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타클라마칸 지역의 학생과 학부모.


“그렇습니다. 로마제국은 힘이 넘치죠. 그러나 그들은 서양에 있고, 이곳은 아시아의 세계입니다. 저는 선교사이기는 합니다만 앞으로 이곳 서역은 물론 중국이나 몽골까지도 찾아가서 먼저 배우는 자세를 가지려 합니다.”

알로펜의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국문태는 손바닥으로 자기 무릎을 치면서 옳소, 옳소를 연발했다.

“좋은 말씀, 그래 내 형님이 보는 눈이 다르셔. 주교님 여기 오래 계시면서 저부터 잘 가르쳐 주십시오.”

국문태는 자기 왕궁에 알로펜 주교의 집무실을 두고 국사에도 자문을 해달라고 했다.

알로펜은 처소로 돌아왔다. 오후 시간 강의도 직접 나서서 훈련생들을 향해 큰 꿈을 간직하라고 요구했다.

“여러분, 우리는 이곳 서역이라고 부르는 타클라마칸 사막의 성곽 국가들 몇 군데에 복음을 전하려 하지 않습니다. 아마 중국이 아시아의 중심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중국보다 저기 사마르칸트에서 북방 끝부분인 몽골까지 중앙아시아를 오히려 주목해야 합니다. 중국은 문명역사가 길고 지금으로부터 거의 삼천여 년 전부터 문명지대입니다. 그렇다면 중국은 경쟁이 심하고 정치적 변동 또한 많은 곳으로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학생들 중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이태수였다.

“저 이태수입니다. 주교님, 그럼 중국이 저희들 선교의 중심이 아닌가요?”

“아니야. 세계 모두가 선교의 중심이죠. 그러나 우리들의 아시아 선교는 중국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이곳 타클라마칸이나 중앙아시아와 북방 초원지대가 후방기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야.”

“아하, 알겠습니다. 중국에 우리 기독교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후방기지에서 지속적인 지원을 해야 하고, 당장은 선교하기가 쉽지 않을 중국을 천천히 가르쳐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래, 비슷하게 맞췄네.”

알로펜의 비슷하게 맞췄네, 소리에 강의실 수강생들 모두가 배꼽을 잡고 웃는다. 이태수는 웃지 않았다.

“미안하네. 비슷하다고 해서. 내가 충분히 설명을 못해서 그런 것이니 앞으로 좀 더 이야기를 나누세.”

알로펜은 국문태와의 대화를 떠올려 보았다. 알로펜은 중국이라는 나라를 경계해야 한다는 판단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중국은 쉽지 않다, 로마와는 또 다른 나라로 그는 생각해 왔다.

그리고 우리의 조상들이 초대교회부터 로마제국을 만났을 때, 로마는 우리 기독교에게 빚을 진 제국이었다. 그들은 기독교와 기독교 조상의 나라인 유다왕국을 점령한 지배자요, 예수 그리스도를 포함하여 사도들, 사도들의 제자들, 감독들, 그리고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을 학대하고 죽이는 일을 했었다.

3백여 년 가까운 세월동안 기독교가 로마제국과 싸워서 승리한 결과물이 로마제국의 기독교일 수 있다. 코초왕 국문태의 ‘기독교가 로마를 움직여서 중국 왕조에 영향력을 행사해달라’는 식의 표현은 그가 역사적 배경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고, 또 듣기에 따라서는 매우 불순한 정치적 표현이기도 하다. 만약 중국이 코초왕의 말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면 당장 요절을 내겠다고 덤빌 수 있을 것이다.

다음날 저녁 늦은 시간에 알로펜은 안토니를 불렀다.

“여보게. 우리가 가르치고 있는 젊은이들을 어떻게 생각하나?”

갑작스런 알로펜의 말에 안토니는 답변을 할 수 없었다. 무엇을 말하는지 알로펜의 의중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응, 그렇지. 학생들이 20명인데 내 생각에는 수업방식을 조금 바꿨으면 해서 말이야. 며칠 가르쳐보니 그들에게서 수준차가 조금씩 드러나서 그러네.”

“네, 저도 조금은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칫 서로간에 오해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네. 그 부분은 중국반, 중앙아시아반, 타클라마칸반으로 나누면 되지 않을까? 중국반은 좀 더 준비가 많이 된 사람으로 하고, 다음을 중앙아시아반의 순서로 교육을 시키면 어떨까?”

