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제2기의 과제 ⑦

재세례파는 기독교 혁명군 ②

기독교의 가치 변경이다. 세속 속에서 여러 종교들 중 하나인가? 아니면 유일한 종교인가? 이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 무대 위의 등장기에서 구분지어져야 했다.

예수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사람 모습이시다. 이는 생각하기에 따라서 매우 난해하다. 그래서 이를 표현하는 기독교 신학은 역사 과정에서 절반쯤 성공했다고 표현할 수도 있고, 그 반대로가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면 하나님이시지 그가 어떻게 사람일 수 있느냐, 혹시 하나님이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났다 해도 그 모습은 가상적 현실, 곧 환상일 뿐이라면서 가현설(假現說)이라는 철학적 규정을 하기도 했고,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예수는 예수라는 “신인 합일”이나 “신인 복합”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에비온 파의 등장으로 예수는 과연 누구인가 하는 혼선과 의문에 싸이는 사회로 기독교 역사는 진행되고 있었다. 이때가 2세기 중반기 이다.

그러면 예수께서 활동하던 시대는 어떠했을까?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예고하시던 때(마 16:13~16)에 세상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그리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예수께서 직접 매우 심각한 질문을 세상 사람들에게와 제자들에게 하셨다.

그때 제자들은 당시 유대인들의 평을 그대로 말했다.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대답했다. 제자들의 답변을 듣고 곧바로 예수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다.

그때 베드로가 성큼 나서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답변했다. 제자들과 예수가 “예수는 누구냐?”하는 본론을 다루기는 했으나 그때 그들은 추상적 발언을 주고 받으면서 다음 시간으로 건너갔었다.

그리고, 요한복음의 때에는 천재성을 가진 요한이라 이름하는 제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신학적으로 정리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보류해 두고, 교회사의 시간 속으로 가자.

2세기 중엽인 AD 150년 경 마르시온을 중심한 반(反) 정통적인 신앙, 3세기 말부터 제1차 니케아 회의(AD 325~)를 소집하게 만들었던 강력한 반(反) 전통의 아리우스 등의 이단자들이 기독교의  중심 축을 흔들어 대면서 기독교는 카타콤 시대에서 로마제국 시대로 전환해 갔다.

그리고 로마제국(AD 313~799)과 신성로마 제국(AD 1200~1309)의 전성기를 보내면서 기독교는 교회권과 황제권(지상권) 사이의 각축과 우위 경쟁 속에 피가 뛰는 투쟁을 했었다.

이 과정을 생각 속에 담고서 우리는 루터와 칼빈으로 중심을 이루는 종교개혁 제1기와 재세례파 시대를 종교개혁 제2기로 보는 역사 분류를 하게 된다.

다시 한 번 말하면 루터와 칼빈을 중심한 교리론 또는 기독론에 있어서는 제1기와 제2기의 개혁자들 사상이 대체로 일치하지만 교회론 또는 교회 제도론에 있어서는 제1기와 제2기 개혁자들의 차이점은 크다.

제1기 종교개혁의 맹주들인 루터나 쯔빙글리, 후일 뛰어 든 칼빈과 재세례파의 거리는 서로 용납할 수 없는 곳까지 벌어져 있었다.

우선 세례에 있어서 재세례파는 유아세례를 거부했다. 세례 집례자, 곧 성례 집전자는 별도로 두고 그들을 성직자로 인정하는 제도를 재세례파에서는 거부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상호 이해와 타협점은 깨지고 말았다. 재세례파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 죽음의 제단 절차를 밟은 모든 신자는 한 형제자매로서 그들에게는 어떤 경우도 신분과 제도 상의 차별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재세례파는 주정부나 시 정부에의 종속도 거부했다. 그들은 로마 가톨릭을 세속 정부와 동일하게 보지는 않았으나 제도적으로 엄밀하게 볼 때 로마교회를 교회와 세속 권력의 융합으로 보았다.

가톨릭의 속박에서 벗어난 프로테스탄트나 개혁교회는 세속 권력에서 완전 자유를 선택하고, 성직자라는 교회의 계급도 권력의 요소로 보았기에 세속 정부와 교회 성직권을 또 세속적 가치로 보면서 이들 양자 모두를 거부했다.

이로 말미암아 제세례파는 자칫 무정부 상황으로 몰리게 되어 있었다. 그들은 보호자를 잃어버린 미아처럼, 수리매 골짜기의 비둘기들처럼 그들 스스로는 보호 장치가 전혀 없었다. 더구나 그들은 비폭력을 대원칙으로 하였다.

그들은 복잡하고 탐욕스러운 세속 국가의 한복판에 내던져진 가엾은 산양 떼들 같다고나 할까. 총칼을 들었거나 인간이 행사할 수 있는 모든 폭력이 가능한 16세기 종교개혁자들 앞에서 저들 재세례파는 부지깽이 하나 들지 않았고, 또 자기들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한 아무런 장치도 없었다.

그들 재세례파는 폭력과 비폭력 사이에서도 겟세마네 교훈의 원칙을 따랐다. 겟세마네 기도시간에 로마 군사와 대제사장이 보낸 예수 체포조가 예수와 마주쳤을 때, 베드로가 단검으로 대제사장 집 하인 말고의 귀를 자른 일이 있었다.

그때 예수는 땅바닥에 굴러떨어진 말고의 귓바퀴를 제자리에 붙여주시며 베드로에게 “칼을 거두어라 칼을 쓰는 자 칼로 망하느니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베드로 뿐 아니라 기독교와 인류에게 주신 만세의 교훈이었다. 이 교훈을 재세례파는 지켜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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