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당나라 景敎 _ 28

   
▲ 아제르바이잔 쉐키 지역 1세기 예배당 터에 세워진 12제자 중 한 사람인 다데오 기념 예배당. 4세기 건물.

도원장이나 된 것처럼 행세했다. 안토니를 친한 친구 대하듯이 가까이 하면서 그들 종교 간의 길을 좀 더 견고하게 다듬어보고자 했다. 하지만 대화 속에서 한계를 느꼈다. 그는 기독교 세계의 이야기가 쉽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안토니 사제, 난 아직 기독교에 대해서 잘 모르겠소. 미안해요.”
영진 승의 말을 듣고서도 한동안 그를 바라보기만 하던 안토니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서두르지 마세요. 평생을 기독교 속에서 살고 있는 나도 잘 모르는데 그게 그리 쉽겠어요.”
안토니의 말을 듣고 영진 주지는 자기 이마통을 쿵쿵 소리가 나도록 자기 주먹으로 치면서
“아이고, 내 돌대가리야. 이 무슨 망신인가….”
영진과 안토니가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면서 깔깔깔 웃는다. 포복절도다. 배꼽이 빠져나갈 것 같은 웃음이요 사추리 아래가 축축해질 것 같은 박장대소였다. 그들은 비슷한 시각에 웃음을 그치고 각기 눈 가장자리에 묻어있는 눈물 자국을 씻어내는 시늉을 했다.
그때, 그들을 바라 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 알로펜이었다.

“어허, 무엇이 그렇게 즐겁소이까?”
알로펜을 확인한 영진 승이 벌떡 일어나서 머리를 깊이 숙여 절했다.
“주교님! 저는 안토니 사제의 스스럼없는 환대에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있습니다. 어찌 오셨습니까?”
“어찌 오다니요. 우리 집에 미래 부처님들이 여덟 명이나 오셨는데 제가 살펴드려야죠. 그냥 뭐 도울 일이 있나 싶어서 왔습니다.”
“아, 네! 송구스럽습니다. 저는 미래 부처가 아니라 땡중입니다. 뭘 도무지 몰라요. 제가 유승 도사가 우리 절에 왔을 때 그이에게 불교에 대해서 배우고 기독교도 조금 가르침을 받았는데 두 종교 다 잘 모르겠어요.”
“그런가요. 저나 제 주변의 경험을 대강 살펴보면 바로 그때가 깨달음의 시간이 가까이 왔다는 신호입니다.”
영진은 알로펜이 손짓을 할 때마다 유심히 살핀다. 그의 눈은 알로펜의 손끝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깨달음의 직전이라…’고 중얼거리던 영진은 혼자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한참 후에 영부가 달려왔다. ‘주교님!’을 연신 부르면서다. 안토니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문밖으로 나갔다.

“주교님! 손님 오셨어요. 서역의 도사님들 두 분입니다.”
영부는 서역 사람이라 해서 더 신났던 것일까. 영부 뒤를 따라서 자줏빛 가사를 걸친 티베트 승려 복장을 한 승려 두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아비후와 마주치자 인사를 했다.
“저희는 낙양에서 주교님을 뵙고 제자 되어 따르고자 다짐했던 사람들입니다. 저는 마의이고 이 친구는 청수입니다. 스승님이 여기 계신다 해서 저 아이를 따라왔습니다만….”
아비후와 마의가 인사를 나누는 사이에 알로펜이 달려 나와서 그들을 맞이했다.
“아이코, 내 친구들! 어찌 이렇게 왔는가요?”
알로펜이 웃으며 말하자 청수가 불만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스승님! 어찌 반갑다 하지 않으시고 왜 왔느냐고 하세요?”
“아니야. 이 사람 청수! 그동안 잘 지냈는가? 마의 형제는?”
“네, 저희는 스승님과 낙양에서 헤어진 후 쿠처국에 다녀왔습니다. 그동안 쭉 장안사에 머물다가 오는 길입니다. 지금 장안사에는 현장이라는 불교의 큰 선생이 나타나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래, 그래요. 저 안으로 듭시다. 먼저 오신 귀인들이 있으나 잠시 합석해도 될 거에요.”

“그럼요. 합석이 좋지요.”
영진 주지의 제자들이 문밖으로 우르르 나와서 마의와 청수를 안내한다.
마의와 얼굴이 마주친 안토니가 큰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와 껴안았다.
“아이고 부처님! 이거 어이 여기까지 발걸음을 하셨소. 나는 현장과 동무하며 잘 지내는 줄 알고 있었지….”
“아니 왜 그러세요. 내가 또 무슨 부처입니까. 큰 일 날 말씀 마시고 혹시 서운한 생각 있으면 다 말씀하세요. 내가 두 손 들어 사죄하겠습니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안토니 사제님!”
“그래 마의! 나는 불제자들과 만나면 만날수록 사람이 부처다, 하는 확신을 하고 있어요. 안 그래요? 마의 불 님!”
“어허, 그만 하고 여기 귀한 분들 계시는데 인사 좀 나누시오.”

