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지, 팔레스타인을 가다 ①]



   이스라엘이 쳐놓은 분리장벽과 오늘의 팔레스타인 현재.
   이 장벽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통행증을 갖고 줄을 서서 통과한다.


《싣는 순서》

  ① 팔레스타인의 눈물과 축복
   ② 예수의 발자취와 겹치는 팔레스타인 길
   ③ 팔레스타인과 화해, 이슬람과의 사귐


이스라엘을 상대로 보이콧 하는 세계의 단체들
아이들 위한 대안학교, 유대인 의식전환 절실



2013년 6월 25일 현재, 팔레스타인은 1993년 9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오슬로 협정체결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설립으로 양측의 존재가 공식으로 인정된다.

계속되는 정치적 긴장 가운데서도 팔레스타인은 2011년 10월 유네스코가 팔레스타인을 정회원 국으로 인정했고, 2012년 11월 29일 유엔총회는 팔레스타인을 비회원 옵저버 국가로 승격했다.

팔레스타인의 정치환경이 단계적으로 좋아질 것으로 판단한 필자는 공항에서 1시간 30분 이상을 달려 베들레헴 외곽지역인 숙소에 짐을 풀었다. 2013년 6월 25일.

그러나 6월 26일 오전부터 진행되는 일정에서는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우선 BDS, 곧 이스라엘을 상대로 보이콧, 투자, 제제 캠페인을 벌이는 세계적인 운동단체에서 브리핑을 듣는 순간부터 평소 가지고 있던 내 예상이 빗나가고 있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문제는 1947년 11월 유엔총회가 유대지구(이스라엘)와 아랍지구(팔레스타인)로 각기 영토분할을 했고, 1948년 5월 이스라엘이 독립선언, 이에 불복한 아랍권은 제1차 중동전쟁을 일으켰다. 제2차, 제3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이 유리한 조건을 확보했다는 선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이제는 무력전쟁이 아니라 정치적 전쟁이라고 보아왔으나 현실은 달랐다.

방문지역 단체들 거의 다수가 팔레스타인 크리스찬들로 이루어졌으나 이스라엘과의 저항 및 투쟁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국제법상 억압을 받는 자가 폭력저항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여기서 크리스찬의 한계를 느꼈다. 인도의 독립과 해방을 위한 미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투쟁을 떠올렸다.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크리스찬의 입장에서 폭력과 비폭력의 대치를 보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했다.

BDS에이어서 ‘팔레스타인 난민거주권 지원센터’를 방문하여 책임자로부터 난민현황에 대한 브리핑을 들었다. 난민지원센터에서도 BDS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이스라엘을 착취자, 정복자, 남의 땅에 자리잡은 이방인, 불법자, 최소한 1967년 전쟁 이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팔레스타인 요구였다. 그들의 속마음은 1947년 이전으로 역사를 되돌렸으면 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흘러간 역사를 어찌 되돌릴 수 있을까?

난민지원센터에 도착하기 전의 ‘난민촌’ 아이다(Aida)  지역의 분위기를 떠올렸다. 난민촌은 정착민이 되지 못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일정한 구획 안에서 보호받는 곳이다. 그곳은 수용소나 다를바 없었다. 청소년들이 방문객들을 말 없이 따르기도 하고, 무엇인가를 말해주려 하기도 했다. 분노는 아닌 눈으로 단순한 방문객들일 뿐인 우리를 따라다니다가 그들에게서 멀어지는 우리를 말없이 지켜본다.

팡팡팡팡!….

수없이 쏘아올리는 폭죽, 그들의 또다른 친구들이 석별의 뜻인지, 환영의 뜻인지, 아니면 너희 놈들도 이스라엘과 한통속이지… 하는 것인지,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바로 우리의 등 뒤를 겨냥한 듯한 폭죽을 쏘아올린다. 무자비한 전투장에서 쏟아지는 폭음 같은 소리였다. 바로 등 뒤에서 쏘아대는 총소리만 같아서 식은땀이 난다.

이스라엘은 매우 교활한 정복자. 국제법을 위반한 범죄집단이라고 아우성친다. 팔레스타인 지역 건물 옥상 마다 검은 물탱크가 있다. 물의 공급에서도 이스라엘의 20% 정도를 받는다. 팔레스타인은 물을 아껴 써야 한다. 아프리카만큼.