“그거 좋은 생각이시군요. 그런데 저들을 어떻게 가르칠까요.”

“우선, 중국반은 내가 지도하겠네.”

“아, 그렇게 하죠. 중국어는 다같이 공부할까요?”

“아니오, 중국어반도 때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리고 중국반은 내가 직접 지도할 터이니 안토니 자네는 쿰바홀의 도움을 받아서 나머지를 가르쳐보게. 아참, 사마르칸트 소식은 언제쯤 올까?”

“네, 내일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그런데 중국반은 어떻게 선발하시겠어요?”

“내가 점찍어 둔 이들이 몇 있네. 그리고 자네도 한 번 살펴보시게나.”

“네. 그런데 혹시 허탄이나 쿠처의 형제들 안부를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가까운 시일 안에 한 번 다녀와야 하지 않을까요?”

“글쎄, 한 번 다녀오려면 석달은 걸릴 터인데, 어찌한다….”

알로펜은 혼잣소리를 하고 있었다.

“주교님, 방법이 있을 듯 한데요?”

“그게 뭐지….”

“코초왕의 힘을 빌려보면 어떨까요?”

“어떻게 말인가?”

“코초국과 허탄국, 또 쿠차국은 타클라마칸 오아시스 국가들 중 비교적 국력이 큰 나라들입니다. 저들 간에는 각 나라들 차원에서 정보교환이 있을 것입니다. 이곳 나라들에는 군사 전령 등으로 사용하는 말이 있잖아요. 날아다니는 말이라고 하는거, 뭐냐? 옳지. 한혈마라고. 단번에 천리를 달린다는 말이죠. 국왕의 도움을 받으면 한 주일이면 왕복이 가능할 터이고, 그들이 현지에서 3일 정도 머문다고 계산하면 열흘 안에 소식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 그렇구먼. 내일 그것도 알아보아야 하겠구먼.”

다음날 오전 수업시간에 알로펜은 이태수와 공사부, 사마영을 각각 지명하면서 점심시간에 내 방으로 오라고 말했다. 오전 수업을 마친 이태수, 공사부, 사마영은 알로펜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알로펜 주교의 부름에 따라 오긴 했으나 그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치면서 주교님이 부르신 뜻을 너는 아느냐는 식이었다.

“뭐 들 그렇게 긴장하는가? 내가 그대들에게 몇가지 물어볼 일이 있어서 불렀어. 편히들 앉아요.”

“아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소생의 판단으로는 주교님께서 무엇인가 고민이 있으시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뭐, 고민!”

“이태수 군은 역시 생각이 깊어요. 그래, 고민이라면 고민이죠. 그럼, 내 고민까지 태수 군이 알아맞춰 보려는가?”

“아, 아닙니다. 사양하겠습니다.”

“주교님, 제가 맞춰보지요.”

사마영이었다.

“그래, 그럼 자네가 말해보게.”

사마영은 빙긋이 웃으면서 그의 곁에 있는 이태수와 공사부를 한 번씩 쳐다본다.

“어서 말해봐요.”

“네, 주교님. 주교님은 주교님의 고민을 저희 셋과 함께 나누고 싶으신 것입니다.”

사마영의 말을 들은 알로펜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사마영의 지혜로운 말솜씨에 이태수나 공사부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 내 고민을 맞췄네. 자네들은 중국 출신들이네. 중국이라는 나라는 세계 일등국이야. 문화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이지. 지금 우리는 아주 머지 않은 날 중국선교에 나서게 될거야. 그럼, 그때를 철저하게 대비하기 위하여 자네들 셋을 부른 것이네. 그리고 또 하나, 자네들 셋은 각각 한 사람씩을 내게 추천하게. 그리고, 또하나 자네들은 내가 직접 가르치고, 경우에 따라서는 여행을 하면서 중국선교 훈련원을 하겠네. 내게 질문 있으면 지금 말하게.”

세 친구는 잠시동안 말없이 앉아있다가 일어선다. 공사부가 일어선 채 한마디 했다.

“주교님, 중국과 로마를 비교하여 한 말씀 해주시죠.”

“그래, 중국은 로마 보다 더 지능적이고 사상적 깊이가 심오해서 로마식 기독교 방법으로는 선교가 쉽지 않아요. 이는 두고 두고 연구하면서 접근해야 할거야.”

“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공사부의 말에 이태수와 사마영이 같이 두 손을 가슴께로 모으고 목례를 한다.

