사마르칸트로 간답니다. 말씀하신대로 사마르칸트 인력을 10여 명 부르시고, 마리아 교수님도 오시게 하는거죠.”

“그래야겠지.”

사마르칸트를 떠날 때 마리아와의 약속을 알로펜은 기억하고 있다. 자기는 교수가 아니라 알로펜의 제자라지 않던가. 그래, 그럼 제자로 받아야지. 마음에 결심은 되어 있으나 마음 한 구석에 ‘불안’이라는 불확실한 실체가 자리하고 있었다.

다마스커스에서 만난 마리아 교수는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으나 사마르칸트에서 눈물을 보일 때는 저 눈물이 무엇을 뜻할까 싶기도 했었다. 큰 일 하자고 나선 몸, 천하가 모두 나를 돕자 하여도 외로운 내게 제자로 곁에 있겠다는 마리아 교수를 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주교님,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세요.”

“아니야, 아니야. 또 무슨 의논할 일이 있나?”

“아, 아닙니다. 그런데, 이태수 형제 때문에 걱정하시는 것 같아서요.”

“쿰바홀이 그러던가?”

“네.”

“이태수 군이 달마 이야기를 했잖은가. 그런데 그때 그의 언행이 내게는 불확실하게 느껴졌거든.”

“저도 그렇습니다. 제가 그에게 한 번 물어볼까요? 마침, 중국어 공부문제로 그와 의논할 일도 있고 해서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하게.”

“네, 알겠습니다. 아 참, 하나만 더 말씀드릴께요. 집중공부 문제인데, 혹시 너무 다그치는 형식이 되지 않을런지요.”

“그래, 나도 그런 생각을 해봤지. 그러나 우리는 지금 강훈련을 필요로 해요. 왜냐하면 우리가 목표했던 당나라가 지금 격동기를 맞이했어요. 당나라 창업자의 아들 이세민이 그의 부친이 후계로 세운 형들을 살해하고, 실권을 쥐고 있는 시기예요. 더구나 달마 달마 하는데, 불교 세력이 당나라의 주요 종교세력이 될 듯한 예감이 있어요. 우리 기독교 또한 당나라 입국을 할 경우를 계산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 또한 바빠졌어요.”

“주교님, 주교님 답지 않네요. 하늘이 무너져도 끄떡 없을 것으로 믿고 있는 저로서는 의외입니다.”

“이 사람아! 당나라 입성이 코 앞으로 다가왔어요. 입국허락을 받으면 몸뚱이만 가지고 가는가?”

“…….”

안토니는 무슨 말로 답변을 해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물론 지금 당나라가 우리를 부르는 것은 아니지. 그러나 격변기에는 의외의 틈새가 열리는 법이야. 새로운 왕조가 들어설 경우 전 왕조와 다른 국책이 마련될 것이 틀림없지. 더구나 새로 들어선 중국의 왕조는 수나라를 이어받았으나 수나라가 제국을 형성한지 50여 년도 다 채우지 못했잖아. 수나라 이전의 중국은 한나라 멸망 후 300여 년 군웅할거기 였어요. 또는 왕조들이 수십 개로 쪼개졌던 분열기를 거쳤어요. 그러니 새 왕조가 당나라라고 하지요. 아마, 새로운 실력자 이세민은 대단한 영웅일거야. 그의 치세 초에 우리가 당나라 입국을 해야 돼. 그럴러면 서둘러야해요. 제자들도 단단히 길러서 실력자를 만들어야해. 무엇보다도 우리는 중국말을 잘 해야 하고, 아직 우리가 계획을 세우지도 못한 성경이나 기도서, 또는 교리와 역사서를 번역해야 하는데 우리는 아무런 준비가 없지 않은가.”

“아하, 주교님! 어찌 거기까지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정말 주교님은 보통 분이 아닙니다. 이제야 알았습니다. 왜 우리가 서둘러야 하는지를 말입니다.”

