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평생학습 실천하며 소통·나눔의 장 만드는 박현규 집사

 안구 출혈로 한쪽 시력 잃은 후 ‘평생학습’ 실천에 매진

“평생학습, 내 삶 이해하고 인간다움으로 나가는 것”

 

   
▲ 박현규 집사

‘갈치 냠냠’, ‘과수원길’, ‘山책’….
언뜻 들어서는 알 듯도, 모를 듯도 한 이 말들은 경기도 화성시의 한 주택단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일부를 담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에 새롭게 형성된 주택단지로 화성시 반송동 필봉산 아래에 위치한 ‘숲으로 통하는 마을(이하 숲통마을)’에서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마을에 합창단이 생겼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교과학습을 지도하는 동아리도 진행되고 있어요. 이웃 간에 음식을 나누는 것이나 공동 육아도 자연스러워졌고요.”

숲통마을 주민의 한 사람으로 지역민들과 함께 마을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생명의전화 평생교육실장 박현규 집사(46)는 자신의 전공분야인 평생학습을 마을에서 실천하며 “행복한 우리”가 되는 것을 꿈꾸고 있다.

단순히 “아이들을 뛰어놀 수 있게 하자”는 생각으로 오랫동안의 아파트생활을 접고 주택으로 이주했는데, 마을을 20년간 몸담아온 평생학습 실현의 장으로 만들어보자는 포부와 주민들의 필요가 맞아떨어졌다. 학습의 참된 목적은 내 삶을 깊이 이해하고 인간다움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데 대한 공감은 조금씩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냈고 마을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 어른·아이 모두 배워

박 집사는 1년 전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새롭게 형성된 주택단지이다 보니 마을 주민들 간의 교류나 공동체성이 부족하고 아파트 단지에 비해서 학습, 문화, 시설, 행정으로부터 소외된 것을 보고 우선 주민들 간에 서로에 대한 관심과 마음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뜻을 공유하는 이들과 하나씩 일을 저질렀다.

“지역의 관심을 나누고 인적 물적 자원을 하나로 모으면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나의 부족함을 누군가 채워주는 경험을 통해 함께 사는 행복을 일굽니다.”

경기도가 지난해 화성시를 주민주도형 평생학습마을로 지정한 데 이어 최근 숲통마을은 그동안 마을에서 해오던 일들을 경기도에 제시, 지원 사업으로 채택됐다. 앞서의 아리송한 단어들은 그 내용의 일부이다. ‘창의인성학습 프로그램’의 일환인 ‘갈치 냠냠’은 가족 및 마을 주민들의 갈등 치료 프로그램이고, ‘과수원길’은 ‘과학과 수학이 하나 되는 길’의 줄임말로 아이들의 학습을 위한 것이다. 또 ‘山책’은 산 속에서 진행하는 동화 구연 수업이다.

이 외에도 생태학습, 문화탐사, 북아트, 요리, 목공 등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비롯해 악기와 운동을 배우고 영화를 함께 감상하고 토론하는 예체능학습 프로그램 등 20여 가지 학습 항목을 다채롭게 진행할 계획이다. 이미 주민들 가운데 가정·마당·놀이터·뒷산에서 자치적으로 해오던 일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마을 주민이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음악을 전공한 엄마가 음악교실을 열었더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여들었다. 어른들은 우크렐레(작은 기타같이 생긴 4현 악기) 등의 악기를 배우고 아이들은 합창을 통해 서로 다름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속에서 기쁨을 만끽한다. 오는 26일에는 마을의 숨구멍인 필봉산 정상에서 작은 음악회도 열린다.

# 더불어 사는 ‘우리’

박 집사가 지역을 평생학습마을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이유는 마을 주민들 간에 학습관계를 형성함으로써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 발돋움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게 건강한 공동체가 형성되려면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건강한 자아를 가져야 하는데 그것은 나 자신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에서 발현되는 바, 이것이 바로 평생학습의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평생학습과 학벌을 쌓는 것과는 개념이 다릅니다. 개개인의 자아 성장과 삶의 질 향상이 수반되지 않은 채 학벌만 높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요. 학습을 통해 내가 즐겁고 정신세계와 마음의 근육을 튼튼히 하는 행위를 평생 이어가야 합니다.”

박 집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 속에서 학습의 참된 의미가 퇴색되고 학원과 자격증이 남발하는 분위기를 넘어 이웃 간에 “어제 무얼 배우셨어요? 잘 배우셨어요? 우리 함께 배우러 갑시다”하는 인사가 자연스럽게 되는 날을 꿈꾸고 있다.

그렇게 학위와 관계없이 스스로 고매한 정신과 삶의 질을 평생 닦아가기 위한 학습은 곧 ‘행복’과 연결되는 것은 박 집사가 죽음의 고비를 넘으며 깨달은 것이다. 평생학습의 의미를 더 절실히 성찰한 것은 6년 전, 한쪽 눈 시력을 잃을 정도의 심각한 상황을 지나면서였다.


“서울대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수료하고 논문계획서가 통과된 상태에서 오른쪽 안구출혈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무리하게 논문을 추진했다간 다른 쪽 눈마저 잃을 수 있고 출혈이 계속되면 생명까지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진단이었어요. 현실을 받아들이기란 너무도 힘겨운 것이었습니다.”

박 집사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라면서 성공을 향해 내달렸다. 정부기관에서 안정적으로 일하면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건강이 악화돼 일순간 모든 것을 손에서 놓아야만 했다. 대학 졸업과 함께 자살예방센터인 생명의전화(원장 하상훈)에서 20여 년 간 봉사하며 자살의 위기에 놓인 이들에게 상담을 해주었지만 병마 앞에 절망하며 아파트 13층에서 하염없이 아래를 내려다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무엇이 참된 행복인가에 대한 고민이 컸어요. 평생학습을 아는 것에서 사는 것으로 바꾸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 집사는 병마로 인해 오른쪽 시력을 잃었다. 과거에 비해 문서를 읽거나 컴퓨터 작업을 할 때면 불편함이 있지만 그는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다고 했다. 무엇보다 평생학습을 앎에서 현장으로 이끌어내는 작업을 통해 다 함께 행복한 길을 위해 진력하는 오늘이 더 역동적인 삶이 되고 있는 것이다. 마을을 평생학습의 장으로 만드는 일도 그 일환이다.

# 생명이 살아나는 이야기

“평생학습에서는 정신영역, 신체영역과 함께 중요한 부분이 영성입니다. 끊임없이 나는 왜 사는가, 나는 누구와 더불어 살아가는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입니다.”

박 집사는 자아 성장과 성숙을 이뤄가는 평생학습이 실천되는 곳에서 인간다움이 살아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모든 학문의 기본은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이고 스스로 학습하도록 이끄는 평생학습 역시 인간다움을 목표하는 만큼 박 집사는 학습을 통해 끊임없이 나를 발견하고 그것이 결국 나를 살리고 너를 살리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마을 안에서 평생학습을 통해 단절을 거둬내고 소통하며 생명을 살리는 이야기가 엮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얻음은 신앙적인 깨달음이었다. 초등학교시절 가정에서는 가장 먼저 교회에 발을 딛고신앙의 걸음을 걸어왔지만 너무 안일했던 것을 깨달았다.

박 집사는 “신앙도 평생 배우고 깨달으며 성장과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면에서 평생학습과 닮았다”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말씀의 깊이에 푹 빠져드는 데 더욱 매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또 인적 물적 인프라를 갖춘 교회들이 평생학습의 장으로서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정찬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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