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연구에 몰두하는 소설 쓰기, 행복”

조선왕조실록 인물 살피며 역사 인식 새롭게 고취시켜




▲ 제14회 들소리문학상 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너무 과분한 소식을 전해주셔서 얼른 대답을 못했어요. 일단 작품이 책으로 나오거나 발표되면 그 기쁨이나 보람은 그렇게 오래 가지 않습니다. 사실 책이 출간된 후에는 더 이상 표지도 열어보고 싶지 않거든요. 후회스러운 부분도 많고 오탈자라도 눈에 띠면 속상하고,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요. 수상소식을 듣고 작품에 대한 송구스러움이 우선 느껴졌어요. 몇 시간쯤 흐른 다음에는 내 작품이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기뻤습니다.

▲ 등단을 44세에 하셨는데, 늦은 감이 있습니다.

- 25세에 결혼하고 애들 셋 낳고 기르다보니 20대 때의 꿈은 멀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늘 이러면 안 되지 하는 책임감이랄까, 소명의식 같은 것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어요.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손이 좀 한가할 무렵에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했습니다. 등단 전에 신춘문예에 여러 번 응모하기도 했어요. 낙선한 작품을 현대문학에 발표했다가 후에 고려대학교 국문과 교재에 수록되기도 했습니다. 서라벌예대 재학시절 은사이셨던 김동리 선생님께 20여년 만에 행사에서 뵙고 인사 드렸더니 “너 어디서 땡땡이치다가 이제 왔나!” 하시면서 꾸중 반 격려 반으로 말씀을 주시더라고요.

늦게 데뷔했지만 그것이 작품 활동 하는 데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늦었다는 콤플렉스와 나 자신에게 보상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작품에 더욱 치열하게 파고들게 되거든요. 경험 면에서도 젊을 때보다 인생을 바라보는 안목도 넓어지고, 달고 쓴 이야기 모두를 품안에서 녹여낼 수 있는 넓은 시야가 형성되기에 건강만 허락한다면 나이는 소설쓰기에 도움을 준다고 봅니다.

▲ 이번에 상을 수상하신 <묻습니다>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조선시대 여류시인 허난설헌은 워낙 잘 알려진 인물인데 책 내용은 그의 남편 김성립에 대한 것입니다.

- <묻습니다>는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역사인물들을 조명한 세 번째 책입니다. 허난설헌은 여성이라는 제약 속에서도 천재 시인으로 두각을 드러낸 뛰어난 문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에 비해 남편 김성립은 기생이나 끼고 허송세월한 한량이거나 대과에 급제하지 못한 그 시대의 낙오자로 고착되어 왔어요. 

집에서 가까이 있는 경기도 광주시 포교읍 허난설헌 묘에는 참배객이 많지만 계단 몇 개 올라가면 있는 김성립의 묘를 찾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역사적인 사실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너무 상업적으로 허난설헌을 드러내기 위해 김성립을 폄하하는 것이 엿보였고 한번 제대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난설헌에 비해 기록이 없는 것은 기록에 강한 허 씨 집안에 대한 반대급부에서 나타난 현상 같기도 하고요. 선택과 소멸의 역사 흐름이 반드시 다 옳은 것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김성립과 허난설헌 사이에 비록 모두 죽고 말았지만 아이 셋을 가졌었지요. 반면 허난설헌이 죽은 뒤 맞은 후처 남양 홍 씨와의 관계에선 아이가 없었어요. 또 김성립은 첩을 두었다는 기록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난설헌의 시적 감성과 수백 편의 시문들은 빛나 마땅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부풀려 떠들 만큼 불화하고 불행했던 부부는 아니라는 거예요. 난설헌이 명시를 남겼다면, 김성립은 의병활동으로 나라를 지킨, 조용하고 담백한 뒤울안의 인물입니다.

허난설헌을 비판하는 차원이 아니라 난설헌이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만큼 남편으로서는 좌절과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사실 평론가와 소설가로 같은 문학의 길을 걸었던 남편에 대한 제 마음이 오버랩 되는 부분도 있어요. 결혼 후 작품을 쓰지 못한 저와 달리 남편은 24살에 등단해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어요. 꿈을 펼치지 못한 아쉬움과 답답함 때문에 보이지 않게 남편과 늘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거든요. 12년 전 남편이 죽고 나서야 가족을 부양하느라 고군분투하던 모습들을 곱씹게 되더라고요.