“자네가 알았다니 한시름 놓겠네.”

“네, 주교님. 성경 번역문제는 매우 중요하죠. 교본은 그리스어 성경이어야 하겠죠. 얄밉기는 하지만 로마교구 교리서와 역사서를 기준해야 하겠네요.”

“그건 좀 더 생각해 보자구.”

저녁시간 안토니가 이태수를 불러 별채 너머 포도나무 아래서 마주 앉았다.

“이태수 형제, 중국어 공부를 곧바로 시작해야 합니다. 준비를 해주세요.”

“네, 알고 있습니다. 저보다 실력있는 분들을 영입해야 합니다.”

“그런 분이 있나요?”

“네, 하지만 주교님이 나서야만 가능할 거예요.”

“왜, 그러는거죠.”

“그분들은 고창국의 주요 인물들입니다. 이곳 대학에 해당하는 학교의 교수님들입니다.”

“아, 그래요. 그럼 그 문제는 주교님과 상의할께요. 그리고 하나, 주교님이 이태수 형제의 신상문제를 걱정하고 계시거든요.”

“왜, 그러시죠. 제가 주교님의 제자 자격으로 부족해서 그러신가요?”

“글쎄, 그보다는 이태수 님이 혹시 불교와 기독교 사이에서 갈등하는 부분이 있을까봐서 그러시는 것 같더군요.”

“그래요. 혹시 달마의 교율법 이야기 때문일까요. 저는 친구들이 소림사에 몇 명 있기에 그것을 말했을 뿐입니다. 저는 지금 알로펜 주교님의 문하에서 기독교를 제대로 배워서 내 조국인 중국을 위해서 일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저는 아주 신뢰받는 제자가 될 것입니다.”

“아, 좋아요. 이 형제의 그 마음을 주교님께 전할께요. 그리고 앞서 말한 중국어 공부는 이태수 형제의 지도로 내일부터 당장 시작합시다.”

“네. 노력하겠습니다.”

안토니는 알로펜 주교의 사무실로 달려갔다.

“그래 잘왔네. 자네 오전 사마르칸트 행 카라반 편에 소식 전했지.”

“네, 유능한 인물 위주로 10명과 마리아 교수님도 함께 이곳으로 가능한한 빨리 오도록 했습니다.”

“뭐가 가능한한 말이야. 빨리 오고싶다고 해서 올 수 있는가.”

“그야 그렇죠. 그리고 오늘 저에게 해주신 말씀을 명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중국행 단순 여행자가 아닌데 저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네요.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아니야. 나야 책임자의 마음인지라 조금 더 생각이 앞서 간다고 봐야지.”

“아니예요. 조금 더가 아니라 주교님의 중국 정치사 이해부터가 저와는 너무 크게 달라요. 저는 멍청이입니다.”

“무슨 그런 자책을 하는가. 차츰 좋아질 것이야. 자네가 지닌 통찰력이나 예언자적인 발상을 누가 당해낼까. 내가 믿고 있네. 그러니 자책은 그만하고 앞으로의 일을 자주 의논하세.”

“감사합니다. 나의 하늘 같은 스승님이시여.”

안토니는 알로펜 앞에 머리숙여 크게 예를 갖추고 있었다. 다음날 알로펜은 ‘천불동’이라 이름하는 깊은산으로 올라갔다. 불교도들이 차지하고 있는 수도장이었다. 산계곡을 따라서 불상을 비치하는 토굴을 파고 불승들이 정좌를 하고 염불을 하거나, 주변 냇가를 오고가면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천불동이라 했으니 불탑 1천 개를 목표한다는 것이리라. 알로펜이 계곡을 따라서 산 깊은 곳으로 올라가면서 불상들을 대충 헤아려 보왔으나 2백여 곳의 동굴을 발견했을 뿐이다. 천불동의 목표는 아직 소원단계인 듯 했다.

