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지, 팔레스타인을 가다 ②]



헤브론 한국팔레스타인센터는 많은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을 수련시킨다. 종교를 뛰어넘어 문화의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한국팔레스타인센터 앞에서 여행자와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사진. 오른쪽 사진은 헤브론 시내가 바라보이는 팔레스타인 센터광장.


《싣는 순서》

   ① 팔레스타인의 눈물과 축복
   ② 예수의 발자취와 겹치는 팔레스타인 길
   ③ 팔레스타인과 화해, 이슬람과의 사귐


이스라엘 군인 향해 돌팔매질…아이들의 미래 평화 가능할까?
민박하며 나누는 이야기 “무슬림들, 크리스찬 가정 부러워 한다”


지난  6월 25일부터 7월 9일까지 서울 YMCA 대안선교팀(팀장 이윤희 국장)과 함께 팔레스타인 대안선교여행을 했다. 대안선교라 하면 단순한 성지방문이나 선교지 방문이 아니라, 절박한 팔레스타인의 고난이 마치 일제 치하의 한국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판단 아래 한국교회가 고난의 멍에를 함께 매는 것이 옳다고 보았고, 더구나 현재도 남북이 분단된 상황자체도 유사한 고난에 처한 동병상련을 느끼게 한다고 보았다.

과연 한국교회가 무엇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면서 여행은 진행되었다.

앞서 말한대로 첫 번째 방문단체인 BDS는 이스라엘 국가를 상대로 보이콧 등 이스라엘 정책에 압박을 가하는 일로서 비폭력성 저항을 하되, 경우에 따라서는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한 더 강렬한 여론에 호소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남아공의 저항운동처럼. 아직은 이스라엘의 변화가 없으나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었다. 책임자 31세의 비산 미트리 씨는 만만치 않은 여걸이었다.



             올리브나무 주변에 둘러앉은 YMCA 대안선교단.


팔레스타인난민센터(BADIL)의 전자공학도 출신 루브나 쇼말리 소장 역시 이스라엘은 1947년 등장초부터 팔레스타인에게는 잘못된 출발이었음을 숨기지 않았다.

다음날 라말라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팔레스타인 청소년 보호단체(DCL)의 책임자인 리팟(목사)은 눈물과 열정으로 팔레스타인 아이들을 지키고 있었다.

중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을 향하여 돌맹이를 던지는 팔레스타인 아이들,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잡히면 구타를 당하고, 구속을 당한다. 구속 당한 아이들의 보석을 위한 절차, 재판과정의 변호, 구금생활을 하는 동안과 그 후의 절차 등 그들이 돌봐야 할 많은 일들이 있다. 가정과 사회 안전망을 통하여 보호하려 해도 힘이 미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린이들의 돌팔매는 그들 부모들이 살고 있는 척박한 환경에 대한 저항이 대부분이다. 이스라엘은 ‘보안’이라는 이름으로 팔레스타인의 수족을 묶어버리는 수법을 사용한다. ] 일단 그들의 조건에 맞지 않으면 출입증 발급을 하지 않는다. 지척의 거리일 수 있는 예루살렘에서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을 가려해도 베들레헴의 가족이 갈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라말라의 법률지원센터에 가보아도 힘이 없다. 자국민을 도울 수 있는 힘이 없다. 이스라엘의 강제력은 팔레스타인의 최선의 노력도 무력화시킨다.

야세르 이브라임 박사는 경제학자로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제구조를 말한다. 독립국가의 지위를 확보하지 못한 팔레스타인은 생산제품을 수출하고, 과일을 판매하려 해도 모두 이스라엘의 이름으로만 가능하다. 심지어 유엔이나, EU의 지원이 있다 해도 그것 또한 이스라엘의 금고를 통해서 받아낼 수 있다.

국제여론은 인권조직과 다양한 힘의 연대를 통하여 세력을 만들어보려 하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헤브론 YMCA 재활센터의 활동은 물론 헤브론에 있는 코리아 팔레스타인 센터의 활동과 종교행위를 제외한 문화운동을 통한 흉허물 없는 친교의 모습을 보여주는 남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다.

올리브 심기운동의 평화운동단체인 JAI의 매니저인 니달 아부줄르프는 점령지 거부를 통한 평화적 저항의 한 모습을 우리에게 소개했다.

JAI가 주도하는 올리브 심기운동은 이스라엘의 토지법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들이 점유한 토지 중에 놀고 있는 땅은 가차없이 압류한다. 베들레헴 외곽 서안지구로 연결되는 지점 돌밭으로 우리는 갔다. 어루만져 보았다.

어린 올리브 나무들은 이곳뿐 아니라 헤브론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내 때아닌 올리브밭(농장)이 들어서고 있다. 지금 현재까지 1만 2천여 명의 세계인들이 찾아와서 9만 그루 정도를 심었다.

