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당나라 景敎 _ 26

   
▲ 쿠처 구마라습 석굴 선원. BC 3세기 조성된 출입이 쉽지 않은 석굴암좌 일부.

 

교회를 세우러 간다. 신자를 찾으러 간다. 알로펜의 제자들은 서둘렀다. 쫓기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이다. 친정어머니가 시집 간 딸을 찾아가는 그런 마음이다. 이는 알로펜 식 전도전략이다.
본부는 마리아와 드보라만 남겨두고 모든 남성들이 다 떠났다. 드보라는 아베스가 맡겨놓고 간 서역 풍물시장의 아이를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영부야, 너 아버지가 보고 싶지 않느냐?”
“아니, 보고 싶어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알로펜 주교님의 제자로 부르셨으니 열심히 공부하려고요.”
“그렇구나. 너 참 다부지구나. 그래, 주교님으로부터 무엇을 배우려고 하느냐?”
“예수님은 어째서 하나님이신 분이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는가를 바로 깨달아야 참된 제자가 된다고 아베스 삼촌이 가르쳐 주셨어요.”
“아, 그렇구나. 그럼 그동안에 배우고 느낀 바가 있느냐?”
영부는 드보라의 얼굴을 무심코 바라보는가 싶더니 다음과 같이 답을 내놓았다.

“네, 하나님은 영이신데 그분이 사람으로 오신 것은 사람들이 영(靈)이요 신(神)과 같은 존재임을 암시하신 것으로 깨달았습니다.”
“뭐, 뭐라고?”
드보라는 영부의 양 어깨를 덥석 부여잡고 잡아당겨 가슴으로 껴안아주었다. 사랑스러웠다.
“너, 겨우 일곱 살인데….”
“선생님, 칭찬 과분하십니다. 저는 앞으로 드보라 선생님에게 특별히 많이 배우고 싶어요.”
“그래. 왜 내게…?”
“그냥요.”
영부는 드보라의 품을 빠져나가서 저만치서 웃고 있었다.
드보라는 영부의 천진난만하고 또 순수한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저 아이를 잘 길러야겠다고 다짐했다. 영부는 수도원 건설현장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제단을 향해 달려가는 한 마리 숫양처럼.

드보라는 마리아 교수 방으로 갔다.
“교수님, 저 드보라입니다.”
드보라를 맞아 함박 웃는 마리아는 매우 평화로워보였다. 햇빛 따스하게 드는 창가 멀리 구름 없는 파란 하늘을 등 뒤로 하고 앉아 있다가 드보라가 들어서자 일어섰다.
“스승님, 그냥 앉아계세요. 저에게까지 이러시면 제가 불편해요.”
드보라는 마리아가 엉거주춤 일어서는 것을 자리에 그대로 앉게 했다.

“드보라 님 뭐 좋은 일이 있나요? 얼굴이 환해요.”
“스승님, 마리아 스승님을 곁에서 모시는데 내가 늘 기쁘지 않을 수 있나요.”
“그래도 오늘은 더….”
“네, 그렇군요. 영부란 아이 말입니다. 서역 풍물시장에서 데려온 그 아이가 보통 영특한 게 아니더군요. 자기는 커서 주교님의 후계자가 되겠다고 벼르더라니까요. 아주 총명해요.”
“그래요. 그게 다 우리 복이죠. 그런데 그 아이의 부친이 찾아올 경우 드보라 님은 자칫 이별의 상처를 받을지 모르니 조심하세요.”

“이별의 상처라니요. 영부는 하나님이 주교님께 보내신 선물입니다. 그의 부친이 찾아와도 오히려 잘 길러달라고 부탁할걸요.”
“참, 꿈이 야무지시네. 그건 그렇고 드보라 님은 내가 주교님 모시다가 힘이 부치면 내게 보탬을 주세요. 우리 둘이 합심하여 주교님을 잘 모셔야 합니다.”
“아닙니다. 저는 아닙니다. 주교님은 마리아 스승님이 잘 모실 수 있어요. 요즘은 주교님이 전보다 달라지신 것 같기도 하던데요.”
“말투만 좀 부드러워지셨지. 가까이 가려 하면 금방 냉기가 돌아요.”

“그럼, 너무 가까이는 가지 마세요. 결국은 주교님은 마리아 교수님의 따스한 품에 안기실 거예요.”
“그래서 내 힘이 부족할 때 드보라가 나를 도와서 주교님의 여성 기피증을 없애버리자고요.”
“교수님도 참, 우스개도 잘 하시네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곳까지만 도와드릴게요.”
“드보라! 내 말 뜻을 잘 모르는군요. 내 예감인데 주교님은 앞으로 드보라가 가까이 모셔야 할 것 같아요. 주교님은 나를 여자로 보지도 않아요. 내가 누님 나이라 그러기도 하고, 또 그의 독신의 고집은 그의 마음 문을 영영 닫아버린 것 같아요.”
“교수님, 걱정 마세요. 여자로 보지 않으시면 우리 둘이 여성 보좌관으로 좌우에서 주교님의 건강과 사생활을 도와드리면 됩니다.”
“그럴까요?”
“그럼요. 주교님이나 마리아 교수님은 연세가 있으시니까 제가 더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두 분을 잘 모시겠습니다.”