알로펜은 아침 일찍 이 산에 들어와서 종일 이 골짜기, 저 골짜기를 찾아다니면서 ‘천불동’에 뒤지지 않을 조용한 기도굴을 생각하고 있었다. 천불동에 비하여 계곡물이 작기는 했으나 불제자들의 동굴과는 반대 방향으로 긴 동굴이 있었다. 그곳을 제자들이 자리잡고 기도하면서 때로는 밤을 거듭 지세우면서 영적 훈련을 하는 훈련장으로 삼게 할 심산이었다.

이 산 동굴에 수도장을 마련하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할 즈음, 알로펜 앞에 하얀 수염을 귀티나게 뽐내는 6척 장신의 노인이 그를 가로막듯이 서 있다. 온 얼굴에 미소를 가득 물고선 노인은 드레스형 복색까지 하얀모습이었다. 온통 하얗다. 웃는 이빨까지도.

알로펜은 갑작스런 노인의 등장에 주춤거렸으나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구도자이시군요. 도장을 찾고 있나보죠. 나는 코초국 국왕 국문태의 장형이오. 귀인은 누구신가요?”

“네, 저는 알로펜이라 하오. 기독교 선교단을 이끌고 중국을 향해 가는 길입니다.”
“오, 기독교. 귀한 이름이오. 반갑구려. 내가 한 번 초대하리이다. 아참, 지금 어디 계시온지요.”

“네, 우리들의 형제인 쿰바홀 님의 장원에서 머물고 있소이다.”

“아, 쿰바홀이라, 참으로 착한 인물이죠. 그럼, 내가 초청을 할터이니 한 번 찾아주시오.”

노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람처럼 사라져간다. 노인이 떠나간 자리에 청년 하나가 서있다. 그리고 그가 알로펜 가까이로 다가선다.

“알로펜이라 하셨죠. 기독교 선교사이고요.”

“그렇소만.”

“저기 저 쪽 산기슭에 아라비아에서 온 기독교 청년들 몇 사람이 살고 있어요.”

청년의 말에 알로펜은 깜짝 놀랐다.

“뭐요. 아라비아 기독교 청년들이라고. 그게 정말 입니까?”

“그럼요. 나와는 거의 날마다 만나지요.”

알로펜은 청년의 말을 들은 즉시 청년이 말해준 아라비아 청년들의 거처를 향해 가고 있었다.

“지금은 아무도 없어요. 그들은 한 달 정도의 여행길을 나선다고 내게 말하고 어제 떠났지요.”

알로펜은 가던 길을 멈추고 청년에게 다짐하듯이 물었다.

“분명히 기독교 사람이라고 하던가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기독교 말고 그쪽 지방에 다른 종교는 없잖아요. 아라비아에서 왔다기에 저는 기독교 사람들로 알고 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청년 조금 전에 코초국 국왕의 형님이라 하신 그 어른을 아십니까?”

“아, 그럼요. 그 어른은 국왕도 꼼짝 못하는 왕중의 왕입니다. 왕위를 사양하고 진리의 사도를 자칭하는 도인이시죠.”

알로펜은 숙소로 돌아와서 쿰바홀을 불렀다. 불교도들이 ‘천불동’이라고 호칭하는 저 너머 뒷산에 다녀온 이야기를 해주었다. 노인을 만난 이야기며, 아라비아 청년들이 와 있는데 기독교인들 것 같다는 말도 해주었다.

“네, 주교님. 그 산은 신들의 산입니다. 옛부터 구도자들이 모여들어 도를 성취하기 위하여 식음을 전폐하며 기도하거나, 40일이나 100일 동안 물만 마시며 기도하고 있어요. 그러다가 혼절하기는 다반사요, 죽어 시체로 그 산에 묻히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렇군요.”

알로펜이 기도의 산이라 하는 천불동을 다녀온 꼭 사흘 뒤 왕궁에서 초청장이 왔다. 국왕이 알로펜을 부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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