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당나라 景敎 _ 23

   

▲ 고승 구마라습 청동상. 구마라습은 주후 300년대 천축국(인도) 사람인 아버지와 쿠처의 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당시 중국 전체에서 따를 수 없는 뛰어난 불교학자였다.

“바로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 성경 번역 문제로 힘의 한계를 느낍니다. 우리 선교 인력 안에는 헬라어 등 고대어에 대해 상당 수준으로 실력을 갖춘 이들이 장안에 있고, 다마스커스나 사마르칸트에도 있어요. 그러나 우리가 깊이 헤아려야 할 부분이 있지요.”

“그게 뭔가요?”
쿰바홀이 궁금해 했다.
“수리아 신학과 로마신학의 차이입니다. 성경을 번역할 때, 글의 뿌리를 찾아서 밝히고 그 글의 사상을 담을 수 있는가를 겨루어 보는 단계가 있어요.

예를 들어 니케아 회의(AD325년)가 열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냐, 하며 주 예수의 본성(本性)을 밝히고자 했을 때 정통파 대의원(주교)들은 ‘예수는 하나님이시면서 또 사람이시다’로 표기해야 하는데 이를 표현할 적합한 단어를 찾지 못하여 고민하였지요. 그러다가 헬라어에 능통한 한 학자출신 주교가 ‘호모우시오스(?μοο?σιο?)’라는 단어를 발견했어요. 이 단어는 두 실체가 외형은 나뉘어 있으나 그 본성은 하나라는 뜻을 지닌 단어입니다. 수십만 단어 이상의 헬라어에서 각기 다른 두 형체의 본성이 일치한다는 뜻을 담을 수 있는 단어는 유일하게 ‘호모우시오스’ 하나뿐이랍니다.

이 단어의 등장으로 정통파 교부들은 문자로서 예수가 하나님이시면서 또 사람이시니 두 형체의 본성은 하나라는 어휘가 지닌 매력을 양보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반대파들의 거센 주장을 물리치고 ‘니케아 신조’에 못을 박아 두었지요.

마찬가지로 성경언어로서 하나님의 성품과 하신 일을 표현하기에는 언어표현 당사자의 사상성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확보한 성경번역 실력자들은 대다수가 수리아파나 알렉산드리아 쪽 공부를 했습니다. 조심스러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안토니가 걱정을 했다. 쿰바울은 말없이 자기의 이마통을 오른손으로 쿵쿵 소리가 날 정도로 찧고 있었다.

“방법이 쉽지 않지요.”
마리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하는 신학 전공자들더러 일단 번역을 하게 하고, 그 뒤에 교수님과 주교님이 감수하시고, 또 한편으로는 로마기독교 전문학자에게 감수 의뢰를 하면 됩니다. 저들이 아무리 우리 네스토리우스 파를 이단이니 삼단이니 해도 중국인들을 위한 성경 번역인데 협조하지 않겠어요?”
쿰바홀이 통 큰 대안을 내놓았다.

“맞아요. 쿰 부주교님의 지혜가 이겼습니다. 그리 되도록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때 드보라가 나타났다.
“아니, 교수님 늦은 시간입니다. 지금 무슨 급한 일이 있으세요?”
“아, 아닙니다. 성경 번역 문제로 잠깐 논의했어요.”

“드보라 원장님, 수녀원 설립 문제는 잘 됩니까?”
안토니가 불쑥 하는 말이었다.
“네, 잘 되고 있어요.”
“그럼, 우리는 닭 쫓던 꼴이 되었나요.”
“참, 안토니 사제는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을 쉽게 하시나요.”
“마리아 교수님, 그런 말씀 마세요. 교수님이 잘 아시면서….”
“안토니 사제!”
마리아가 힘 주어 말했다. 그녀는 안토니가 드보라에게 관심이 깊은 것을 알고 있다.

“아, 교수님. 걱정 마세요. 종종 농담하시는 것까지 막을 수 있나요. 참, 말이 나온 김에 안토니 사제님은 수도원 책임자를 빨리 선정해 주세요. 정말로 사명이 출중한 인물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집트 사막의 수도사들에 뒤질 생각이 없거든요.”
드보라가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그것은 저희 모두의 포부입니다. 주교님의 열망이기도 하시죠.”
마리아의 말이었다.
안토니는 드보라의 드센 방어에 말을 더는 잇지 못했다. 석녀같으니라구…. 그는 입속으로 드보라를 돌덩어리로 만든 여자라고 생각했다.

“자, 가서 쉬셔야죠. 쿰바홀 부주교님은 몹시 피곤하시겠네요.”
마리아는 쿰바홀에게 각별히 예의를 갖추었다.
다음날, 페르시아 난민들이 장안으로 많이 밀려들었다. 5백명이 넘었다. 페르시아 정부 관계자들이 황태자를 모시고 왔다고 한다.
“황태자 피루즈가 정말 왔을까요 주교님?”
“글쎄, 일이 간단치가 않군요.”
마리아의 말을 들은 알로펜은 매우 우울한 얼굴이었다.