▲ 조선왕조실록의 인물들을 소설로 그려내려면 자료 찾기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 네, 역사 자료를 찾기란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쓰더라도 뒷받침하는 배경을 살펴야 하고 여러 자료를 뒤져야만 정확한 표현이 가능하지요.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의 인물을 소재로 소설을 쓰면서 역사 공부 제대로 했습니다. 아무런 기록물을 남기지 않은 의병장 김성립을 소설화하는 동안 저는 행복했습니다. 420여 년 전 임진왜란에서 목숨을 걸고 조선 땅을 지킨 선조들의 삶을 샅샅이 찾으면서 경악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의 우리 나라를 가능케 한 인물들이 사장당하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가벼운 세태 속에서 역사의 소중함을 일깨워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한 줌 조국 사랑으로 이어지기를 기원하면서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역사를 파고들수록 더 물고 늘어지게 되었기에 제목을 ‘묻습니다’라고 붙였어요.
처음엔 생소한 단어에 일일이 각주를 달아 친절하게 설명했는데 내가 공부하고 나니 군더더기를 붙이지 말자 싶어 웬만한 것들은 뺐어요. 독자들도 같이 역사 공부에 풍덩 빠져보자는 심산으로요. (웃음)

▲ 작품을 쓰시면서 가장 집중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 갈등구조예요. 인간의 본능이 소설 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야 독자들이 속 시원해 해요.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소설 속에서 발가벗는 것과 같아요. 인간의 오욕칠정에 성실해야 하지요. 작가가 거짓말을 하거나 갈등구조를 주저하며 눈치 보면 그걸 독자들이 다 읽어냅니다. 그렇게 다 드러내고 마무리에 어떻게 해주느냐가 작가정신이지요.
죽을 때까지 증오심과 갈등, 사랑에 부침하면서 살다 죽는 것이 인간이지요. 그걸 소설에 그대로 담고 해법도 찾아보고자 하는 겁니다.

▲ 가벼운 시대, 문학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보면 인간적 서정성이나 아름다움을 도외시 하고 소통이 부재한 것을 보게 됩니다. 문장을 이성적으로 풀어가는 것이 장기일 수도 있지만 읽고 나면 삭막하고 글 읽는 푸근함이 삭감되는 것이 아쉬워요. 어떤 부분에서는 풍요 속에 의식이 제멋대로구나, 하는 아주 기분 나쁜 배신감까지 들기도 합니다. 작품이 버릇없다고 할까요. 남녀가 사랑하는 과정이 없이 모텔에 가서 성행위를 하는 등의 묘사는 불쾌감을 줍니다.

▲ 세태를 반영하는 것 아닐까요.

- 그래서 화가 나고 실망적이에요. 나이 들어 고루해지지 말자 싶어 젊은 작가들에게 배우려고 그네들의 작품을 읽는데 상황전개가 아주 살벌하고 메마른 감성이 그대로 표출돼요. 세태를 그대로 고발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마지막에 가서는 대안과 희망을 열어주는 게 작가가 할 일이잖아요.

▲ 앞으로 어떤 작품을 구상하고 계신지요?

- 앞으로도 조선왕조실록의 숨겨진 인물들을 조명하는 작품을 쓸 것입니다. 인간세계를 다루는 것은 이론이나 상상력만 가지고는 어렵고 체험이 있어야 쓸 수 있지요. 이 나이에 무슨 작품을 쓰나, 하는 나약한 생각을 뒤로 하고 그동안의 체험을 살려 좋은 작품 쓰는데 매진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역사공부에 더욱 천착해야 하겠지요. 유명한 인물들보다는 역사의 무대 뒤에서 요소마다 역할 했던 사람들을 역사 위로 드러내는 작업을 할 것입니다. 죽는 날까지 이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간 연구에 몰두하는 지금이 참으로 행복합니다.

 

정찬양 기자


● 한상윤 약력
- 경기 이천 출생.
- 숙명여자대학교 국문과 졸업.
- 월간문학 단편 ‘어머니의 불빛’ 당선.
- 창작집 <고리> <메마른 숲>, 장편소설 <김대건(상·하)>, <거친밥 먹고 베옷 입기>,
   연작소설 <침묵 지키기 그 아름다운 슬픔>.
- 대한민국 문학상 신인상, 한국소설문학상, 손소희문학상, 숙명문학상 수상. 현재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이사, 광주문예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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