3대째 가문의 영토를 지켜가는 나사르 다헤르 씨의 가정을 방문했다. 할아버지 때부터 살아온 터전이다. 온갖 방해를 무릅쓰고 살아남기 전략에 몰두했다. 방화, 파괴, 예배 훼방 등까지도 감수하며 조상의 땅을 지킨다. 어머니와 숙부를 잃었으나, 12년 전부터는 세계의 크고 작은 NGO 친구들이 3개월 비자기간 동안 함께 일하고 나무심고, 집을 고치고, 크게는 수리를 못하고 내부의 어렵고 불편한 부분만 고친다.


 
캠프촌 열방의 터전(tent nations) 대표 다헤르가 차를 따르고 있다.


17명의 가족이 빈들의 집에서 농토와 농장, 그리고 가족을 지킨다. 예수 구세주로 오실 때 그때 그 들판의 목동들처럼. 겨울에는 일부 가족이 베들레헴으로 가서 생활한다. 그러나 또 일부 가족은  캠프촌 열방의 터전(tent nations)을 지켜야 한다. 만약 집을 비우고 일정기간 농경지를 비우면 여지없이 이스라엘 정부가 토지를 수용해 간다.

그는 100여 년 전 그의 조부가 물려준 삶의 터전을 지켜낼 뿐 아니라 베들레헴 남쪽을 지켜야 하는 tent nations의 대표이다. 이스라엘과 대결하는 장수가 되었다.
세계인의 양심을 대표하는 양심들, NGO의 두 눈동자는 이스라엘의 횡포를 어느 만큼은 감시할 수 있다.

마들렌에게 듣는 이야기. 여행자인 우리가 계획단계에서부터 주민들과 어울리고 싶은 계획은 이틀 밤 두 가정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여행과정이 생각보다 많이 피곤했다. 여행의 단순 일정의 피곤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로 말미암은 고통이 예상 밖으로 심했고, 또 팔레스타인의 대응 또한 그들의 모습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차이가 있을 뿐 정신과 신앙의 기준으로 볼 때 유사하다는 점 때문이다.
우리는 마들렌의 집에서 숙박 전날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그들의 가정사와 함께 팔레스타인의 슬픔에 대해서 들었다.

다음 날 저녁은 그녀의 세 아들 중 미국에서 살고 있는 두 아들 말고, 낮에 예루살렘에 나가서 일하는 큰아들과 며느리, 두 손자와 손녀 하나까지 모두 모인 가정에서 늦게까지 대화를 나누었다.

여러 이야기 중, 내게 관심이 더 많은 부분인 이슬람 사람들과의 관계를 물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크리스찬들의 갈등 관계에 대해서, 팔레스타인의 동족인 무슬림들은 어떤 행동을 하는가’라고 물었다. 크리스찬이 중심이 되어 이스라엘의 강압에 대한 저항과 투쟁을 할 때 무슬림이 특별한 행동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조용히 협조자의 위치에 서려고 한다고 했다.

그럼 일상 생활에서 무슬림과 팔레스타인 크리스찬의 관계는 어떠냐고 마들렌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이에 대하여 마들렌은 무슬림 가정은 우리 크리스찬 가정을 부러워 한다고 했다.

왜 그럴까?

이렇게 묻자, 마들렌은 ‘자기 견해라면서 가정의 평화가 비교되는 것 아닐까’라고 대답했다. 무슬림 가족은 일부 다처이기에 아무래도 단란하다고 볼 수 없다. 이에 비해 크리스찬의 가정은 그들에 비해 단순하고, 또 정갈해 보이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

대화는 깊어 밤도 깊어갔다. 아무래도 호텔보다는 가정집이라 낯설고 조심스러웠는데 새벽 3시 쯤에 마들렌의 소리도 나는 것 같고, 안방 거실에서 사람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우리는 5시 체크포인트 NO. 300으로 체험을 떠나야 하기에 4시에 몸을 씻기 위하여 일어났다. 밖에 나가보니 마들렌의 큰아들은 4시에 예루살렘으로 일하러 떠났다. 그는 건축회사의 토목공이었다. 하루 1만 5천명 이상이 체크포인트에서 신분조회를 하고 일하러 간다.



              민박집 마들렌집 식구들과 즐거운 시간.


조금 늦게 나온 일꾼들이 예루살렘 가는 문과 오는 문 사이에 개구멍을 만들어 둔 것이 있었다. 철주로 만든 것이지만 출구 옆에 서너개가 있다. 그곳으로 들어와서 새치기를 한다. 출구 지붕으로도 개구멍이 있어 그곳을 뚫고 하강하는 일군들도 있었다. 참으로 힘든 삶이다. 21세기 문명의 선진을 자부하는 이스라엘은 왜 이토록 비문명적 방법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옥죄어 맬까?

그들의 땅, 모세와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계시로 허락받은 약속의 땅이기 때문일까? 이제 역사는 바뀌어 약속, 하나님과의 계약을 맺은 메시아의 백성 모두가 살고 있고, 살아가야 할 지구 전체가 약속의 땅이 되었는데, 이같은 시대에 저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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