“마리아 교수님, 황태자가 쫓겨올 정도이면 페르시아는 왕조의 문을 닫았나 봅니다.”
“그러게요. 주교님! 페르시아도 문제이지만 이미 이슬람 수중으로 들어간 다마스커스, 그곳의 우리 동역자들은 어찌하고 있을까요?”
“당분간은 큰 문제 없을 것입니다. 이슬람 방침이 타종교에 대해서 간섭을 하지 않는답니다. 특히 우리들 기독교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정책을 펴기 때문에 그렇다는군요.”
“저도 들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영악한 종교정책을 펴고 있습니니다. 그들이 타종교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다는 명목이 뭐겠습니까. 여론을 생각하는 것뿐이고, 예를 들어 우리 선교사들이 그들의 영토에서 선교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렇겠죠.”

알로펜은 궁성으로 갔다. 궁성은 평온했다. 페르시아인들 5백여 명이 난민으로 왔다 해서 분주해 할 당나라가 아니었다.
방현령 대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당나라에 온 지도 몇 년이 지났는데 알로펜이 가까이 마음을 열어 대화할만한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 방현령이라고 해서 특별히 부탁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정세에 대한 객담이라도 나누며 차 한 잔의 시간을 필요로 했을 뿐이다.
방현령이 집무실에 없었다. 조회에 참석하러 갔다는 것이다. 알로펜이 차 한 잔을 마시고 일어서려는데 방 대감이 들어선다.

“어어, 대감님 바쁘시군요. 저 알로펜 주교입니다.”
“네, 네. 잘 오셨어요. 좀 앉으시죠.”
방현령은 새삼스럽게도 알로펜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대감님, 왜 그러세요. 제가 무슨….”
“아니요. 주교님도 알고 계시죠. 페르시아 황태자가 난민들 속에 섞여 있습니다.”
“그래요? 저는 자세히 모릅니다.”
“그러실 거예요. 그런데 저희가 황태자라 해도 예우를 못합니다. 그냥 난민일 뿐입니다.”
“그러실 것입니다. 저도 지금으로서는 특별히 할 말이 없군요. 다만 귀국의 처지를 생각할 때 저도 페르시아인으로 면목이 없을 뿐입니다.”

“뭘요.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페르시아인이 지금은 난민이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만은 난민이라고 할 수만은 없죠. 그리고 현재 장안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 페르시아인들이 수만 명이 더 됩니다. 아직도 페르시아는 우리 당나라의 상대역입니다.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그리고 황태자 신분이 확인되는 대로 최소한의 예우를 하도록 지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방 대감님. 그런데 하나 소청이 있습니다. 금번은 물론 앞으로 또 있을 것 같은 난민들 중에서 저희 주교단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을 대진사로 데려갈 수 있도록 협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거야 여부가 있나요. 오히려 저희 당나라가 주교님께 감사해야 될 부분이죠.”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대진사로 돌아온 알로펜은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페르시아가 아라비아 이슬람 세력에게 무너지다니….”
알로펜은 무릅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한 사람의 성패가 무서움을 새삼 느꼈다. 열여덟 살 동갑 나이로 만났던 낙타몰이꾼 무함마드가 지금은 로마제국을 뒤흔들고 있었다. 수리아, 수리아의 안디옥 교구, 예루살렘, 이집트, 페르시아, 그리고 그 다음은 또 어디를 겨냥하는가? 로마, 아니면 동로마의 심장부 콘스탄티노플이면 기독교 제국을 완전히 장악한다.
알로펜, 너는 뭐 했느냐? 무함마드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말할 때만 해도 더 유리한 조건과 환경에 있었던 날들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마리아 교수는 기도실로 들어간 알로펜이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기척이 없자 초조했다. 그렇다고 기도실로 들어가기도 조심스러웠다. 그가 홀로 사용하는 개인 기도실인데다 궁성에서 돌아올 때의 모습이 말 붙여보기가 조심스러울 정도로 착잡했었다. 마리아 교수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때 안토니 사제가 달려왔다.

“마리아 교수님, 주교님 계신가요?”
“네, 그런데….”
“페르시아 왕자, 아니 황태자가 이리로 오고 았어요.”
“뭐요?”
그때 쿰바홀의 안내를 받은 페르시아 재무대신 마흐 마가드가 청년 한 사람과 함께 주교관으로 오고 있었다.
마리아는 먼저 알로펜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황태자 피루즈가 주교관으로 들어섰다. 알로펜은 피루즈 앞으로 다가가서 한쪽 무릎을 꿇어 황족에 대한 예를 올렸다.
“주교님!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내가 거룩한 주교님으로부터 존대를 받을 처지가 아닙니다.”
피루즈가 알로펜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좌정하시죠.”
알로펜이 피루즈에게 그의 좌석인 주교좌에 앉게하였다. 그러나 피루즈는 한사코 사양하고 그 옆자리에 앉았다. 알로펜도 자기 지정석을 비워두고 황태자 건너편 그와 마주보는 위치에 자리잡았다.
페르시아의 재무대신 마흐 마가드를 비롯하여 황태자의 수행인들이 모두 자리에 앉았다.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째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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