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당나라 景敎 _ 31

   
▲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 있는 조로스터교 초기 사진. 불의 제단 앞에 서 있는 짜라투스투라의 제자 사제들.

 

피루즈가 왔다. 알로펜과 마주 앉은 페르시아의 황태자 피루즈는 몹시 긴장된 얼굴이었다. 지난번 처음 만났을 때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기간이었으나 그의 얼굴이 까칠했다. 야윈 데다가 무슨 어려운 일이 있는지 그는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황태자님, 무슨 어려운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알로펜이 물었다.
“아닙니다. 주교님 앞에 누추한 모습을 보이다보니 민망해서 그럽니다.”
“저런! 괘념치 마소서. 장차 저하로 말미암아 페르시아의 영광을 되찾는 날을 기다립니다.”
“고맙습니다.”
피루즈가 마흐 마가드 재무대신을 바라본다. 무언의 요구였다.

“마흐 마가드, 주교님께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지금 당나라 당국은 황태자께서 당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로 옮겼으면 합니다.”
“그거야 나도 알고 있소. 그러나 당나라보다 더 안전한 곳이 없다는 생각을 황제께서 하고 있으니 염려할 일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요 며칠 사이에 저희에게 연락이 왔어요. 당나라보다 더 안전한 곳이 있다는 겁니다.”
“그게 어디랍니까?”
“네, 저 동녘의 나라 신라라고 하더군요. 그곳은 나라가 풍요롭고 안전한데다 특히 불교가 나라의 안녕을 지켜내는 부처님의 나라라고 하더군요.”
“뭐, 신 신라라고요?”

알로펜의 만면에 만족한 웃음이 가득했다. 그러면 그렇지. 그는 무릎을 쳤다.
“황태자시여. 저도 생각했던 곳이 신라입니다. 신라라면 황태자님을 자국의 황태자처럼 모실 것입니다. 더구나 그들은 당나라나 페르시아 문명에 대해서도 매우 친근한 종족들입니다. 친근할 뿐 아니라 동족이나 다름이 없지요. 유라시아 시대의 후예라서 저들 조상들은 우리 페르시아의 피가 흐르고 있기도 합니다. 좋은 소식입니다. 망설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가요? 그럼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나는 며칠 동안 신라로 추방하여 낯선 곳에서 죽는구나 싶어서 매우 우울했었지요.”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보다는 태자께서는 저 알로펜의 기독교를 본격적으로 도와주셔야 합니다.”

“어떻게요?”
“저희 페르시아는 일찍이 짜라투스트라 님의 자손들 아닙니까. 지금으로부터 3천여 년 전 그분은 일명 조로아스터교(배화교)를 창교 하였지요. 또 불교에 대해서도 친근감을 갖는 것은 불교의 전신인 힌두교는 조로아스터교의 쌍태아라고 할까. 쌍둥이라는 학설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로아스터교나 불교는 예수의 기독교가 역사 위에 등장하기 5백여 년 전 유다 왕국 시절 바벨론 포로기를 겪으면서 저희의 조국인 페르시아에서 고레스 대왕의 은혜를 입었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고레스 대왕을 저들이 기다리는 메시아인 줄 알고 따르기도 했지요. 이런 인과관계는 페르시아의 저력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제 말이 너무 장황하기에 태자 마마께 송구하오나 한마디를 더 하겠습니다. 지금의 당 태종 황제도 사실은 저희 페르시아의 자손이기도 하답니다. 그러니 그가 태자님을 절대로 소홀히 대접할 수 없을 것입니다.”

“허허허, 갑자기 내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듯 싶군요. 말씀이 무척 신기하고 또 신비롭습니다.”
“네, 태자 마마!”
알로펜은 중앙 유라시의의 역사를 기초하여 세계사의 중심에 페르시아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인류사는 이동민족과 정착민의 관계인데, 기원전 2천여 년 경 인류문화는 속도시대를 맞이했다.

기원전 2천여 년 경 인류는 말을 길들였고, 말 위에 앉아서 활을 쏠 수 있는 기능을 확보했다. 속도감 있는 말을 타고 사냥을 할 수 있어야 큰 짐승을 잡을 수 있고, 또 그러는 가운데 집단이 되고, 다른 종족을 만나면 집단 간의 투쟁을 한다. 큰 부족 단위가 되면 전쟁이 된다. 그때 인류는 빠른 말의 생산지로서 페르시아와 인접한 코카서스 산맥 주변에 세계의 수도를 정할 수 있었다. 당시 인도 유럽어가 그 시대의 중심언어였고 많은 언어 군들이 거기서 파생한다. 그래서 유라시아 중심인 페르시아와 주변이 유럽의 프랑스와 아시아의 그 끝인 고구려, 그리고 고구려의 코미타투스(주군의 참모) 계급인 일본까지를 하나의 제국으로 삼았던 노마드 시대의 현황이었다.