“중국 공부는 두고두고 해야 하네. 십년은 넉넉하게 말이지.”

“네, 네, 네.”

다음날 오후, 안토니가 알로펜에게 다가와서 조용히 말했다.

“허탄이나 쿠처에 각각 공무 전달망이 있답니다. 십여 일이면 왕래가 가능하답니다. 그러나 빨라야 앞으로 한 달 후에 허탄국 군사전령이 간다는군요.”

“그래, 그럼 되었네.”

알로펜은 때가 되면 한 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스데반과 세비야가 잘하고 있겠지. 로마파 주교 어거스틴이 이끄는 허탄 로마파 젊은이들이 혹시 시비를 걸어오면 스데반이나 세비야가 얼마나 잘 받아넘길까? 조심스럽고 두렵기까지 했다. 그날 허탄에 처음 당도했을 때 알로펜을 부르던 그 오만, 어거스틴 주교가 수습했다라고는 하나 그 사람 역시 많이 너그럽지는 않을 것이다.

“안토니, 수강생들 공부는 어떤가?”

“별 동요가 없습니다. 주교님께서 불러낸 사람들은 순수 중국 사람이라 별도로 할 일이 있으신가 하는 눈치들이었습니다. 주교님 안계시는 시간 동안 저희는 사마르칸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

“네, 머지않아 사마르칸트에서 잘 훈련된 선교사들이 올 것이며, 미모의 여자 교수님이 오시는데 그 분이 우리들서 코초국 선교대학의 교장이 될 것이라고 했더니 모두들 좋아하더군요.”

“그래, 자네는 약간 짓궂은 데가 있어. 여자 교수님이면 됐지 ‘미모의’란 말이 왜 필요해….”

“글쎄요.”

안토니는 자기 모친을 말할 때처럼 마리아에 대해서도 알로펜과 연결지어 보려는 객기를 부린다. 그의 모친 사라가 알로펜의 부친과 가정을 꾸민 뒤로는 알로펜에게 깍듯이 형님으로 대했고, 더 나아가서 지도자로 대접하고 있으나, 마리아 교수를 말할 때 은근히 알로펜의 감정의 흐름을 살피고 있었다. 그렇다면 알로펜이 오히려 안토니의 심리전술에 휘말리는 듯했다.

무심코 지나쳐 버릴걸 괜히 말했구나, 알로펜은 생각이 스산했다. 마리아 교수와 선교동행을 해야 하지만 마리아가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도 걱정되었다.

“주교님! 저 쿰바홀 입니다.”

쿰바홀이 큰소리로 알로펜을 불렀다.

“뭐, 좋은 일이 있으신가 보죠?”

안토니가 먼저 문 밖으로 나가서 쿰바홀을 알로펜의 사무실로 안내했다.

“네, 주교님! 천불동 아라비아 출신 기독교 신자들이 왔답니다. 그런데요…. 주교님 제가 한 말을 듣고 놀라지 마세요.”

“뭔데 그래요. 쿰바홀.”

안토니가 눈짓으로 쿰바홀더러 경망스럽다는 듯한 표시를 했다. 그러자 쿰바홀이 주춤거린다.

“무슨 좋을 일이 있는가요?”

알로펜이 쿰바홀을 향해 자리를 고쳐 앉았다.

“네, 주교님! 아라비아 기독교인들이 말입니다. 저…, 놀라지 마세요.”

쿰바홀은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숨을 고르면서도 말을 잇지 않았다.

“허어, 숨넘어 가겠소. 나 들을 준비 되어 있으니 아무런 말이라도 편히 하시오.”

알로펜이 웃어보이면서 쿰바홀의 감정을 누그러뜨리려 했다.

쿰바홀은 안토니와 알로펜을 번갈아 보면서 얼굴빛이 어두워진다.

“쿰바홀, 왜그래요?”

“아닙니다. 잠깐만요.”

안토니가 어깨를 툭 치자, 그는 잠시 더 울상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주교님, 큰일입니다. 천불동 아라비아 청년들은 무함마드 교주의 제자들이랍니다.”

“뭐요!”

알로펜과 안토니가 동시에 ‘뭐요’를 외친다. 안토니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알로펜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여보시오 쿰바홀! 그들을 지금 만나러 가볼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곧 주교님을 뵈러 온다고 했습니다.”

쿰바홀은 아라비아 청년들이 금방이라도 찾아오기라도 해서일까, 문 밖을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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