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위기 속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본래의 자세 회복해야

 
▲ 부활절은 성탄절과 함께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절기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부활의 계절은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스스로 연합하게 하는 절기가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교회가 현재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많은 지탄을 받고 있는데, 이런 속에서 부활은 새로운 출발을 만들어가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부활절만이 부활이 아니라 한국교회와 사회가 어둠(어려움)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데 부활을 통해 새롭게 출발하는, 교회가 잃어버린 영광을 회복하는 불씨가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연합은 하나님이 특별히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연합하고 예배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에게 주어진 사명이고 책임이며 의무라 여기고 모여야 합니다. 지역마다 이웃의 교회와 연합해 함께 예배할 수 있으면 합니다. 부활은 교회가 함께 연합하는 정신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기회입니다. 계속해서 연합을 만들어가는 절기로서의 부활절이 되어야 합니다.

▲ 십자가와 부활의 문제가 명쾌하게 성도들의 가슴에 자리 잡지 못해 오늘의 위기에 봉착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주님의 고난과 부활 신앙이 신자들 가슴마다에 이어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귀한 질문입니다. 이 세상 삶의 종착점이 죽음이라면 무엇이 의미 있고 희망이고 가치 있는 일이겠습니까. 영원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소망하고 또 다른 세상이 우리에게 예비되어 있다는 것을 바라볼 때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영원한 세상이라는 것이 개념이 아니고 그 살아있는 첫 증거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부활의 첫 열매인 예수님처럼 우리도 부활하게 된다는 것, 죽음의 굴레에 갇힌 이 세상에서 죽음을 이길 수 있는 힘은 그 소망 안에서 가능합니다.

▲ 그렇습니다. 부활의 은총으로 가능한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날 비판받는 교회 현실을 볼 때 말씀하신 부활의 의미가 교회 안에서 왜곡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부활이라고 하는 의미를 좀 더 되새기면 지금의 일들을 잘 극복할 수 있습니다. 부활은 살아남인데, 그저 호흡하고 목숨이 붙어있다고 해서 살아남이 아니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살아남의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부활이라는 것이 죽은 생명이 다시 살아난다는 언어적 표현보다 우리 안에 죽었던 사랑이 살아나고,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고, 이웃으로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이웃으로 보이는 그것이 바로 부활의 모습이 아닐까요. 삶 속에서 그런 부활신앙을 갖지 못했기에 오늘날 염려스러운 교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부활절을 통해 부활의 정신이 되새겨지고 기억나게 하고 잘 가르쳐서 한국의 교회와 우리 신앙이 살아나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살아나려면 우선 죽어야 되는 것이지요. 부활의 기쁨은 내 안에 얼마나 죽음을 경험하느냐에 따라서 경험되어지는 것입니다. 고난의 주님을 더 깊이 묵상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부활이 절기가 아니라 내 삶의 능력이 됩니다.

▲ 한국교회 모두가 4월 20일 새벽에 부활절 예배를 드립니다. 한국교회 전체를 상징하고 있는 부활절준비위원회에서는 이번부활절 예배 주제를 ‘생명의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눅 18:13)로 정했습니다. 이는 계속되는 교세 감소, 외부의 거센 지탄 등 한국교회가 위기에 직면했다는 진단 앞에서 주님의 도우심에 대한 간구와 새로움을 향한 몸부림으로 보입니다. 주제에 담긴 의미는 무엇입니까.
- 그렇습니다. 교회가 교회 안팎에서 걱정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이런 위기감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컸지요. 결국 우리가 무얼 해야겠다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스스로를 돌아보고 은총을 구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아닌가,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설 때 가져야 할 가장 본래적인 자세이지요. 이번 부활절을 통해 본질적인 문제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같이 공감대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주제를 정한 것입니다.