역사의 진행은 스키타이 시대로부터 왕성한 활동기를 삼으며 중국 역시 상나라 시대까지 기마족이었다. 그들이 황하 유역에 정착하기 그 이전 1천여 년 이상 이동종족의 운명이었다. 그런 그들이 흉노나 돌궐, 그 밖의 북방 이동종족들을 향하여 야만인이라고 말하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그들이 말하는 오랑케니 야만이니 하는 것은 그의 조상들을 욕하는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알로펜은 고대사의 여러 상황을 생각했다. 종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공자나 노자, 인도의 석가, 이스라엘의 이사야나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은 어떻게 거의 똑같은 주제의 사상을, 또 거의 비슷한 시대에 들고 나타났을까?
혹시 중앙 유라시아 시대 기마인들이 동서 세계를 달려서 공자, 노자, 석가, 소크라테스 등을 일으켰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알로펜의 배움을 청하겠다며 피루즈 황태자 일행이 떠났다.

알로펜은 마리아를 불러 그의 앞에 앉혔다.
“마리아여! 내 말을 들으시오.”
마이라는 갑자기 들뜬 목소리로 달아오른 알로펜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도 기꺼이 알로펜 맞은 편에 앉았다.
“좋은 일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마리아에게서 좋은 일을 찾으시려는 겁니까?”
“나 말이요. 오늘 천기를 누설했구먼요. 내가 왜 이리도 경솔해졌을까. 나 자신에게 무척 실망스럽군요.”
“뭐가요? 좋은 기분으로 저를 불러내셨으니 기분 좋은 차 한 잔 같이 나누자 하시는 줄 알았네.”
마리아의 냉정한 반응에 약간 머쓱해진 알로펜이 말없이 마리아를 바라본다.

“주교님! 나의 만년 스승이시여. 이 여인에게 오늘은 무엇을 요구하시나이까?”
“허어, 스승. 더구나 만년 스승이면 가까이 하기에는 벅찬 높으신 분이라는 뜻인데 왜 말솜씨가 그렇소?”
“뭐요. 높으신 분이니까 50년을 모셨어도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목석이신 스승님이시죠.”
“아, 내가 지금 흥분해 있어요.”
“뭔데, 천기누설이니 흥분이니를 들먹이면서 허둥대시는 겁니까?”
“마리아! 내가 태고의 유목시대, 인류사 문명 출발기의 유라시아 시대를 말하면서 세계 유일 종교를 창안해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네, 주교님! 그럼 새 종교를 일으키시겠다는 뜻인가요?”
“그게 아니라 종교는 본디 하나인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어요.”
“그럼요. 인류에게 주신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말고 또 무슨 하나님이 어디에 계신단 말입니까?”
“그야 당연하지만….”
“주교님, 세상일을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않음도 좋습니다. 저는 주교님을 하나님으로 모시는 것 하나로 만족합니다.”
“저런….”

마리아가 농담으로 자기의 깊은 영감을 묵살하자 알로펜 주교는 오리봉으로 자리를 옮겼다. 안토니와 부처의 제자들 몇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주교님, 영진 주지께서 떠나겠다고 하시는군요.”
“그래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바람 쐬러 나가신다며 가신 지가 한참 지났습니다.”
그때 영진이 들어왔다. 그는 알로펜과 마주치자 환하게 웃으며 공손히 인사를 했다.
“주교님, 많이 배웠습니다. 이제 절로 돌아가서 가르침 받은 것을 복습하렵니다.”
“뭐, 그렇게 과분하신 말씀을….”

“그런데 주교님. 주교님은 우리 불교에 대한 더 분명한 가르침을 주시려 하지 않으신다는 아스라한 느낌이 들거든요.”
“맞습니다. 기독교 본토에서도 쫓겨난 늙은 주교가 불교에 대해 아는 소리를 너무 많이 하면 안 되지요.”
“그렇지만 주교님은 말씀을 다 하셨는데 제가 깨달음이 부족하여 그것을 다 모르는 것도 가르침을 남겨두심과 같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저는 거기까지밖에 더 아는 바가 없습니다. 마치 당나라가 불교의 나라이다 보니 제가 뭔가 아는 소리를 했는지는 모르나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제가 금번에 드린 말씀은 친구들이 모여서 나눈 객담이거니 하세요.”

“아무튼 저희 영진사 돌 중들에게 친절을 베푸시고 먹여주심은 물론 가르침까지 주신 고마움을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영진 일행이 영진사로 돌아간 오후 알로펜은 주변 산들을 무심코 걸었다. 해질녘이 되고 숲속에서 날짐승들이 잠자리를 잡는지 푸드덕 날갯짓을 하면서 어수선해졌다.
그는 펑퍼짐하게 생긴 산 바위에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피루즈 일행이 신라로 갈 때 제자들을 보낼 계획이다. 신라에 자리 잡으면 일본과 백제의 문도 열 수 있으리라.
알로펜의 조선반도를 향한 선교계획은 생각보다 앞당겨질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마리아와 그 기쁨을 나누려다가 지금은 혼자서 생각을 가다듬는다.

 

•작가 조효근 : 1976년 『월간 문학』 신인상 소설 등단.
대학에서 세계교회사 및 종교사 38년째 강의.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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