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소리'라는 이름이 독자들에게 어떤 느낌을 줄까? 내가 `들소리'를 복합어로 제조한 지가 47년 전이다. 1959년 12월 어느 날 밤 이사야 11장을 읽다가 6절에서 8절까지의 말씀이 나를 사로잡았다. `야, 희한하구나. 이것들이 서로를 보호하고 지켜준다고?' 나는 그 말씀에서 이런 해석을 내렸다. `모든 생명 가진 것들이 자기 생명의 날까지 평안하게 살자는 것'이라고, 이 명령을 하나님이 이 말씀을 깨닫는 나에게 주셨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 들판에서 서로 기대고 부대끼며 사는 것들의 둥지를 생각하는 `들소리'가 되겠다고 다짐했었다.작지 않은 세월, 들소리는 30년차를 목전에 두고 있다. 처음 시작 날부터 1면에 `들소리 연습'이라는 이름의 칼럼을 `無然'의 이름으로 써 왔다. 그리고, 이제 30여 년 해보았고, 소명을 받은 1959년까지를 계산하면 반 백년이 되어가는데 `~연습'을 떼어내고 이제는 본마당으로 가려 한다.그간 연습생의 이름으로 천하의 독자와 회원들에게 나아갔으니 감사하면서도 송구한 마음이 있다.이제부터는 들소리 같은 들소리를 본격적으로 하겠다. 하다가 모가지가 부러질 수도 있겠고, 사단의 모가지를 꺾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들소리'는 굉장하고 거창한 소리가 아니다. 안방소리, 자기 이기심으로 가득한 소리, 자기 자랑들 뿐인 세상에서 누가 들어도 나의 말일 수 있거나 이기주의자들과는 상관이 없는 하늘 들소리일 수 있다. `하늘'이라는 말에 신경 쓸 것 없다. 그게 거북하면 빈들, 빈공간, 저 사막의 하늘, 시베리아 드넓은 벌판 같은 들에 불어대는 바람소리로 생각해도 된다.내게 주신 말을 하리라. 나를 부르실 때 부르신 이가 분명히 말씀 하셨다. 그때 그 분은 내 교회를 바로 잡으라 하셨다. 그 꿈 내 47년 전 현재의 시간이다. 언제나 내게는 1959년, 즉 `50년대식'이다. 왜냐하면 그 때 그 말씀 들을 때 나는 곧 죽었으니까. 죽지 않고서야 어찌 말씀을 붙잡겠는가.나는 50년대식, 공부도 50년대식, 의식주도 50년대식, 사고방식도 50년대식, 그때 내 인생은 끝났으니까, 진보가 없다. 함께 일하는 이들이 목사님 제발 50년대식을 버릴 수 없느냐지만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되는가.이제 내 인생 길어야 수삼십년, 짧으면 수삼년일 수도 있다. 정말 이제는 들소리 하겠다. 한국교회의 소유와 재산일 수도 있는 들소리가 제대로 된 소리를 하려고 한다.어줍잖은 소리. 폼잡다가 웃기고 말수도 있겠지…. 이 돌들이 소리 지르는 시간이 가깝기에 소리 한 번 제대로 질러보겠다. 우선 한국교회 신자들을 더 이상 `사생아'나 이 광야의 목자 없는 양떼들 만들 수 없으니 `교적부 갖기운동'을 호소하겠다. `대형교회 운동 좌절시키기 운동'을 제창하겠다. 목회자 공부하기와 사(私, 개인)교회 운동 극복하기부터 시작하여 한국교회의 고질적이고 더러운 부분을 청소하자고 호소하고 단계별 개혁운동과 미완(未完)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완성까지 제안하겠다.(無然)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