▲ 말씀하신 대로 이번 부활절이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자세로 나아가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준비과정에서 설교자 선정 등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 그렇습니다. 설교자를 모시는 부분에서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설교자를 모셨던 방법들은 광장에서 대형집회로 하다 보니 집회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분이 설교자가 되는 양상이었어요. 인원 동원 능력과 재정적 부담을 감당할 분이 설교자가 되었던 것이지요. 저는 그런 방향은 지양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대형으로 모이는 것에 연연하기보다 앞으로는 우리가 같은 주제로 각 지역사회에 있는 교회들이 연합해서 함께 예배하는 것이 더 소중하지요.
이번에 설교자 선정에 있어서 그동안 진영 간의 균형을 맞춰 온 원칙이 손상되어서 부딪침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선정된 설교자가 개인적으로 흠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런 보이지 않는 룰이 깨어지면서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도 끝내 한국교회가 원칙 지키느라고 깨어져서 예배드리는 것보다 하나 되어 하는 것이 부활절에 교회가 줄 수 있는 최선의 메시지라고 결정한 것입니다. 과정 속에서 쉽지 않았지만 모두의 기쁨 가운데 준비되고 있고, 한국교회 전체가 어우러지도록 상당한 노력과 마음을 썼다는 것을 예배 현장에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 사실 준비위원회의 부활절 준비가 지역들에서 하는 것보다 늦기 때문에 내용을 공유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 준비위원회가 상설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매번 새롭게 모여서 하다 보니 늦은 감이 있습니다. 그래도 지역 교회들과 같이 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독려하고 끌고 가는 것입니다. 어렵더라도 지향점은 그렇게 갖고 가는 것이지요. 또한 요즘은 매스컴 시대이니까 작은 자리에서 예배드리더라도 어느 자리에서도 함께 할 수 있으니 몇 명 모였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메시지가 전해졌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 올해도 초대교회의 예전으로 예배 드려지는 것으로 압니다. 보수 쪽에서는 예전 중심의 예배가 아직은 익숙지 않아 예배 때 보면 겉도는 듯 한 느낌입니다. 서로 교감이 필요한 것 같은데요.
- 과거에는 부흥회 식의 예배였는데 수년 전부터 예전을 중심으로 해오고 있어요. 여러 교회들이 공교회적 언어로 하나님 앞에 다가서는 것이 연합하는 데 마땅하다는 것과 너무 설교자 중심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로 전환한 것입니다. 부흥회 형식은 한두 번은 가능할지 몰라도 역사성을 가진 연합예배에는 맞지 않다는 데 의견이 맞은 것이지요. 순서가 복잡하다는 이야기도 있기는 합니다. 그래서 예배 전날에 리허설이 있고, 예배 연출 담당자를 두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서로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각 교파별로 생각이 서로 다르고 신학적 입장이 다른데도 함께 모여 예배하려는 열정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의미에서도 부활의 계절은 우리에게 참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 오는 8월 교황 방한을 앞두고 교회들이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의 겸손한 면면들이 처음엔 보이기 위한 것인 줄 알았는데 그가 걸어온 삶 자체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교황 방한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불안감이 엿보이는데, 천주교는 이웃종교가 아니고 정치조직이 다를 뿐 신앙의 뿌리와 전통이 같은 한 가족입니다. 물론 개신교 안에는 신앙적 입장에 따라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교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지요. 저로서는 그런 귀한 분이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우리는 그 속에서 자기를 성찰하면서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함을 다지며 나의 부족함과 잘못은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는 그런 기회로 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부활절연합예배의 중요한 화두는‘연합’입니다. 한국교회가 사분오열 나누어진 상황에서 연합은 우리의 큰 염원입니다. 과연 어떻게 참된 연합을 이뤄낼 수 있을까요.
- 한국교회 미래는 지역마다 자리하고 있는 교회들이 어떻게 연합하여서 지역사회와 문화를 바꿔 가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크나 작으나 서로 연합하여 지역을 섬기는 것, 그걸 어떻게 만들어 내는가가 교회의 미래에 중요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연합은 하자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을 얼마나 배려하느냐에 따라 가능해집니다. 부활절도 상대방에 대해 ‘아, 나와 다르구나’ 하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그 폭만큼 연합이 이뤄집니다. 부활절 연합예배는 그런 이해와 고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지역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 같습니다.
- 지난해에도 제가 준비위원장을 했는데 부활절연합예배를 드린 다음날 경남 하동에 갔더니 똑같은 주제의 플래카드가 붙어있더라고요. 그렇지, 이래야 되는 거지 하는 기쁜 마음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다만 구조적인 문제로 준비를 일찍부터 시작하지 못해 주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번에 그런 문제를 탈피해보고 싶어서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활절 준비를 위한 첫 모임을 각 교단의 새로운 총회장 당선이 마무리 되는 11월에 하는 것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럼 조금 더 일찍 준비에 돌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부활절이 예배만 드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화행사를 통해 사회와 함께 호흡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 준비위원회에도 그런 바람이 있습니다. 부활절예배가 예배만으로 끝나지 말고 그것을 계기로 한국사회에 좋은 영향 미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큽니다. 젊은이들과 다음 세대들을 위해 부활의 문화를 재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만들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문화재가 50년 동안 지속되면 무형문화재가 되고 국가적으로 보호 받을 권리가 주어집니다. 부활절 연합예배도 한국 사회 속에서 서로가 자랑스러워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아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활절 준비위 조직이 지속성을 갖고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의 실패를 반추해서 조직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공신력 있는 교단들이 앞장서서 실무를 맡고 총회장들을 대표로 세워서 1년에 두 번 정도만 모이면 지속적으로 사업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모쪼록 부활절에 주님의 은총을  재확인하며, 이웃과 그 감격을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대담=양승록 편집국장 / 정리=정찬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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