알로펜이 쿠처 출신 마의와 청수를 영진 주지 일행에게 소개하고 또 영진 일행과의 사귐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히 설명했다.
마의와 청수는 눈을 반짝였다. 이어서 알로펜은 마의에 대해서 설명했다. 마의는 본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에도 가까웠던 인물로 지금은 쿠처 출신 후한기 구마라습 고승과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어 있는 현장의 친구라고 소개했다.
“아닙니다. 말씀 중에 현장의 친구는 정확한 소개가 아닙니다. 현장은 지금 장안에서는 하늘의 별과 같은 존재입니다. 참, 제가 현장 스님에게 알로펜 주교님 말씀을 드렸더니 머지않아서 꼭 찾아뵙겠다고 하시더군요.”

“아, 그렇군요. 현장이 마의 스님에게 알로펜 주교 찾아뵙겠다는 말을 한 것을 보면 마의 승께서는 현장 스님에게 인정을 받고 있다는 증거군요. 치하 드립니다.”
“별 말씀을요. 아마 현장이 저희에게 관심을 더 갖는 것은 제가 구마라습을 알고, 알로펜 주교님이 구마라습 고승의 성품과 덕목이 닮았다고 했더니 저에게 관심을 가졌죠. 참, 그리고 현장은 황제께서 법사 호칭을 특별히 내렸습니다.”
“아, 그런가요. 그럼 현장 법사는 머지않아서 삼장 법사로 호칭이 뛰어오르는 건가요?”
“글쎄요….”
마의는 거기까지는 모르겠다는 듯이 말꼬리를 흐렸다.
“그래, 현장은 머지않아서 삼장 법사가 될 겁니다.”
“삼장 법사면, 삼장이 뭡니까?”

주지 영진이 물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다시 알로펜이 말했다.
“삼장(三藏)은 불교 경전을 통칭하는 말로서 경장, 율장, 논장의 3장을 통달할 정도의 위대한 승려를 말하는데, 이른바 불교박사라는 말이 될 겁니다. 그렇다고 고승들에게 모두 ‘삼장’이라는 호칭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를 중국의 한문으로 번역해낼 만큼 실력이 뛰어난 학승에게 붙여주는 호칭이죠. 현장보다 3백여 년쯤 앞선 후한 동진 시대의 구마라습은 현장보다 더 뛰어난 삼장이셨다고 하지요. 현장은 천축국 여행 18년 동안 그곳에서부터 높은 학자대접을 받았다니 천재이기는 하겠으나 아직은 연륜과 관록의 과정이 남아있는 미래 희망의 인물입니다. 그의 정식 호칭은 ‘현장, 삼장 법사’라고 해야 될 겁니다.”
모인 사람들은 알로펜 주교를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는 듯 했다.

“왜들 그래요. 내 얼굴에 무엇이 묻었나요.”
“아니, 모르시는 것이 없으시니 모두들 놀라시는 것 같군요.”
“뭘, 토막지식일 뿐이지. 구마라습이 했다는 말 하나 들려줄까요. 그가 얼마나 탁월하고 또 천재성을 가졌느냐의 예로 그가 세상 떠나기 직전에 했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만약 나의 번역에 오류가 있다면 나의 혀가 탈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나의 혀는 타지 않을 것이다.’ 기이하게도 다비식 때 그의 혀가 타지 않았다고 고승전이 전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구마라습 삼장의 산스크리트어 번역은 정확했다는 뜻입니다. 아시는지는 모르나 한나라, 후한기에 황제들이 그를 탐하여 군대를 보내서 쿠처를 멸망시키고 억지로 모셔간 역사도 있지요. 어떤 왕은 그를 미인계로 파계시켜서 붙잡아 두는 등 그의 후반생이 순탄치는 않았으나 오늘날 중국 대승불교의 기반은 구마라습의 실력에서 나왔습니다. 현장의 천축국 여행 18년에 이룩한 삼장 박사의 호칭도 그 출발점은 구마라습 삼장 박사에서 출발합니다.”
알레폰이 말하고 있는 시간에 마의가 그의 발 앞에 무릎 꿇고 앉았다. 그의 얼굴은 슬픈 빛으로 가득했다.

“주교님, 주교님, 주교님….”
마의는 조용히 떨리는 목소리로 알로펜의 이름을 거푸 부르고만 있었다.
“마의의 마음을 내가 압니다. 여기서 구마라습과 현장을 말하는 우리 모두는 가능하면 ‘삼장 박사’가 되어 주시고 아니면 삼장이 얼마나 존엄한 인물인가를 마음 깊이 간직해야 합니다.”
알로펜이 말했다.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째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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