“그래요. 나는 드보라가 곁에 있어서 주교님 문제는 완전히 마음 놓았어요. 아주 고마워요.”
“저도 마리아 교수님을 스승님으로 모시니 내 영혼이 평안하고 또 어머니처럼 따스하시니 행복해요.”
“저런 저런, 그럼 주님의 자리는…?”
“주님은 날마다 영생하는 삶을 주셨고, 또 동행하시는 하나님이시잖아요.”
“그래 좋아요. 우리 수녀원 건축 마무리 현장에 가볼까요?”
드보라는 마리아 교수와 함께 오리봉 공사현장으로 갔다. 내부 공사만 남은 수녀원이나 수도원은 외양은 다 갖춰져 있다. 수도원 별실에 갔더니 영부가 거기 있었다. 드보라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영부는 불승들처럼 두 손을 모아 쥐고 묵상 중에 있었다. 더구나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의젓한 모습이었다. 밖으로 나와서 마리아에게 사실을 그대로 전했다.

“애어른이 있다더니….”
“그러게요. 잘하면 인물 되겠어요. 영부도 주교님 후계자가 되고 싶다고 했으니 지켜보면 되겠어요.”
“참 영특한 아이로군요.”

안토니 사제가 빠른 걸음으로 오리봉으로 오고 있었다. 마리아는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안토니 사제! 주교님 모시고 가시더니 왜 혼자 오는가요?”
마리아는 잔뜩 의문을 가지고 질문했다.
“네, 좀 몸이 불편하시다 해서 모시고 왔어요.”
“뭐요? 주교님 몸이…, 그 어른은 아직까지 몸살 한번 앓아보지 않았어요. 아시겠어요?”
“네, 저도 압니다. 허나 이제 연세가 있으시잖아요.”
“얼마나 아프세요? 주교님 어디 계세요?”
“네, 황도 한의원에 입원하셨어요.”
“뭐요? 입원!”

마리아는 ‘입원’까지 말하더니 두 손으로 이마를 짚고 주저앉아버린다. 드보라가 재빨리 붙잡았으나 그대로 혼절하고 만다.
“마리아 교수님! 정신 차리세요.”
드보라가 몸을 흔들었으나 마리아는 깨어나지 않았다. 드보라는 어찌할 줄 몰랐다. 안토니에게 한쪽을 붙잡게 하고 간신히 수녀원 거실에 몸을 눕혔다. 드보라가 목청껏 “마리아여!” 하고 부르자 마리아 교수가 눈을 뜬다.

“교수님, 괜찮으세요?”
드보라는 마리아가 주교님 병나셨다는 말을 듣고 혼절하는 것을 보면서 이 분들은 서로를 무척이나 사랑하는구나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눈물겨웠다. 이렇듯 사랑하는 마음으로 50년인가를 짝사랑이고, 참 사랑이었던가? 드보라는 마리아의 이마를 두 손 모아서 조심스럽게 감싸 안으며 생각에 잠겼다.
“드보라. 어떻게 하지. 주교님이 아프시다잖아. 주교님이….”
마리아는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그래요. 제가 안토니 사제와 함께 가서 주교님을 모시고 올게요.”
“아니야 드보라. 나 갈 수 있어. 내가 가봐야지.”
드보라는 더는 만류하지 못했다. 사랑하는 알로펜이 병이 나서 병원에 있다는데, 숨이 끊어지기 전에야 마리아 교수가 양보하겠는가. 마리아의 눈물 글썽이며 하는 말을 더는 막지 않았다.

“그래요. 교수님. 50년 짝사랑이 아프시다는데 교수님이 가셔야죠. 제가 업고라도 모실게요.”
곁에서 지켜보는 안토니가 듣거나 말거나 드보라가 큰소리로 말했다. 마리아가 빙긋이 소녀처럼 수줍게 웃었다. 그 순간에서 50년 짝사랑이란 말이 좋아서인지 마리아의 양쪽 볼이 불그레 연한 분홍빛을 드러낸다.
“교수님, 그래도 사랑이 좋은 거죠?”
“혼자만 좋으면 뭘해.”
마리아는 드보라와 함께 광통교 근처에 있는 황도 한의원으로 갔다.
알로펜은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주교님!”
마리아가 알로펜의 도포자락을 붙잡고 뜨거운 눈물을 쏟는다.
“아이고, 우리 교수님. 아기가 되셨나, 왜 우실까?”
알로펜이 어색한 분위기를 지워내려는 듯 농처럼 말했으나 마리아는 물론 드보라도 심드렁한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마리아! 나 괜찮아요. 드보라 님 미안해요. 괜한 걱정 끼쳤네.”
“주교님, 정말 괜찮으세요?”
드보라가 알로펜의 안색을 유심히 살피며 다짐하듯이 묻는다.
“그래요. 내가 어젯밤 잠을 설쳤나 봐요. 아침에 마리아가 붙잡을 때 사무실에서 쉴 걸 내가 말을 안 들어서 두 분 여걸들에게 걱정을 끼쳤네 그려.”
드보라는 웃는데 마리아는 웃지 않았다.
“말 좀 작게 하세요.”
쏘아붙이듯이 한마디 하고는 먼저 길을 나섰다. 드보라는 혹시 몰라서 알로펜 곁을 따라서 걸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째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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