아동보호센터. 지도자인 총무 리팟(Rifat Odeh Kassis)은 팔레스타인 크리스찬 그룹의 대표적 인물이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돌을 던지다가 붙잡혀서 쿠타를 당하고, 구금을 당하고, 보석절차를 밟기도 하고, 대책이 없는 아이들은 장기 구속을 피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초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 무덤. 두 군인이 지키고 있다.


미사일을 쏘아대는 이스라엘군에게 돌맹이 몇 개 던지는 것은 사람을 죽이거나 시설물을 파기하려는 것보다는 인간적인 분노의 표출이다. 어린아이들이 볼 때, 그들의 부모가 보안상 이유가 있다면서 일터에 나갈 수도 없고, 지척이 예루살렘인데 그곳에 있는 친척의 장례식에 가고자 하는대도 통행증이 없다고 보내주지도 않는다. 또, 너무 가난하여 학교에도 못간다. 여기에서 분노가 폭발한다.

리팟의 발언을 듣고 내가 질문을 했다.

“어린아이들은 가정에서 보호할 수는 없소? 그것도 아니면 민간조직이 보호하는 방법은? 그게 아니면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돌맹이에서 저 옛날 다윗이 소년시절 골리앗을 돌맹이로 압도했듯이 다윗과 같은 용맹스런 아이들로 길러볼 수는 없소?”

나의 이 질문에 답변을 하던 리팟의 눈가에 잠시 눈물이 서린다. 그는 내 곁에 앉아 있었는데, 내 팔뚝을 가볍게 두드리며, 당신은 어찌 내 마음, 또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모르면서 최선을 요구하느냐는 것 같았다.

아동보호센터에서 브리핑을 듣고, 현안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있는 중에 내 마음 속에 간절한 욕구가 떠올랐다.

한편으로는 금번 여행 중 10여 개 단체방문 중 4번째 자리가 아동보호센터인데, 내 마음 속 한 구석에 팔레스타인이 감사하는 마음,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소원, 그리고 기도의 결과, 곧 응답에 대한 확신이 부족함을 느꼈다. 그리고, 저들을 돕고 싶어진다.

첫째는 현재 세계의 3,000개 NGO가 팔레스타인을 돕고 있으며 연간 10조 US 달러가 쏟아부어진다는데 비록 저들의 현안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는 해도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저들과 사귀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일으켜 보고 싶다.

둘째는 대안이 필요하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을 위해서 유아원, 유치원을 개설해 보는 것이다. 대안학교를 설립하여 저들의 의식을 일깨우고 자생력을 확보해 주고 싶다.

셋째는 유대인들의 의식을 바꾸어준다. 시온주의자들이 여호수아의 정복사업을 하고 있으나 그 방법이 낡았다. 3천 3백여 년 전 모세의 바통을 받아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족들을 몰아내고, 그들의 12지파에게 땅을 분배하던 방식으로 성경을 해석하지 말도록 꾸짖어 주고 싶다.

여호수아 시대의 가나안 7족속과 오늘의 팔레스타인을 동일시 한다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여호수아 앞에 있는 가나안 족들과 오늘의 팔레스타인은 다르다. 여호수아 시대는 구원사의 예표(상징)의 시대이고, 오늘의 이스라엘 시대는 메시아 예수의 시대로서 팔레스타인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자기 땅을 가지고 생존권을 주장할 수 있다고 가르침을 주고 싶다.



  팔레스타인 아동보호단체 총무인 리팟(왼쪽)과 필자.


분리장벽으로 간다. 곳곳이 분리장벽이다. 공중촬영 그림을 보면 가관이다. 이게 무슨 나라인가? 팔레스타인의 생존권 제한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스스로를 묶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여행 이틀째 마무리를 하면서 민족시인 다위쉬(Mahmoud Darwish)의 무덤과 그 유명한 PLO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의 무덤을 동시에 찾았다.

다위쉬의 박물관을 본다. 우뚝 솟은 동산, 라말라의 도시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그의 무덤과 박물관이 있었다. 이만한 여유가 팔레스타인에게 있으니 팔레스타인은 눈물을 거둘 날이 곧 올 것 같은 예감이 있다. 그리고 아라파트의 무덤, 두 사람의 군인이 지키고 서 있는 아라파트의 현장.

1960년대부터 그의 활동을 지켜보아 왔던 나는 참배를 마치고, 그의 무덤에 키스를 하면서 말했다.

“당신의 팔레스타인은 곧 독립국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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